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 (23) 강북구
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 (23) 강북구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3.03.22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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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인수봉이 우리 지역 랜드 마크…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자연 생태계 간직한 환경특구
▲ 강북구 관광지도=강북구청 제공

서울은 강북과 강남으로 나뉜다.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서울의 부촌인 강남을 빗대 도시적이란 이미지로 위장한 대중문화를 패러디한다.

강남의 대칭을 이루는 강북은 ‘낙후’ ‘상대적 빈곤’ ‘노쇠’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부동산 정보 등에서는 ‘강북까지 오름세’라는 말을 관용어처럼 사용한다. 이는 강북은 부동산 가격이 (강남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강남과 대비되는 강북을 얘기할 때 서울특별시 강북구는 한강 이북이라는 포괄적 테두리 안에 들어간다.

특별히 강북구만 얘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강북구라는 지명을 붙인 이유도 좀 동 떨어진다. 강북구는 말 그대로 한강 이북이란 뜻이다. 강의 남쪽은 강남구, 동쪽은 강동구, 그리고 서쪽은 강서구다. 하지만 강북구는 한강에서 성동구와 동대문구를 거친 뒤 성북구마저 지나야 닿을 수 있다. 

한강은 커녕,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 바로 아래가 강북구다. 강북구라는 이름보다는 산남구나 무너미고개를 따 수유구, 또는 미아구 등의 이름이 어울린다.

그래서 서울시민들도 강북구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북구가 ‘덜’ 유명한 까닭은 1995년에야 도봉구에서 분구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보다 7년 빠른 1988년 강동구에서 갈라져 나온 송파구는 신생 자치구이지만, 잠실과 가락동농수산시장 등이 있어 비교적 빨리 지역 정체성을 갖게 됐다. 아직 강북구가 어딘지 잘 모르는 시민이 많지만 미아리나 수유리 등은 대부분 알고 있다. 진작 미아구나 수유구라는 이름을 붙여야 했다.

○한 해 1000만 명 찾는 서울의 뿌리

▲ 인수봉.
산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이 서울을 방문하면 북한산을 보고 가장 놀란다고 한다. 도심에서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시내버스와 지하철로 국립공원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이다.

북한산은 서울의 진산이자 국립공원이며 가장 많은 탐방객이 몰리는 산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산을 찾은 탐방객은 1055만9121명. 이중 산에 오른 탐방객은 774만610명이고 둘레길 이용객은 281만8511명이었다. 북한산 탐방객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2010년 북한산 탐방객 850만 명에 비해 200만 명 이상 늘었다. 얼마 전까지 등산인구는 40대 이상 연령층이 대다수였으나 최근 20, 30대까지 산에 몰리면서 북한산은 더 많은 인파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산의 정상인 백운대(837m)까지 오르는 가장 짧은 탐방로는 강북구에서 시작된다. 지리산으로 치면 함양군 백무동에서 곧바로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까지 가는 길인 셈이다.

▲ 인수봉 2피치 누룽지 바위를 선등하는 산악인이 신중하게 자일 확보 위치를 잡고 있다.
백운대 코스는 강북구 우이동 도선사 광장→[사 하루재→인수대피소→백운대피소→위문→백운대까지 2.1㎞ 구간이다. 보통 편도 2시간 정도 걸린다.

북한산 탐방코스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은평구 불광동 독바위역에서 북한산 서쪽 끝 봉우리인 족두리봉, 향로봉으로 올라가 비봉→대동문→위문→백운대까지 가는 코스는 일반적인 종주코스로 알려져 있다.

