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것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다”
“나이든 것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다”
  • 서영길 기자
  • 승인 2010.05.08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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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우리 부모님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서울 노인복지관 곳곳에서는 다양한 경로잔치가 열렸다. 카네이션 달아드리기, 독거노인을 위한 쌀 전달식 등. 어버이날 행사 현장에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을 만났다.

“몸이 불편한 것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어”
- 동대문구 복지관에서 만난 구경순씨

▲ “말벗들이 있어 복지관이 좋다” - 구경순씨. ⓒ서영길

남편과 사별하고 5년째 혼자살고 있다는 구경순씨(69, 동대문구 청량리동). 노인복지관이 있어 고맙다며 웃는다. 어버이날을 맞아 경로잔치가 있다기에 서둘러 나왔단다.

“난 여기(복지관)에 매일 와. 밥도 주고 말벗들도 있고. 오늘 경로잔치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일찍 나왔어. 근데 점심 먹고 나니까 노인네들이 얼마나 많이들 나왔는지 제일 뒤에서 (공연) 구경했어. 북 두드리는 게 제일 좋더라구. 복잡해도 나랑 비슷한 나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으니까 너무 좋네”.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다니는 구씨는 몸이 불편한 것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다고 한다.

“몸이 불편하다 보니까 혼자 살 때 많이 힘들어.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외로운 거야. 여기 있다가 집에 혼자 돌아 왔을 땐 서글프기까지 해. 딸이 하나 있긴 한데 눈치 보이고 천덕꾸러기 신세 되기 싫어 나왔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훨씬 편해”.

카네이션도 달아주고 봉사를 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구씨.

“여기 복지사분들 여간 고마운 게 아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여기 없으면 못 살아.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받는 거지. 같이 살지도 않는 딸이 있다고 자격이 안 된데…”라며 수줍게 웃었다.

“기초생활수급자지만 더 욕심은 없어”
- 금천구 복지관에서 만난 박철남씨

▲ “봉사하는 젊은 사람들이 고맙다” - 박철남씨. ⓒ서영길

“오늘 경로잔치가 있다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왔어. 집이 가까우니까 이곳(복지관)에 매일 와”.

인터뷰에 응하면서 꺼낸 박철남씨(71, 금천구 시흥동)의 첫마디다.

“난 여기(복지관)가 항상 고마워. 집에 있어봤자 종일 TV만 보고 말할 사람도 없는데 어버이날이라고 잔치까지 열어주고 꽃도 달아주고…. 노인네들한테 이보다 더 고마운 데가 어딨어”.

식사도 주고, 이발도 해주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다 해줘 복지관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씨는 혼자 지낸지 13년이 지났다고 넌지시 말을 꺼냈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어. 아들 둘이 있는데 연락도 안 되고…. 밥이랑 빨래 혼자 다 하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다며, 아직은 몸이 건강해 다행이라는 박씨는 더 바라는 것이 없단다.

“복지사들이 이만큼 성의껏 해주는데 이거 이상 바라면 욕심이야. 봉사하는 젊은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데…. 그리고 나라 경제사정에서 이만큼 해주면 잘해주지 뭘 더 바래? 여기 오는 노인네들 얼굴 봐봐. 다 명랑하잖아. 여기 나오면 표정이 다 좋아. 한 번 둘러봐…”.

박씨는 복지관에 모이는 노인들은 모두 친구라며 웃는다.

“친구들 있어 한 시간 거리도 멀지 않아”
- 금천구 복지관에서 만난 조경애씨

▲ “반가운 얼굴들 볼 수 있는 곳이 고향이지…” - 조경애씨 ⓒ서영길

딸과 함께 지낸다는 조경애씨(75, 관악구 신림동)는 신림동에서 일부러 금천 노인복지관까지 온 경우다.

“어버이날 행사하는 것 알고 왔어. 원래 자주 왔었는데, 딸네 집 따라 3년 전 신림동으로 이사하고 나니 자주 오기 힘드네. 나이도 있고…. 한 시간씩 걸리는 거리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씩은 와”.

친구들이 있는 금천 복지관으로 자주 오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는 조씨. 시흥동에 살 때처럼 매일 같이 올 수 있던 시절이 그립단다.

“난 자식이랑 살아서 그런지 다른 친구들보다 외로움이 크지는 않은 것 같아. 하지만 이곳 친구들 만나 얘기할 때가 가장 즐거워. 시간도 잘 가고, 밥도 싸게 먹고. 난 여기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해. 오늘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 보니까 너무 좋네”.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해 40년간 시흥에 살았기에 금천구 시흥동이 고향 같은 곳이라며 아쉬워했다.

“난 나중에 꼭 여기(시흥동)로 다시 올거야. 지금은 손녀딸 봐주느라 (복지관에) 못 오고, 멀어서 자주 못 오는데 다시 이사 와 예전처럼 자주 오고 싶어”.

하지만 부족한 마을버스 노선 때문에 복지관으로 오는 길이 힘들다고 말한다.

“마을버스 좀 더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우리 같은 노인들은 버스 안 다니면 어디 나가기가 힘들어. 금천구청에서 오는 복지관 버스가 너무 없어. 이사 가보니 신림동은 버스가 잘돼 있는 것 같은데 시흥동은 아직 부족한 것 같아”.

“내 앞가림은 내가 벌어서 살아”
- 중구 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최학범씨

▲ “힘 있을 때까지 자식들 도움 안 바래” - 최학범씨 ⓒ서영길

복지관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는 최학범(70, 종로구 창신동)씨. 그는 오늘 어버이날 행사가 있는지 모르고 복지관을 찾았다고 한다.

“적적할 때 자주 복지관에 오지. 오늘도 책 좀 읽으려 왔는데 어버이날 행사를 하네. 세상 많이 좋아졌어. 누가 자기 부모도 아닌 사람한테 이런 걸(카네이션) 해줘. 아까 보니까 지하철 역에서도 꽃 달아주던데…”.

30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3남매를 둔 가장이었지만, 현재는 혼자살고 있다는 최씨. 그는 스스로 벌어 생활한다고 자랑한다.

“내 자식들 다 떨어져 나갔지만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아. 구청에서 노인일거리 제공해 줘서 그 일 하고 있지. 지금 청소나 지하철역 가이드 같은 걸 하면서 내 앞가림은 내가 벌어서 해”.

힘이 있을 때까지는 자식들 도움 안 바라고 살겠다는 최씨. 그에게도 가장 힘든 점은 역시 외로움.

“혼자 살면서 어려운 점은 없어.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혼자 사는 게 생활이 되고 습관이 돼 있지. 하지만 힘든 점은 있어. 외로운 거야. 그럴 때면 여기 복지관에 책을 읽으러 와. 친구들하고 대화도 하고…”.

혼자 살기 때문에 건강관리는 철저히 한다는 최씨는 술, 담배를 전혀 안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반찬도 채소 위주로 먹고, 항상 긍정적이고 여유 있는 생각을 하려고 애쓴단다.

“난 가진 것도 없고, 비록 이렇게 혼자 살지만 사는 게 재미있어. 내 힘으로 적지만 아직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 난 매사를 긍정적이고 좋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지 남들이 나를 봐도 초라해 보이지 않다고 해”

자녀들이 떠나면서 신앙생활이 의지가 됐다고 말하는 최씨. “진실하게 살고 남에게 폐 안 끼치며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인생인 것 같아. 내가 살아보니까 그래”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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