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시선
젊은이의 시선
  • 김원진 대학생
  • 승인 2013.04.05 1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톱깎이와 탕수육

손톱깎이가 필요했다.
100일 정도 싸돌아다닐 준비를 하다 보니 챙길 것도 많았다. 친구와 서로 나름 꼼꼼히 살펴본다고 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필수품을 몇 개 빠트렸다.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사야할 품목은 손톱깎이. 난생 처음 내 손으로 손톱깎이를 사야하는 날이었다. 각종 미용용품과 화장품도 파는 가게라서 그런지 손톱깎이도 다종다양했다. 그 중에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놈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는 새끼손가락만한 손톱깎이를 하나 집었다. 그랬더니 친구 왈. “무슨 손톱깎이를 사. 발톱깎이가 더 잘 잘려. 저거 사자.”

발톱도 손톱깎이로 해결하는 나로선 적잖이 당황했다. 그 순간 발톱깎이로 손톱을 깎았을 때 생기는 부작용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손톱 모양이 예쁘지 않을 것이고, 양 끝을 동그랗게 자르기도 어려울 수 있고. 뭐 이런 거 가지고 시름하나 싶어 쿨하게 발톱깎이를 사자고 했다.

이 얘기를 또 다른 가까운 지인에게 했더니 자기는 손톱은 손톱깎이로, 발톱은 발톱깎이로 깎는다며 그게 값이 얼마나 한다고 둘 다 사면되지 뭘 고민하냐고 되물었다. 정답.

아마 우리는 이와 비슷한 고민을 여러 명이 시켜먹는 탕수육 앞에서도 하게 된다. 중국집에 가면 나올 때부터 소스는 탕수육 위에 널리 퍼져 있지만, 배달되는 탕수육은 소스와 몸체가 분리돼 있다. 이 때 취향이 무 자르듯 갈리는데 나는 소스를 뿌려먹는 걸 선호한다. 그래야 소스가 고기에 스며들어 제 맛이 난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하지만 내 동아리 후배들은 대체로 소스를 올리지 말고 찍어먹자고 주장한다. 고기가 바삭바삭한 상태에서 소스에 푹 담가 먹어야 탕수육을 본래 맛을 살릴 수 있다는, 적어도 나에게는 어불성설인 말을 늘어놓곤 한다. 사소하지만 두 사람의 가치관이나 취향이 부딪히는 이 지점에서 대개는 타협, 설득, 다수결, 양보 등을 통해 해결을 본다. 시민으로서 배운 미덕을 사용하는 나름의 지혜를 발휘하는 셈이다.

말이 좋아 미덕이지 각 개인의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계산이 난무한다. 각자 우위를 점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논리를 만들고, 다수의 의견을 확보하기 위해 세를 불린다. 만약에 양보한다면 다음에는 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기도 한다. (나는 손톱깎이와 탕수육 앞에서 그저 물러서기만 했지만)

이 또한 넓은 의미에서 정치다. 정치의 사전적 정의는 ‘이해관계의 조정과 권위의 배분’이다. 손톱깎이를 사고 탕수육을 시키는 과정은 정확히 정치의 정의에 맞아떨어진다. 나아가 직장이나 군대 같은 곳에서 횡으로 종으로 펼쳐지는 암투도 일종의 정치다.

왜 흔히들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을 정치에 능통한 사람이라 부르지 않던가. 국회에서 활동하는 정치인과 그들이 하는 정치활동을 다수의 시민들이 혐오하듯, 이때의 정치 역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정치는 이렇게 필요악처럼 여겨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링컨>은 정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엔 성인군자 같은 위인전 속 링컨은 없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반대파를 매수하고 그들과 거래하며 타협하는 링컨만 있을 뿐이다. 주인공이 짠하고 번쩍하며 분투하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건 사실 기만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링컨>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과정’ 교본이기도 한다.

일상의 ‘정치’와 ‘정치과정’을 분리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상에서 정치 과정의 회복(더 정확히는 발현.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이 필요해 보인다. 특정 세대, 성별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회사에서도, 대학교의 조모임에서도 ‘정치 과정’은 생략한다. 갈등은 일단 회피하고 본다.

“우리가 남이가”, “부장님과 형님의 의견에 따라서”로 끝나는 대화는 술자리에서 주구장창 이어진다. 딱 여기까지다. 이것이 우리네의 정치다. 지난한 정치과정은 없다.   

어쩌면 우리 주변엔 더 많은 정치적인 사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알랑방귀 뀌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닌 ‘정치과정’을 감내할 줄 아는 사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