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깍쟁이 문학과 사랑에 빠지다
서울깍쟁이 문학과 사랑에 빠지다
  • 서울타임스
  • 승인 2010.11.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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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나의 서울이야기> 수상작 ⑥] 장려상 박현주씨

서울타임스는 서울시가 주최한 ‘잊지 못할 나의 서울이야기’ 1차 공모전에서 수상한 8편의 작품을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차례로 게재합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서울’이라는 주제로 서울의 숨은 명소와 감동적인 이야기, 서울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공모했는데, 총 303편의 응모작품 중 대상 1명, 우수상 2명, 장려상 5명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나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프로스트’의 시구가 무색할 정도로 올해의 7월과 8월이 잔인한 달이 되어버렸다.

유난히 긴 여름과 그칠 줄 모르는 비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마흔을 앞두고 마흔 앓이라도 하는 양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타이틀이 이루지 못한 꿈의 무게와 함께 나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고 긴 여름의 끝이 보이지 않던 무렵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런 일이 내게도 생겼다. 나의 어린 시절 꿈꾸던 동산의 데자뷰 현상을 느끼게 해준 그 곳! 바로 ‘연희문학창작촌’과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연희창작문학촌은 서울시의 지원으로 작가들에게는 집필의 공간으로 시민들에게는 문학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 공간으로 연희동 주택가 안쪽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도심 속에 이렇게 멋진 연희창작문화촌이 작년에 개관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관심에 비해 좀처럼 나지 않던 시간으로 그냥 스쳐가야만 했다.

하지만 마음이 있으면 통한다고 했던가! 연희문학창작촌에 드디어 오게 되었다.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무료 강좌인 연희문학학교라는 여름특강으로 8월 10일~13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각 분야의 젊은 작가들을 직접 만나서 작품도 읽고 질의응답과 낭독공연으로 작가와 독자가 소통할 수 있는 멋진 시간이었다. 

연희문학창작촌을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소중하고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중학생 아들의 진로체험학습을 위한 과제를 하기 위해서이었지만, 사실 내면적으로는 작가의 꿈을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있던 동화 카페에 소개글이 왔을 때 꼭 참가하고 싶었다.

어디서! 그것도 무료로 작가 분들이 나흘 동안이나 강의를 해주는 곳이 그리 흔하겠는가! 하는 마음에 나름 주도면밀한 계획을 짰다.

그것은 저녁 7시~9시 수업을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쓰기엔 조금 부담이 있던 주부였기에 남편에게 당당하게 아들 숙제라고 핑계를 댔고, 아들에게는 특강이 4일 동안 한 프로그램이니 결석하면 안 된다며 신신당부 끝에 고대하던 특강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악의 없는 거짓말도 하면 벌을 받는지 연희문학창작촌에 오기 전 고가의 남편 디지털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시댁 제사가 겹쳐 가야 했기에 수업을 끝까지 듣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머피의 법칙을 깨고 특강에 참가한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추억이 연속되었다.

거친 빗속을 뚫고 도착한 연희문학창작촌은 그동안의 모든 근심과 시름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숲속의 별장과도 같은 멋스러움은 어서 오라고 우리에게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들어서는 철문은 한글로 꾸며 역시 문학촌답게 재치만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열림, 울림, 끌림, 홀림이란 네 동의 작가들 집필실을 지나가면서 토지문학관이 원주에 있어 시민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점을 감안할 때 도심의 소음 속에 문학의 잔잔함과 고요함, 왠지 모를 여운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 서서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첫날은 끝까지 하지는 못했지만 서효인 시인의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을 낭독하며 알게 된 시를 하나의 놀이로 보는 작가의 시의 대한 생각은 젊은 작가 타이틀에 걸맞게 신선하고 독특했다. 시를 읽고 쓰기에 거부감을 줄여주고, 새롭게 눈을 트여준 시간이었다.

둘째 날은 배지영 소설가의 작품 ‘오란씨’ 를 낭독하고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고정관념을 버리게 한 더불어 독자의 궁금증도 해소시켜주었던 정말 멋진 시간이었다.

특히 배지영 작가와 사회를 보신 김도언 소설가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된 특강은 아주 차분하고 만족스러웠는데 독자가 궁금해 할 질문들을 미리 준비해 와 인터뷰식의 진행으로 작가의 삶을 우리가 관찰자의 시점이 되어 또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 했다.

배지영 작가는 수강생에게 낭독을 부탁하셨는데 낭독 독자에게 ‘오란씨’ 책을 선물하고 친필 사인도 해주셔서 정말 훈훈한 시간이 되었다. 물론 그 중에 한 명은 내가 되었다. 

또 아들과 함께한 모습을 눈여겨 보신 ‘서대문 사람들’ 신문의 강현미 기자께서 인터뷰를 권하셔서 주객이 전도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참가 소감을 밝혔다. 얼마 뒤에 신문기사로 나온다고 하니 쑥스럽기도 했다.

