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인권 이야기
언론과 인권 이야기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 승인 2013.04.05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예인의 사생활과 언론보도

얼마 전 배우 박시후 성폭행 혐의에 대한 언론보도가 넘쳐났다.
‘연예인 성폭행’은 대단히 관심을 끌만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보도를 보면 두가지 측면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언론의 공적 기능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선정적 보도로 인한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의 침해이다. 박시후 사건이 처음 시작되었던 2월 19일은 새 정부출범을 앞둔 시기였다.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지 않았었고, 새 정부를 이끌고 갈 장관들의 인사청문회 등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박시후 사건은 새 정부의 출범보다 더 ‘핫’한 뉴스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의제를 뒤덮고 거의 생방송으로 사건이 보도되었다. 확정된 범죄사실이 아니고 아직 ‘성폭행 혐의’에 불과한 뉴스인데도 말이다.

과연 박시후 사건이 모든 뉴스보다 우선해서 보도할 만큼 중요한 사건일까?
박시후 사건은 대중이 호기심으로 궁금해 할만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건을 뒤엎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박시후 사건은 사인(私人)의 성폭행 범죄 혐의에 관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우리 언론은 박시후 사건을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뉴스가 의제설정을 하지 않고 대중의 관심만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뉴스의 의제 설정 역할이 사라진 지금, 연예인 사생활을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듣고 봐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지금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 사생활이나 위법 행위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를 이야기할 때 이른바 ‘공인(公人)의 범위와 ’사생활 보호‘라는 점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연예인 박시후는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공인이라고 할 수 없다.

냉정히 말하면 박시후 사건의 진실을 가리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은 경찰과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기소 전의 혐의 사실에 대해 경찰이 언론에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까지 알려준 것은 피의사실공표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

무분별한 사건보도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심각히 침해할 수 있다. 아직 가해 혐의자가 가해자로 확정된 것이 아니고, 사건 조사 내용 공개로 인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권센터는 전문가들의 토론을 거쳐 언론보도에 있어 공직자(공인)의 보도에 대해 “공직자의 도덕성, 업무처리의 정당성에 대한 언론기관의 감시와 비판 기능은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기준을 만들어 언론인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악의적이지 않는 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언론은 ‘악의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언론자유’는 시민의 입장에서 권력과 사회구조에 대한 감시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 엉뚱하게도 연예인들은 공적업무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저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칭타칭 ‘공인’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들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것이 언론의 신성한 의무처럼 여겨지고 있다.

도대체 박시후가 공인으로서 우리사회에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온갖 추측과 설이 난무하는 기사로 개인의 혐의를 파헤치는 기사는 ‘악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언론은 국민을 집단적인 관음증에 빠뜨리면서, 진실규명이라는 명분으로 이 사건의 등장인물들을 모두 대중 앞에 발가벗기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언론과 언론소비자인 국민 모두 냉정함을 되찾고 언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