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를 달라”
“표현의 자유를 달라”
  • 백연주
  • 승인 2010.11.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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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주의 ‘프랑스 엿보기’]

매거진 인터내셔널 리빙(International Living)의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는 세계 194개국 중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호주 등과 함께 살기 좋은 나라 TOP10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 국제기자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이 발표한 국가별 언론자유 통계보고에 따르면 프랑스는 고작 44위에 그쳐 탄자니아, 리투아니아, 한국 등의 국가보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살기는 좋지만 언론은 꽁꽁 묶여있는 나라, 프랑스의 언론 현실은 어떠한지 알아보기로 한다.

농담과 진심 사이, 그리고…

우연히 길을 가다 한 소극장 입구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걸음을 잠시 멈췄다.
‘스테판 기용의 원맨쇼’

▲ 독설로 유명한 스테판 기용.
스테판 기용(Stephane Guillon)은 각종 무대에서 혈혈단신 입담으로만 관객들을 사로잡는 원맨쇼의 달인이며, 몇몇 영화에서는 감초연기로 배우의 소질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그가 걸쭉한 사회비판으로 프랑스의 막강한 라디오 채널 프랑스 인터(France Inter)의 특정코너를 맡아 유명 예술인은 물론 정치인, 대통령 등 이른바 국가의 파워군단들을 향해 일침을 가해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각종 매체의 섭외대상 일순위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 한동안 본업을 제쳐두었던 그가 다시 원맨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유머리스트 출신의 방송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복잡하고 어려운 여러 문제점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접근방식으로 풀어내 라디오 청취율을 급상승 시킨 그의 방송스타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계인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스테판은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코너에 초대 손님으로 나온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Dominique Strauss-Kahn)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유럽이 심각한 경제난으로 죽어가는 동안 서류 복사나 하는 비서랑 연애하느라 바빴던 대단한 분”이라 소개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또, 2010년 초에는 당시 이민부 장관이던 에릭 베송(Eric Besson)을 특정 정치인의 ‘스파이’라 지칭했고, 에릭 베송 장관은 이 발언을 두고 “방송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해야 할 때”라며 맞대응했다.

그의 폭풍방송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07년부터 정기적으로 비판해오던 그는 지난 4월, 방송을 진행하던 중 “불운의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폴란드 대통령이 차라리 사르코지였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다소 무리한 발언을 했다.

이 방송을 접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타정치인들에 대한 스테판의 공격을 예로 들며, “그의 농담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해고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죠, 대통령님”이라며 사르코지 대통령과 정면승부를 선언한 그에 대해 정부는 노코멘트로 일관했고, 그의 일상은 정상화되는 듯 보였다.

언론계에 부는 칼바람 - 무분별한 방송 vs 외압설

약 3개월 후, 스테판 기용은 라디오 프랑스(Radio France)의 책임자인 쟝 뤽 에스(Jean-Luc Hess)의 부름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스테판은 지난 9월로 예정되어 있던 계약 연장건을 취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Radio France는 스테판과 함께 그의 오래된 유머파트너이자 역시 프랑스 인터(France Inter)에서 방송활동을 해오던 디디에 뽀르뜨(Didier Porte) 역시 해임했다.

쟝 뤽 에스는 두 사람의 해임사유를 “평소 예의에 어긋난 무분별한 그들의 방송 스타일과 유머리스트로서의 경계를 넘어 프랑스 전체를 흔들 만큼의 과격한 인신공격 발언을 일삼는 진행자들을 회사에 남겨두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프랑스 국민들은 “두 사람에게 공격을 받아 이미지에 손실을 입은 일부 정치인들과 대통령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지만, 장 뤽 사장은 “어떠한 정치권력도 그들의 해임건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히고 있다.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한 두 사람을 옹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정치인도, 전문 방송인도 아니다. 유머리스트를 라디오 방송에 채용했을 땐 기존 방송시스템과는 다른 그들만의 방식을 충분히 예상했어야 하지 않는가? 청취율 높다고 방송만 잘 내보내더니, 이제 와서 해고라니 말도 안된다.”

“프랑스 국민은 그들의 솔직한 방송을 들을 권리가 있다. 사실을 말하는 그들의 입을 막아버린 대통령과 정부는 책임져야 한다.”

문을 굳게 잠근 채 아무런 대답이 없는 프랑스 인터(France Inter) 파리 본사 앞은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가득 메운 이천여 명 국민들의 목소리만 메아리치고 있다.

기본적인 통제가 필요한 것이 언론이지만, 국민들의 알 권리를 올바르게 충족할 수 있는 국가가 바로 진짜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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