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먹을거리인 '참나무 도토리'
예부터 먹을거리인 '참나무 도토리'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12.0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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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54]

일반 사람들은 도토리라고 하면 참나무의 열매 전부를 일컫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 국어사전식의 풀이로는 떡갈나무의 열매를 도토리라 한다. 그런가 하면 상수리나무의 열매는 상수리, 졸참나무의 열매는 굴밤이라 설명하고 있다.

▲ 상수리. ⓒ송홍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나무의 열매를 보통 도토리로 통용하고 있다. 최근의 국어사전에서도 참나무과의 나무에 열리는 열매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 하여 도토리를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참나무의 열매는 일반인들이 말하는 도토리로 통일해서 부르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도토리나무라고 하면 떡갈나무를 지칭하고 가끔 상수리나무로 여길 때도 있어 혼동의 여지가 남기 때문이다. 그밖에 다른 참나무의 열매는 또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나무의 열매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74년 서울 암사동의 신석기 시대 주거지에서 탄화된 도토리 20알이 출토돼 오래전부터 도토리가 식용됐음을 뒷받침해 주었다.

물론 먹을거리로서의 도토리는 옛 서적에서도 기록으로 남아 전하고 있다. 1799년 서호수가 편찬한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과실류로서 상실(橡實)이라 하여 도토리가 기록돼 있으며, 1935년 아야영의 ‘통속산림총서(通俗山林叢書)’ 제 1집 ‘조선의 산과와 산채’에서도 참나무의 열매가 산과(山果)로서 소개돼 있다.

▲ 상수리나무. ⓒ송홍선
도토리는 탄수화물과 지방이 많아 도토리수제비(橡實雲頭餠), 도토리빈대떡(橡實餠), 도토리국수는 물론 도토리묵을 주로 만들어 먹는데 쓰였다. 1943년 이용기(李用基)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상실유(橡實乳)라 하여 도토리묵 만드는 법이 정리돼 있는데, 도토리묵을 만들 때는 도토리의 껍질을 벗겨 가루로 빻아서 물에 오랫동안 담가 떫은맛을 우려낸 후 가라앉은 도토리가루를 이용했다. 도토리가루로 도토리밥을 짓기도 했다.

도토리는 먹을거리 이전엔 구황식량으로 제일이었다. 1715년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는 도토리를 상실이라 하여 구황(救荒)의 기록이 있고,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1434)의 기록에는 ‘흉년을 구제하는 물품으로는 도토리가 제일이고 다음이 소나무 껍질이다’는 경상도 진제경차관(賑濟敬差官)의 상서내용이 있다.

|또한 세종 19년에는 도토리를 송목금벌법(松木禁伐法)으로 검찰하게 하고, 도토리나무가 없는 곳은 심어서 키우게 하라는 내용도 있다. 이는 바로 도토리를 구황식량으로 이용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였다.

특히 성종 13년의 기록에서는 도토리가 임금에게 충성보고까지 할 정도로 흉년을 구제하는 중요한 물품이었다. 이 기록에는 평안도 감찰사 신정이 임금에게 도토리 20만석을 얻었다고 보고했으나, 너무 많은 양이어서 이것이 의심의 소지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결국 백성들이 도토리를 이미 이용해 버렸기 때문에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알아낼 수가 없어 과언(過言)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 신갈나무잎 열매. ⓒ송홍선

한편 제주도 전설에는 옛날 흉년 때마다 한라산 중턱의 물참나무가 많은 도토리를 맺어 백성들의 기아를 면하게 했다고 하는데, 이 나무는 송덕수(頌德樹)라 불리며 수령은 500년이 넘는다. 이 나무는 1794년(정조 18) 갑인흉년(甲寅凶年) 때 많은 열매를 맺어서 백성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토리는 한방에서 설사나 이질에 지사제로 쓰이고, 민간에서는 꿀과 함께 먹으면 장에 좋다는 처방법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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