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배 위해 독배 마신 주자들
축배 위해 독배 마신 주자들
  • 백병규 시사평론가
  • 승인 2010.05.0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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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의 시사돋보기] 이계안의 행보가 의미 있는 까닭

지난 4월 12일, 부천시장 민주당 백선기 예비후보는 김만수 후보로 단일화에 승복한 뒤  중도 사퇴를 알리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짧은 인사말을 남겼다. 

“…긴 준비, 짧은 선거를 마칩니다. 제 선거는 마침표를 찍었으나 단일후보의 승리를 위하여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 함께 동행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긴 준비, 짧은 선거…

그는 대학 졸업 후 80년대 일신전기 노조 조직부장을 시작으로 부천과 인천 지역에서 활동한 노동운동가이자 부천시민연합 대표 등으로 일해온 시민운동가 출신 인사다.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7년 대선 때다. 창조한국당 창당에 참여해 2008년 총선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지난 3월 10일 영입 케이스로 민주당에 입당해 부천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당내 기득권과 동원 경선’의 한계를 절감하고, 여론조사를 통한 김만수 예비후보와의 단일화 합의에 따라 한달이 채 못되는 ‘짧은 선거’를 마쳤다.

그는 그 회한을 “긴 준비, 짧은 선거를 마칩니다”라는 한마디로 응축했다. 어쨌든 그는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또 한 번 실감해야 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의 이번 시도가 전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출사표를 통해 부천시장 선거에 임하는 ‘4대 원칙’과 ‘5대 정책기조’, ‘부천을 강소도시, 지방자치의 모델도시로 만들어 갈 5대 그랜드 구상’을 밝혔다.

전문가와 시민단체,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책 페스티벌’을 통해 발표하려 했던 ‘10대 방향’과 ‘120대 의제’는 미처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런 정책 준비와 구상은 민주당의 많은 예비후보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백선기 정도로 지역사회의 현안을 꿰뚫고, 정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면, ‘긴 준비, 짧은 선거’가 꼭 실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계안의 독배

“저는 이번 독배를 마십니다.”

이계안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3일 민주당의 서울시장 경선안 수락을 밝히면서 말한 소회다. 최소한의 경선 조건으로 제시했던 TV 토론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계안 캠프에서는 민주당 탈당을 통한 무소속 출마나 경선을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100% 여론조사에 의한 경선 방안은 사실상 한명숙 전 총리를 염두에 둔 경선 방식이다. TV 토론처럼 인지도 낮은 후보가 자신을 알릴 기회가 박탈된 상황에서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후보를 결정한다면 이계안 후보로서는 거의 승산이 없는 게임이다. 설사 이 후보의 주장을 받아들여 TV 토론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불리한 것은 분명하다.

경선을 위한 최소한의 공정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할 때, 후보가 ‘무늬만 경선’에 들러리 서야 한다고 느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계안 예비 후보는 그러나 “민주당을 위해, 민주개혁세력의 승리를 위해” 경선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물론 그것만이 모든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로서는 달리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이번이 서울시장 두 번째 도전인 그는 이날 민주당 경선안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TV 토론이 열리면 묻고 싶었던 ‘정책질의서’를 발표했다. 그가 그동안 2000km 넘게 서울 곳곳을 도보탐방하고, 10여 차례의 정책 간담회 성과와 그가 제시한 정책 공약 ‘2.1 서울 메니페스토’에 바탕한 것이었다.

17개항에 이르는 이 정책 질의서에는 참여정부 때 한명숙 전 총리의 행보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도 담겼지만, 대부분은 한명숙 전 총리측이 내놓은 정책 공약의 취약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준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그가 패배하더라도, 그가 준비한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은 한명숙 후보와 민주당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계안 전 의원은 그의 취약한 대중적 지지도 때문에, 또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결과적으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사실상 ‘낙점’해 준 까닭에 그 오랜 준비와 노력이 이번에도 제대로 선도 보이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될 개연성이 커 보인다. 그야말로 정치검찰의 최대의 피해자인 셈이다.

정치의 희망은 어디에

선거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갈린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백선기 부천시장 예비후보나, 이계안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루저(패배자)로 기록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올인했으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정략적 계산 속에서 결국은 세가 불리한 가운데 6․2지방선거를 치르게 된 민주노동당과 강기갑 대표야말로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는 드라마다. 오늘의 루저가 꼭 패배자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바보 노무현’이 그러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선 도전 역시 스스로 의원직을 벗어 던졌던 그런 바탕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바보 같은 루저들이 있기에 그나마 정치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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