셋째 날은 또다시 내린 비로 참석률이 저조할까봐 걱정하셨던 작가님의 재치 넘치는 이야기로 비가 내리는 우울함도 씻어낼 수 있었다. 동화작가는 작품에서든 실제에서든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참석률은 최고였다. 나처럼 꿈을 가진 수강생이 많이 오셨다.

강정연 동화작가와 함께한 시간은 ‘고것 참 힘이 세네’ 작품을 선생님의 지인이 생기발랄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낭독하고, 동화쓰기와 동화의 즐거움에 대한 강의, 작가와의 대화로 진행되었다.

자신이 읽는 것만 듣다가 다른 사람의 낭독을 들으니 낭독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작가의 작품을 미리 여러 권 읽고 와서 그런지 훨씬 더 재미있고, 참여하기에 수월했다.

처음부터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던 작가가 동화작가가 되기까지의 동화 같은 이야기에 아들이 제일 좋아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동화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이 다 즐거운 일이다” 라는 작가의 말씀이 작가가 얼마나 동화를 사랑하는 지 느낄 수 있는 가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 N서울타워. ⓒ서울시 제공
‘피터팬’ 같으셨던 작가님! 참 멋졌다.

마지막 날 야외공연으로 김은성 희곡작가의 ‘시동라사’를 낭독하기로 했는데 내부 사정으로 급하게 실내공연으로 바뀌었다.

관객을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작가님께서 너무나 미안해하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잔잔한 기타 선율과 함께 우리는 홍천의 ‘시동라사’ 라는 양복점에서 웃고 울 수 있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공연은 정말 최고였다. 조명도 없고 효과음도 없이 오로지 기타 선율에 의지해 분장하지 않은 배우들과 꾸미지 않은 관객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너무나 귀하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희곡의 낭독공연을 새로운 장르로 도입하자는 관객들의 요청과 환호가 끊이지 않았던 공연이기도 했다. 실내공연으로 바뀐 것에 아쉬워하며 눈물까지 글썽이시던 작가와 배우들의 최선을 다한 마음이 전해져 아직까지 가슴 속 여운으로 남아 행복해진다.

우리에게 모두 친필 사인과 대본까지 선물하신 모든 분들! 오히려 우리가 더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불어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고, 감사하며 제일 고생한 사람들은 연희문학창작촌의 식구들일 것이다. 이런 자리와 시간을 마련해주신 연희문학창작촌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이렇게 지면에서나마 꼭 드리고 싶다. 그리고 갈 때마다 문 앞에서 반갑게 맞아주신 안내 자리를 지키시던 분에 대한 감사함도 빼놓을 수 없겠다.

아버지처럼 온화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모습! 연희문학창작촌 식구들은 정말이지 친절이 몸에 밴 사람들 같았다.

또한 입주 작가님들도 꼭 좋은 작품 집필하시길 기원해야겠다. 특강으로 소란스러웠을 시간들 집필하시는데 방해나 된 건 아닌 지 미안하기만 했다. 아마도 이제 나와 아들은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진행되는 창착촌의 낭독회에도 계속해서 참가할 것이다. 일단 8월 26일이 시작될 테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인연이 만남으로 계속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개근상까지 받으며 수업에 임했던 작가와의 만남을 주제로 한 진로 체험학습의 과제물은 우리도 책으로 만들어 제출하고 보관할 계획이다. 나름 작가수업의 결과물이니 멋지게 만들어볼 참이다. 완성되면 창작촌 식구들에게 보여드릴 생각이다. 자랑을 덧붙여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사람은 깍쟁이라는 소리를 많이들 하는데 사실로 인정해야겠다. 전에는 이런 소리를 들으면 괜히 화도 나고 속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저 서울 깍쟁이 맞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서울 살면서 누리는 문화적 혜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의 문화 예술 행사가 단기가 아닌 지속적이고 시민들에게 열린 문화 예술로의 끊임없는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우리의 지적 성숙과 자아실현에 눈뜨게 해주는 서울에 사는 나는 정말 행복하다. 연희문화창작촌도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울시’ 이런 지원은 정말 백번이고 칭찬해주고 싶다.

도심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멋스런 창작촌이 내 집처럼 낯설지 않게 된 것이 참 신기했는데 중학생때 연희문학창작촌 위쪽에서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어디 사람과의 인연만 인연인가! 장소와의 인연과 추억도 소중하기는 매한가지일 듯하다. 소중히 간직 해야겠다.

앞으로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희문학창작촌의 의미 있는 행사를 많이 기대하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본다. 그리고 요즘 스포츠에서는 유소년 프로그램이 많이 활성화되었는데 문학예술 분야에서도 어린이 작가들을 키우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아울러 서울시와 시민 모두 작가들이 더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집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길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는 그날까지 꼭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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