탐방객이 많은 만큼 사고도 많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최근 5년(2008~2012년)간 서울지역에서 등산 중 사망한 105명 중 북한산 산행 중 사망한 사람이 34명(32.4%)으로 가장 많았다. 사망 원인은 실족·추락이 61명(58.1%)으로 가장 많았다. 장비와 체력, 전문적인 가이드 없이 무리하게 암벽을 타는 이른바 ‘릿지족’들이 사고율을 높이고 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해 119특수구조단을 창단하고 북한산과 도봉산, 관악산에 각각 8명씩의 산악구조대를 배치했다. 이들 산악구조대는 매주 주말마다 쉴 틈 없이 산을 오르내리며 탐방객 구조에 나선다.
또 매주 주말 북한산이나 도봉산에서는 119구조대 헬리콥터가 부상자를 끌어올리기 위해 호버링(hovering·공중 정지)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 4․19… 총탄에 스러진 꽃다운 청춘

▲ 고 진영숙 양의 어머니 김명옥씨가 1962년 죽은 딸의 사진을 쳐다보며 시종 눈에 손을 대고 울기만 했으며 “가슴이 메어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경향신문 1962. 2. 6>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뻐해주세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1960년 4·19혁명에 참여했다가 미아리고개에서 경찰의 무차별 난사에 희생된 여중생 고 진영숙(당시 16세·한성여중) 양이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 중 일부다. 진 양은 지금 강북구 수유동 산9-1번지 국립 4·19 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다.

강북구는 국립 4·19민주묘지가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聖地)인 셈이다. 국립 4·19 민주묘지에는 혁명 당시 민주와 정의를 위해 나섰다가 희생된 185위의 젊은 영혼이 잠들어 있다. 혁명 후 들어선 제2공화국 정부가 1961년 공원묘지 조성을 의결했으나 곧이어 5·16 군사쿠테타가 발생하면서 1962년에야 기공식을 갖게 됐다.

이후 1963년 3000평의 부지에 묘역을 단장하고 완공식을 가졌다. 지금과 같은 4만 평으로 확장한 때는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993년의 일이다. 1995년에는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 제52주년 4.19혁명 기념일인 지난해 4월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국립4.19묘지를 찾은 참배객이 아들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4·19혁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뒤부터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전까지 ‘의거(義擧)로 평가 절하됐다. 대신 명백한 군사정변인 5·16 군사쿠테타를 혁명으로 규정하도록 강제했다. 지금도 극우 논객들은 4·19혁명을 학생 의거 등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4·19혁명은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자행한 불법·부정 선거가 도화선이 됐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집권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적 항거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4·19는 민주정부 수립을 진행 중이던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부 정치군인이 5·16 군사쿠테타를 일으키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박 정권은 이후 이승만보다 6년이 더 긴 18년 동안 유신헌법 등을 통해 장기집권하다 측근의 총에 무너지고 말았다.

국립 4·19 민주묘지와 강북구 일원에서는 매년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 동안 4·19민주혁명 국민문화제가 열린다. 올해는 제53주년 기념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 4.19혁명의 희생자들의 유해.

 

▲ 종로의 시위행렬 1960.4.19

○잡초 무성하던 순국선열 묘소 새단장

▲ 제73회 순국선열의 날인 지난해 11월 17일 오후 서울 강북구 인수동 이준 열사 묘역에서 열린 '제1회 삼각산 순국선열 합동 진혼제'에서 제관들이 절을 하고 있다. [사진=강북구청 제공]
수유동의 북한산 산자락은 국립 4·19 민주묘지와 함께 순국선열 애국지사 묘역이 조상돼 있다.

이 묘역에는 헤이그에서 을사늑약의 무효와 대한제국의 독립을 외치다 순국한 이 준 열사를 비롯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 선생, 항일 독립투쟁과 좌우 합작운동을 펼친 여운형 선생,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임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이시영 선생, 신간회의 주역으로 민주당을 창당한 조병옥 선생, 조선어학회 사건 주역인 김도연 선생 등 21위의 선열이 안장돼 있다.

