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찼았어요”는 무슨 말일까요?
“못 찼았어요”는 무슨 말일까요?
  • 김성은 동국대 일반대학원
  • 승인 2013.05.3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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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책을 필사(筆寫)를 하는 중입니다, 라고 하면 내 근황을 물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살다 살다 별 해괴한 소리 다 듣는다는 표정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그리곤 묻는다.

 “그거 왜 하는 건데?”

그러면 나는 “띄어쓰기, 맞춤법 공부하려고” 하고 웃는다. 그 대답이 성에 차지 않은 상대방은 “영어도 아니고, 한글? 초등학생이냐? 한글공부하게” 하고 잔소리를 쏟아 붇는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글보다 영어가 중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 사실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십대 후반에 접어든 다 큰 성인이 새삼 한글 맞춤법, 띄어쓰기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어처구니가 없을 법 싶다.

그런데 정작 소설책을 필사하게 된 계기는 사실 아주 단순한데 있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 어벤저스 3 > 의 오타가 상당히 충격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못 찼았어요” 라니!

처음에는 그저 바쁘게 작업을 하다 보니 오타가 났나보다 했는데 “찼았어? 못 찼았어” 가 그 다음 장면에서도 반복이 되는 걸 보니 슬슬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정말 “찾다, 못 찾다”를 모르는 걸까 아니면 자막을 감수(監修)하는 과정에서도 발견을 못한 걸까. 물론 대답은 후자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를 보다보면 한글자막에서 오타를 발견하는 건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오타가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오타를 두고서 과민하게 굴 필요는 없을 테지만, < 어벤저스 3 >를 보고 난 뒤에 남은 감상은 “오타가 다른 때보다 강렬했다”는 것뿐이었으니 관객인 내 입장에서는 조금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알 수가 없는 건 한국영화도 한글자막을 띄어놓고 보면 생각보다 오타가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인이 한국영화를 보면서 한글자막을 띄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좀 특이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상황에서는 자막을 띄어놓고 보는 방법도 괜찮은 방법이다.

(습관이 되면 자막이 없는 게 아쉬운 순간이 있다.) 다만, 외국인이 한글공부를 할 때는 오타를 봐야 한다는 부분이 좀 마음에 걸린다. 그러면서도 은근 슬쩍 불안해진다. 그 동안 내가 보아온 숱한 애니메이션의 일본어 자막도 오타가 있었던 건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영화를 포함한 번역된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진다. 단순히 오타가 문제가 아니라 문장 자체가 번역가의 고의적 의도에 의해서 불필요한 의역이 되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주말에 만화책을 빌렸다가 몇 장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반납을 한 적이 있다.

유행어, 줄임말, 뜬금없는 사투리로 번역이 된 만화는 산만해서 도무지 읽을 수가 없는 탓이었다. 결국 나는 일본어 만화책을 서점에서 사서보는 수고스러움을 자처해야만 했다. 번역은 때로는 작품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번역은 원래의 작품 분위기를 가급적이면 훼손하지 않고 전달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역을 해야 하는 장면이 아니라면, 원작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고 번역가들은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를 한다.

작게는 제목부터 크게는 문장하나까지, 작품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영화를 보다보면 오타가 많아지고, 유행어, 줄임말, 비속어도 종종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문화코드가 전혀 다른 나라의 작품이니만큼 모두 다 고심 끝에 선택해서 나오는 결과물일 테지만 가끔은 보기가 불편한 순간들이 있다.

아주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라 하더라도 관객들 모두가 유행어와 줄임말을 줄줄 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불편한 장면들이 영화를 보는 데, 큰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번역가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대사의 감칠맛을 전달하는 의역의 마술사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인상을 받곤 한다. 정말 중요한 건 대사의 감칠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본래 갖고 있던 분위기와 의도를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해주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누군가에게는 결정적인 장면을 품은 단 한 편의 영화가 될 수도 있는 순간에서 번역은 큰 작용을 일으킨다. 아직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명대사들은 대부분 번역이 된 영화자막들이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꿈을 품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번역가들이 누군가의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나의 어린 시절, 히어로가 다른 누구도 아닌 외화 번역가 이미도였던 것처럼 말이다.

번역이 신중하고, 진지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가 마음을 기울여서 보는 하나의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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