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곶감과 홍시가 열리는 감나무
맛있는 곶감과 홍시가 열리는 감나무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11.0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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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46]
예전의 시골집은 초가지붕에다 싸리 울타리를 만들고 한 두 그루의 감나무를 심어야 제법 구색을 갖춘 집으로 알았다. 그렇게 심어서인지 감나무는 지금도 어디를 가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일화도 심심찮게 전한다. 오성 이항복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이렇다.

▲ 감나무. ⓒ송홍선

오성의 뒤뜰에 심은 감나무가 권율 장군의 집으로 뻗어 나갔다. 권율의 하인들이 그 가지에 열린 감을 따서 먹자, 오성은 장군을 찾아가 방문의 창호지를 뚫어 팔을 내밀고 “대감님, 이 팔이 누구의 팔입니까”라고 물었다.

권율이 “그것은 자네 팔이지”라고 대답하자, 오성은 “그렇다면 저 가지의 감은 어느 집의 감입니까”라고 물었다. 장군이 “자네 집의 감이 틀림없지”라고 대답하자, 오성은 “그러면 올해는 그 가지의 감을 모두 돌려 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권율은 기지가 대견스러운 오성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그를 사위로 맞이했다.

감나무는 누런빛의 꽃이 입을 벌리고서 웃고 있는 듯이 핀다. 아이들은 감나무의 꽃이 피면 그 꽃을 따다가 실로 묶어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허기지면 아깝지만 하나씩 따서 먹었다. 약간 씁쓸하면서도 아릿한 맛이 전부였지만 그냥 배고픔과 군것질하고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냥 먹었다.

꽃이 떨어지고 나면 열매가 크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큰 열매는 벌레가 먹지 않았지만 땅으로 곧잘 떨어졌다. 바람이 불면 더욱 많이 떨어졌다.

이때 동네 아이들이 바가지를 들고 몰려들었다. 계집아이들은 한 개라도 더 줍기 위해 분홍빛 치마에다 감을 주어 담았다. 그러다가 보니 치마는 감물이 들어 얼룩졌다. 감물은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추석 때 입을 옷에는 저도 모르게 어느새 감물이 들어 있었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옷에 감물을 들여 ‘갈적삼’과 ‘갈중이’를 만들어 입고 있다.

▲ 감꽃. ⓒ송홍선

감은 서리가 내릴 즈음에 익는다. 감을 딸 때는 끝을 쪼갠 대나무를 이용했으나 아이들은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땄다.

감나무는 가지가 무척 약해서 어른들은 잘 올라가지 않았다. 어른들도 어릴 때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한 번쯤은 떨어져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는 아이들을 아주 미련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감을 수확할 때 모두 따지 않고 ‘까치밥’이라 하여 몇 개를 남겨 두었다. 감은 무엇보다도 겨울 내내 마루 밑 독 안에 있다가 얼음이 녹을 무렵 홍시가 되어 나오는 것이야말로 혀끝을 살살 녹여 주었다. 그러나 완전히 익지 않은 감이라 하더라도 소금물이나 알코올에 담가 두면 떫은맛이 없어진다. 떫은감은 주로 곶감을 만드는 데 쓰였다.

곶감은 떫은감을 날로 껍질을 벗기고 햇빛에 말린 것인데, 이 곶감이 어찌나 맛이 있어서인지 ‘무서운 호랑이가 온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맛있는 곶감이라는 말을 듣고 울음을 뚝 그쳤다’는 옛 이야기도 있다. 민간에서는 감꼭지를 달여 마시면 딸꾹질을 멎게 하거나 유산을 방지한다는 속설이 전한다. 또한 감나무는 고급 가구의 재료나 북 또는 마루의 널빤지로 널리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감나무에서 떨어지거나 감나무의 꿈을 꾸면 3년 이내에 죽거나 중병을 앓는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감나무를 불에 태우면 눈이 멀고 이빨이 아프며 미친다고 하여 이를 금기하며, 감나무의 꽃을 가리키거나 흔들면 열매를 맺지 않는 것으로 믿었다.

감나무는 일본에서 신목(神木), 영혼을 상징하며, 천당과 지옥 등의 세계를 연결하는 나무로 여겼다. 유럽에서는 ‘신의 음식’이라고 하며, ‘이빨의 독이자 위장약’이라는 속칭도 있다.

꽃말은 자연미․ 어두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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