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 명동 칼국수라 우겨 말해도 되는데
‘서울식’ 명동 칼국수라 우겨 말해도 되는데
  • 황교익 / 맛칼럼니스트
  • 승인 2010.05.0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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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서울음식 먹어본 지 30년’ 5]

옛날 ‘촌놈’이 서울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었다. 남산과 명동이다. 나도 그랬다. 1980년 서울에서 입성한 나는 남산부터 올랐다.

그러나 별것 없었다. 하지만 그 아래 명동은 신천지였다. 무엇보다 예쁜 여자가 많았다. 정신줄을 놓고 걷다보니 롯데백화점이었다. 소도시 골목시장만 보아왔던 내 눈에 롯데백화점은 서울의 것이 아닌 듯 느껴졌다. 슬슬 배가 고파지자 고향 친구 누나의 말이 기억났다. 서울에 공부하러 간다는 내게 누나는 이런 말을 하였다. “설 가모 맹동 칼국시는 먹어야 하는기라, 알겄나?”

▲ '명동교자'에서 내는 명동 칼국수. ⓒ황교익


‘명동 칼국수’ 가게가 갑자기 늘어난 까닭

명동 칼국수는 당시에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육영수 여사가 김치를 배운 식당이라는 소문이 크게 번져 온 국민이 명동 칼국수 김치는 우리나라 최고의 맛일 것이라 여겼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1980년의 명동 칼국수 가게 입구에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붙어 있었는가, 그랬다.

진한 닭고기 국물의 칼국수는 난생 처음 먹는 것이었다. 경남 바닷가 소도시에서 멸치육수의 국수만 먹던 입으로는 너무 기름져 느끼하기까지 하였다. 김치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매웠다. 경상도 음식이 맵다지만 이런 식으로는 맵지 않다. 내가 그때까지 먹은 매운맛은 고춧가루에 의한 것이었지만 명동 칼국수 김치는 마늘 매운맛이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그 느끼한 닭고기 국물에 마늘 맛의 김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룸을 곧 알게 되었다. 김치를 닭고기 국물에 푸니 고향에서 먹던 생선매운탕과 비슷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 먹고 난 다음 나는 속앓이를 해야 했다. 한번에 그렇게 많은 마늘을 처음 먹어 그런 것이었다.

다들 ‘명동 칼국수’라 부르지만 그 칼국수를 내는 가게의 상호는 명동교자이다. 명동교자가 명동에 자리 잡은 것은 1969년의 일이다. 그 이전부터 서울에서 칼국수 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애초 상호는 명동칼국수였다. 당시 명동은 최신 유행의 거리였고 칼국수는 외식업계에서는 ‘첨단’이었다. 대박을 치자 칼국수집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그런데 가게 간판을 너도나도 명동칼국수라 달았다. 대박집의 명성에 묻어가자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1978년 명동교자로 상호를 바꾸었다.

타향살이 하는 ‘충청도식’ 명동 칼국수?

▲ 서울 명동에 위치한 명동교자 입구.

최근에 자료를 뒤져보니 유감스럽게도 명동 칼국수는 서울 음식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충청도식이라고 주장한다. 닭 곤 국물을 육수로 쓰고 여기에 호박, 부추, 마늘 등이 들어간다. 칼국수를 맹물에 삶아 육수에 담아내면 건진국수, 육수에 칼국수를 끓여내면 제물국수라 하는데, 명동 칼국수는 제물칼국수이다.

칼국수가 외식업계에 크게 번져 있으니 먼 조선시대에도 우리 민족이 칼국수를 즐겨 먹었을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 많다. 조선에서 밀은 귀한 식재료였다. 명절 때 유밀과나 만들 수 있었지 칼국수를 해서 끼니로 먹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몇몇 자료를 보면 한양의 명문가에서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칼국수를 내놓았다고 적고 있지만 이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칼국수는 한국전쟁 이후 구호물자로 미국의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대중에게 번진 음식이다. 내 생각에는 당시 밀가루가 가장 싼 식재료이니 그 즈음에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칼국수 맛내기 방법이 개발되었을 것이다. 또 그 지역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육수의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경남 바닷가 내 고향에서는 멸치가 흔했으니 멸치칼국수를 먹었고 서해안쪽에서는 바지락이 지천이었으니 바지락칼국수를 해서 먹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 서울에서도 서울만의 칼국수가 개발되었을 것인데, 한국전쟁 이후 서울은 이주민이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던 터라 칼국수집 주인들이 제 출신지의 음식이라고 주장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래저래 서울은 제 이름을 앞에 단 음식 하나 만들지 못하는 신세인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명동 칼국수를 서울식이라 우겨 말해도 되는데 명동교자 홈페이지를 보면 굳이 충청도식이라 적고 있다. 서울은 만인의 타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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