▲ 북한산은 수십억 년의 침식작용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골(岩骨)이 그대로 드러난 산이다. 반석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 너머로 북한산의 봉우리로 꼽히는 백운대가 건너다보인다. (이인우 기자 rain9090@seoultimes.net)
이 묘역은 한 때 잡초가 무성한 채 방치돼 왔으나 2009년 강북구청이 북한산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새롭게 정비, 시민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우이동에 있는 봉황각도 강북구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꼽힌다. 봉황각은 1912년 천도교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지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5명이 이곳에서 배출됐다.

이곳은 1969년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됐고 천도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봉황각과 부속건물에는 그 당시 유물이 남아 있다.

▲ 신라가 서울까지 영역을 넓힌 후 진흥왕순수비를 세웠던 북한산 비봉. 지금 남아있는 진흥왕순수비는 옛 모습을 그대로 본 딴 모작이다. [이인우 기자 rain9090@seoultimes.net]
인수봉과 백운대로 가는 북한산 탐방로 입구에 있는데다 주변경이 뛰어나 역사 탐방객이 많다.
봉황각은 우이동 버스종점에서 도선사 입구 쪽으로 올라가면 좌측으로 나오는 천도교종학대학원 건물 뒤에 있어 찾기 편하다. 강북구청은 지난 1일 이곳에서 ‘제10회 봉황각 3·1 독립운동 재현행사’를 개최했다.

○100년 이상 소나무 1000그루가 도심에

▲ 중부지방이 30도를 웃돌며 연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 지난해 6월 24일 오후 서울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숲을 찾은 시민들이 나무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흔히 서울의 캠핑은 옛 난지도에 조성한 마포구 난지시민야영장을 떠올리게 된다.

난지야영장의 강바람과 달리 북한산을 타고 넘어온 산바람이 시원한 곳에서도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강북구의 ‘북서울 꿈의 숲’이다. 성동구 성수동의 서울숲과 대비되는 ‘북서울 꿈의 숲’은 옛 드림랜드와 주변 공원 용지를 서울시가 매입해 2008년 10월 녹지공원으로 개장한 곳이다. 드림랜드는 강북지역 최대의 가족 놀이시설이었으나 2000년 이후 대형놀이공원에 밀려 쇠락했다.

이곳에는 호수와 함께 정자와 폭포 등이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또 공연장, 전시장, 전망타워 등에서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공원 중심부에 있는 높이 49.7m의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의 절경과 남산, 한강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밖에 창녕위궁재사 건물을 원형대로 복원, 자녀와 함께 나온 시민들의 볼거리로 손색없다. 북한산 산자락에 있는 솔밭공원은 서울 유일의 평지형 소나무 군락지다. 이 공원에는 100년생 소나무 1000여 그루가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다. 이곳 또한 서울시의 개발 바람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지난 1990년대 아파트가 들어서 사라질뻔 했으나 서울시와 강북구가 부지를 매입해 2004년 솔밭근린공원으로 개장했다. 솔밭공원은 생태연못, 그늘시렁, 산책로, 잔디광장 등의 조경시설과 배드민턴장, 건강지압보도, 게이트볼장 등의 운동시설, 장기바둑쉼터, 어린이놀이터 등 휴식시설을 비롯해 야외무대, 놀이마당, 조형물 등의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실개울과 생태연못, 벽천, 야생화 산책로 등으로 꾸민 자연학습 생태체험장을 조성했다. 이밖에 번동과 미아동 일대에 걸쳐 있는 오동근린공원은 거주지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인공적인 손길이 많이 미치지 않아 주민들의 휴식처로 손색없다.  소나무와 잣나무 숲을 중심으로 약수터, 정자, 화장실 등 주민편의시설, 체력단련시설, 배드민턴 등 운동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오동근린공원의 산책로 중 꽃샘길은 힘겨운 암 투병을 하면서도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영산홍 금낭화 등 아름다운 야생화로 꾸며놓은 강북구의 한 주민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뉴타운 재개발 대신 문화관광벨트 선택

▲ 지난해 5월 강북구 서울 북한산 우이령 일원에서 '2012 강북구민 한마음 걷기대회 및 장애인 걷기대회'를 개최했다.
강북구는 공원녹지가 지역 전체 면적의57%를 차지한다.

