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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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타임스
  • 승인 2010.1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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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나의 서울이야기> 수상작⑦] 장려상 임미래

서울타임스는 서울시가 주최한 ‘잊지 못할 나의 서울이야기’ 1차 공모전에서 수상한 8편의 작품을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차례로 게재합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서울’이라는 주제로 서울의 숨은 명소와 감동적인 이야기, 서울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공모했는데, 총 303편의 응모작품 중 대상 1명, 우수상 2명, 장려상 5명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편집자 주>

큰 방황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민한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집안은 기울어 갔습니다.

저는 꿈 많고, 놀기 좋아하고, 뮤지컬을 좋아하던 그냥 평범한 소녀였는데, 어느 날 닥친 불행은 어머니와 할머니, 남동생 둘에 저까지 다섯 식구를 모두 벼랑 끝으로 몰아갔습니다.

선천적으로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저는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어린 동생과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 동생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엄마와 70이 넘은 연세에 졸지에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버리신 할머니의 끙끙거리는 소리에 차마 “힘들다”, “예쁜 옷을 입고 싶다”, “좋아하는 공연이 하고 있으니 공연을 보고 싶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기 싫었고, 어디로든지 가족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저의 꿈은 아주 어릴 적부터, 드라마 작가였습니다. 글을 쓰는 것에 너무 큰 희열을 느꼈고,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에 나를 대입하며 내 대신 나의 꿈을 이뤄주는 모습에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진로는 문예로 잡았었습니다. 하지만 기울대로 기울어버린 집은 저의 소박하다면 소박할 꿈 조차도 뒷바라지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욕심을 부려서 예고에 시험을 쳐 봤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은 편한 마음으로 더 많은 돈을 내고 첨삭 지도 까지 받아가며 응시한 시험이지만 저의 원서비 8만원 또한 사치였기에 그저 갈증을 해소해보고자 응시해봤습니다. 
 

▲ 서울. ⓒ서울시 제공


원고를 받고 펜을 쥐고 주제를 보는 순간 저 아래에서부터 애써 억눌렀던 희열이 피어올랐습니다. 울고 싶었습니다. 웃고 싶었습니다. 이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서,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차마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펜을 놀리던 그 시간에 저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속에서는 이 얘기 저 얘기 봇물 터지듯 흘러 나왔지만 저는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이 저를 휩싸고 있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다는 슬픔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결국 그 시험장에서 저는 한 자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얼마나 많이 울었었는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꿈을 잃고 목표를 잃은 저는 공부라는 것에도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중3 시절을 넋이 나간 듯 지내는 저를 보고 선생님께서는 지금의 학교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전문성이 있는 학교라 진학을 우선시 하지 않더라도 취업을 잘 할 수 있고, 장학제도가 잘 되어 있어 너의 사정이라면 학비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더 나아가서 미래의 장래성을 보더라도 이 학교는 너를 키워줄 수 있을 거라고 저에게 이 학교에 가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어떠한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기에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이 학교에 왔습니다. 그것이 저에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저는 하이서울이라는 장학 제도로 1학년을 학비 걱정없이 보냈습니다. 2학년이 되자 저소득 가정으로 학비를 받으며 현재도 학비 걱정 없이 학교를 잘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저의 꿈을 되찾았습니다. 평생 쓸 일이 없을 것만 같던 글을 학교의 행사로도 쓸 수 있었고, 국세청에서 주관한 세금문예백일장에서도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상을 받아서 기쁜 게 아니라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어느 날 광화문 교보서적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저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해치광장에서 ‘세금문예’ 수상작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저의 작품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탁 풀렸습니다.

저의 꿈은 드라마 작가였습니다. 드라마 작가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봐줬으면 하고 바라고 바랬던 한 소녀였습니다.

많은 백일장을 나갔고 수상을 해도 그 어떤 백일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글을 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해치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구경하고 있을 때 그 중 저의 작품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숨을 쉬는 것 같았습니다. 숨이 쉬어졌습니다.

그 이후 광화문을 지날 때면 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고는 합니다. 차마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상상은 날개를 펴고 날아갑니다.

저 광장에서 제가 적은 대본을 든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고, 이 의자에는 나의 드라마를 사랑하는 팬이 앉아서 구경하고 있고 저는 저 한가운데 감독의 뒤에서서 조용히 미소지으며 연기하는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눌러버리던 꿈의 결정 한 조각이 저 작은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진 그 순간 제게 돌아온 소중한 나의 추억이고 소망이고 희망입니다.

나는 서울이 고맙습니다. 내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준 것도, 다시 꿈을 따라 갈 수 있게 용기를 준 것도 내게 꿈을 펼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주는 것도 모두 서울이기에 모두 서울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마법들이기에 나는 서울이 좋습니다.

서울의 마법이 영원히 풀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추신: 아참! 저희 아버지는 현재는 건강을 회복하셨답니다.
저희는 여전히 힘들지만 서로 사랑하니까 서울의 끄트머리 지역에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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