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여 괴롭다면
우울하여 괴롭다면
  • 우선희 서울기독대학강사·헤드헌터
  • 승인 2013.04.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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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희 서울기독대학강사.헤드헌터

저는 몸이 많이 아픈 시간을 길게 겪으면서, ‘이 세상에 가장 아픈 병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암, 심장질환에 못지않게 우울증은 많이 아픈 병이라 싶습니다.

우울하다는 것은 단순하게 괴롭다는 것과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인 불균형이 있으므로 일시적으로 기분이 잠시 우울하다는 것과는 달리 마음의 병인 동시에 몸이 겪는 수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현실에서 많은 젊은 분들이 삶을 자발적으로 종료하는 결정을 행동으로 옮겨왔습니다. 이 달 초 한 여자 연예인의 자살 보도를 접할 때에, 그 원인이 우울증이라 하여 충격이 컸습니다. 젊다고 혹은 인물이 좋거나 유명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을 심정을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오죽했으면.’하는 연민도 들었습니다.

다양한 원인과 증상, 그리고 개별적으로 세밀해야할 접근과 치유는 일과성의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좀 차근차근하게 보살펴야할 영역으로 생각됩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너무 많이 아픈 사람이라면 더 많이 아프지 않도록 도와야 하니까요.

우울한 상태는 선량하다거나 불량하다거나 혹은 자질에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치가 개입되지 말면 좋겠습니다. 감기가 걸리면 병원을 찾고 암을 치료 받기 위해 항암도 하고 요양을 떠나는 것처럼, 우울함이 더 큰 병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지요.

‘내가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상태’와 ‘현재의 나의 상태’의 차이가 클수록 우울은 큰 것 같습니다. 재무적인 상황, 지위, 용모, 성과, 성적, 재능, 두려움, 건강, 관계 등 누구나가 최소한 이 정도의 범위 안에 있어야한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에 미치지 못하니까 그 틈으로 현재의 실존을 부당하게 여기게 되고요.

이런 부당한 인식은 누구에게나 잠재가 되어있으므로 우울함에 처해 있다고 건전하지 못하거나 못난 사람은 아닌데도 숨기는 실정입니다. 한편 2009년 기준 서울시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6.1명으로 세 시간마다 한 명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수시로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는 시대에 살면서, 야단도 치고 싶고 안아드리고도 싶습니다. 포기하고 접은 것이 많은 저 자신, 마음이 우울하여 마음이 힘들 때가 많은데, 가슴에 품은 푸르고 젊은 이상과 손에 잡히는 현실의 사이에서 얼마나 괴로운 일이 많을지도 상상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그렇습니다. 어렵습니다. 어렵지만 우리는 살아나가라고 태어난 사람들이지요.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 빈 몸으로 고난을 맞이합니다. 못남, 비굴함, 치사함, 외로움, 무능, 늙어감, 가난함,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음… 이런 것들은 우리 모두가 마주하지만 아무도 정답을 말끔히 완성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나님, 차라리 저를 걷어 주소서.” 기도한 적이 있던 저는, 이해하는 마음이 크기에 안타까움도 커서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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