흔히 강북구를 서울에서 재정이 가장 취약한 자치구 등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환경을 중심으로 본 삶의 질은 가장 높은 곳이다. 매년 거듭되는 폭염에 서울 전체가 열대야에 시달릴 때도 강북구는 상대적으로 시원한 여름밤을 보낼 수 있다. 또 미세먼지 농도가 제주도보다 낮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겸수 구청장은 강북구 발전 방향으로 뉴타운 건설 같은 ‘강남 따라잡기’ 방식이 아니라 ‘역사문화관광 벨트 조성’을 제시한다. 공원녹지를 줄이지 않고 이를 보존, 더 쾌적한 환경을 가꾸겠다는 청사진이다.

강북구를 대표하는 문화관광 자산은 북한산둘레길이다. 북한산둘레길은 북한산국립공원 자락 저지대를 따라 서울시 6개 자치구와 경기도 3개 시에 걸쳐 총 길이 63.2km, 11개 구간으로 나뉜다. 이 중 강북구에는 소나무숲길, 순례길, 흰구름길, 우이령길 등 총 4개 구간의 둘레길이 있다.

소나무숲길은 이름대로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난 산책코스다. 이 구간은 강렬한 솔 향이 가득하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트를 통해 스트레스 해소 등의 산림욕 효과가 높다. 또 길이 넓고 완만해 노약자도 편안하게 산책을 즐기기 좋다. 특히 북한산둘레길 중 유일하게 계곡을 따라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우이령길 구간은 1968년 1·21사태 당시 북한 특수부대원의 침투로로 이용된 후 40년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다. 지난 2009년부터 생태탐방로로 재탄생해 긴 시간동안 오롯이 보존된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 하루 1000명에게만 탐방을 허용하고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범벅된 서울에서 흙길의 정취와 숲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구간으로 인기가 높다.

○서울 도심에서 찾는 산사(山寺)의 정취

▲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인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서울 강북구 도선사를 찾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강북구의 북한산 산자락에는 오래된 사찰이 적지 않다. 때문에 강북구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많은 산사(山寺)를 둔 자치구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찰은 우이동에 도선사와 보광사, 용덕사, 신감사 등이 있고 수유동에는 화계사와 삼성암, 본원정사 등이 있다.

이중 도선사는 통일신라(862년·경문왕 2) 시대 연기 도선(烟起 道詵)이 창건했다. 도선은 이곳의 산세가 1000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1863년(철종 14) 절을 중수하고 칠성각을 신축했으며, 1887년(고종 24) 오층탑을 건립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도선사에는 도선사마애석불, 도선사목아미타/대세지보살좌상, 도선사석나반존자(독성)상, 도선사 동종 등 많은 지정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화계사는 조산 1522년(중종17년) 창건한 절로 1618년(광해군 10년) 9월 화재로 전소돼 이듬해 흥덕대군(興德大君)의 시주를 받아 중창했다.

이후 1866년(고종 3년)에도 흥선 대원군의 시주로 퇴락한 건물들을 보수해 지금에 이른다. 보광사는 1788년(정조 12년) 창건, 한국전쟁 중 소실됐으나 1979년 다시 불사를 시작한 절이다. 조선시대에 만든 화계사 동종은 보물 제11-5호로 지정됐다.

이밖에 삼성암(三聖庵)은 대한불교 조계종 1교구인 조계사의 직할사찰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나반존자를 섬기고 기도를 하기 위해 고종 9년(1872년) 창건했다. 나반존자는 석가모니로부터 혼자 수행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수기(授記)를 받고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 독성(獨聖)이라고도 한다.

삼성암은 한 때 수많은 사람들의 난치병을 완치했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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