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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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가영 취업준비생
  • 승인 2013.03.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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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 사이
▲ 천가영 취업준비생.

나는 신변잡기에 타인보다 조금 능숙하다는 이유로 종종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각양각색의 부탁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다음 달에 결혼하는 지인이 웨딩촬영사진의 보정을 부탁해왔다. 포토샵 프로그램을 열고 지인에게서 받아온 백장이 넘는 웨딩사진 원본 파일들 중 괜찮게 나온 것들을 선별했다. 보정이 어느 정도 된 사진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것은, 진짜 억울하게도 원본이랑 비교해보았을 때 어느 게 더 나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나는 사실적인 사진을 좋아해서 사실적으로 보정했지만, 웨딩사진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신부에게 있어서 웨딩사진은 일단 무조건 예뻐야 한다. 사실 신부뿐만이 아니라 여자들 대부분이 그렇다. 사실적인 사진을 보내주면 자기 얼굴이 이렇게 생겼냐고 충격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진실과는 다른,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우리의 모습을 ‘실제로 그러하고 또한 그러해야 하는’모습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믿음에 반(反)하는 ‘나에 대한 타인으로부터의 반영’을 접하게 되면 그 불일치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내가 바라보는 나 자신’과 ‘타인이 보는 나’의 불일치를 깨닫는 것은 세상과 부딪힐 때인 경우가 많다. 타인의 이질적인 생각과 의견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활동을 할 때, 나는 내가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세상은 나를 뛰어난 인재로 보지 않는다.

취직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데, 나는 나름 괜찮은 직장인으로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연히 동료들의 뒷담을 듣게 되면 충격에 빠진다. 마음에 안 들고 이해가 안가는 직장선배의 뒷담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동료들이나 후배들에게 저렇게 보이는 건 아니겠지?’라고. 우리는 자신을 자주 돌아보아야 한다. 진짜 ‘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의 합에 가까울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잔소리한 것을 보면 옛날부터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임을 알 수 있다.

다시 웨딩사진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내가 찾은 타협점은 ‘티 안나게 고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원본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었다. 내 얼굴도 아니고 남의 얼굴을 몇 시간씩 집중해서 쳐다보며 미적 감각을 발휘하는 것은 수배용의자의 인상착의 파악만큼이나 스트레스다.

특히 보정이 많이 필요한 사진일 경우 보는 것 자체로도 스트레스가 된다. 손 댈 곳이 너무 많을 뿐더러 느낌을 내기 힘들어 제일 손이 많이 갔던 사진임에도 의뢰인에게는 별로 대접을 못 받는다. 살면서 깨닫는 것은, 세상엔 노력한 만큼 보답이 돌아오지 않거나 노력한 게 별로 티가 안 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기획안을 최소한 두개는 제출하라는 지시에 하나는 진짜 공들인 기획안이고 나머지 하나는 탈락용 날치기 기획안으로 만들어 두개를 제출했더니 날치기기획안을 상사가 덥석 집어 올리는 기가 막히는 경우가 실제로 비일비재하다.

요즘 대하드라마밖에 안 보시는 아빠까지 가세해서 날마다 부모님이 챙겨보시는 드라마 이름은 무려 ‘무자식 상팔자’이니, 이만하면 말 다했다. 그러나 사실 장기적인 어떤 성장이나 성공이 나오려면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몇 배에서 수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진실이고, 성공을 쉽게 보고 도전하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깨닫는 현실이기도 하다.

끝으로, 웨딩사진 보정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주름 제거, 허리라인 보정, 슬림하게 하체 늘이기, 하이라이트 넣기. 이 최종적인 보정사진만 본다면 그게 원래 사진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지인에게 원본사진을 함께 보내주었다.

진실을 작품으로 탄생시킨 나의 고통을 좀 헤아려달라는 의미로.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의미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잘나온 보정사진의 모습이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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