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나무, 진짜나무, 참나무
도토리나무, 진짜나무, 참나무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11.29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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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53]

우리말에 ‘참’이라는 접두사가 있다. ‘참’은 참뜻이나 참말 등에서와 같이 명사 앞에 붙어 진짜 또는 진실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 갈참나무. ⓒ송홍선


또 참숯과 같이 품질이 썩 좋음을 뜻하기도 한다. 또 동식물의 이름 앞에 붙어 상대됨을 나타낸다. 참나리, 참고래 등이 좋은 예이다. 우리말의 식물명 참나무는 진짜나무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참나무가 목재뿐만 아니라 구황식량 등 쓰임새가 많아 이런 이름을 붙인 게 분명하다.

참나무의 학명에서 속명은 퀘르쿠스(Quercus)이다. 이는 켈트어의 고품질(quer)과 목재(cuez)의 합성어에서 유래한다. 이용가치가 높은 고품질의 목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서양의 학명과 우리말 명칭은 의미상 상통하는 데가 있다. 참나무는 북반구의 중위도 지역에 넓게 분포한다. 미국의 북동부에는 자연림이 거의 참나무로 뒤덮여 있다. 유럽의 중위도 지역에도 참나무가 우점종으로 자란다.

참나무 분포지역은 문명의 중심지역으로 ‘참나무 문화대’라 부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참나무 문화대에서는 예로부터 도토리를 맷돌에 갈아 식량으로 사용했다.

한반도도 참나무 문화대에서 예외일 수 없다. 위도가 같고 기후도 비슷하고 도토리를 맷돌에 갈아 구황식량으로 이용한 데에서도 우리가 참나무 문화대에 속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참나무의 열매는 도토리이다. 도토리는 한반도 농경시대의 구황식량으로 가장 중요했다. 1434년(세종 16), ‘흉년을 대비한 구황작물로는 도토리가 제일이다’는 경상도 기민 담당관리의 상소문을 통해서도 도토리가 중요한 식량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떡갈나무 열매. ⓒ송홍선


이와 함께 한라산 중턱의 아름드리 물참나무가 갑인 흉년 때 도토리를 많이 맺어 백성의 굶주림을 해결해 줬다는 전설에서도 구황식량으로서의 도토리를 생각할 수 있다. 도토리는 오늘날 별식으로 먹는 도토리묵이나 수제비 등으로 만들어 쌀대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참나무는 목재의 이용 또한 도토리의 쓰임만큼이나 중요했다. 참나무로 만든 숯은 품질이 제일 좋다고 해서 참숯이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목재는 아주 단단해 배나 전주 또는 마루판을 만드는 데에 적격이었다.

또한 표고버섯을 키우는 버섯나무로도 쓰임이 많았다. 참나무 껍질로는 굴피심을 지었다. 잎은 시루떡을 찔 때 이용됐으며 최근엔 사슴의 먹이로 좋아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특히 물참나무 물관 속의 타이로시스 물질은 술을 숙성시키는 데에 이용된다. 서양에서는 참나무로 된 통에 술을 넣어 위스키 같은 양주를 숙성시킨다.

이같이 술을 참나무통에 담아 두면 물관 내의 타이로시스가 숲 속에 녹아들어 술의 맛을 돋우어 주고 품질을 높여 준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참나무통에서 숙성시키는 소주가 시판되고 있다.

 

▲ 떡갈나무잎 열매. ⓒ송홍선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의 거처가 참나무 숲이라는 이유에서 제우스에게 참나무를 바쳤다. 그러나 제우스는 인간을 경고하기 위해 참나무에 벼락을 내렸다고 한다. 또한 영국인들은 참나무 잎을 종교적인 뜻으로 숭상했고, 일본인들은 가을이 되면 잎을 지키는 신이 참나무에 머문다고 해 참나무를 신성시했다.

인디언들은 도토리를 생산해 내는 참나무를 근간으로 해서 부족의 영토를 경계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도토리가 중요한 식량이었다.

참나무는 도토리나무인 동시에 진짜나무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용한 참나무도 조선시대에 와서는 소나무의 충절이 유교사회의 상징처럼 숭상되면서 소나무 다음의 자리로 밀려나고 만다.

그 후 참나무는 쓸모가 없는 잡목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래도 진짜나무 참나무의 이름은 선인들의 지혜로 명명됐기에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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