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가지와 여인 “벚꽃은 숙녀요, 버들은 재녀(才女)라!”
버들가지와 여인 “벚꽃은 숙녀요, 버들은 재녀(才女)라!”
  • 송홍선 /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4.11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1]

꽃나무를 여인에 비유한 옛말이 있어 재미있다. 매화는 선녀(仙女)요, 벚꽃은 숙녀(淑女)요, 해당화는 기녀(妓女)라 했다. 그리고 버들은 재녀(才女)라 했는데, 버들은 이밖에도 여인 또는 여자를 비유한 경우가 많다.

모친상을 당했을 때 버들 지팡이를 짚는 것은 부드러움의 여인(어머니)을 버들에 비유한 것 같다. 버들은 재질이 부드럽고 연약해 마치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온유하다는 뜻이 있다. 시인들은 먼 길 떠나는 낭군에게 섬섬 옥수로 버들가지를 꺾어 주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여인의 심정을 읊었다. 젊은 화랑 김유신의 이야기 중에도 여인과 버들이 등장한다. 목이 마른 김유신이 우물가에서 처녀에게 물을 요구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 거기에다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

▲ 갯버들 ⓒ송홍선

서양에서는 황금 사자를 지키던 요정 헤스페리데스의 4자매 중 한 사람인 아이글레가 버들로 변신했다. 또한 영어의 ‘Willowy(축 늘어진 버들 같이 가냘픈)’는 우아하고 날씬한 여자를 뜻하고 있어, 동서양이 그 가느다란 가지에서 느끼는 이미지는 비슷한 듯하다.

이처럼 버들은 전통적으로 여성다움을 상징하거나 섬세한 아름다움에 비유되곤 했다. 도연명이 팽택령(彭澤令)이 됐을 때 집 뜰에 호리호리한 다섯 그루의 버들을 심고 스스로 호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정한 것은 이 나무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을 게다. 뿐만 아니라 늘씬하게 늘어진 버들가지의 모습은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나 허리에 비유해 유요(柳腰)라 하고, 늘어뜨린 여인의 머리를 유발(柳髮)이라 했다. 또한 여자의 가지런한 눈썹을 뜻하는 유미(柳眉), 기녀를 뜻하는 유지(柳枝), 예쁜 모습을 뜻하는 유태(柳態) 등도 버들을 의미하는 유(柳)에서 비롯된 말이다. 모두 여성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관계된 말이다.

화류계와 노류장화

▲ 능수버들 ⓒ송홍선

버들과 여인의 관련이 있는 또 다른 재미있는 말이 있다. ‘노류장화(路柳墻花)는 누구나 꺾을 수 있다’는 격언에서 그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이 격언의 노류장화는 길가의 버들과 담벼락의 꽃이라는 뜻으로, 누구나 길을 가다 쉽게 꺾을 수 있는 꽃나무인데, 이는 몸을 파는 여자를 일컫고 있다. 또한 사내를 상대로 살아가는 여자를 우리는 흔히 화류(花柳, 버들 같이 가냘프고 아름다운 꽃)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나온 화류계는 화려한 직업을 가진 여성의 세계(사회)를 뜻한다.

화류계의 평양 기생이었던 계월은 버들을 소재로 하여 떠나가는 임에게 ‘대동강 저문 달에 고운 임 보내올제 / 천만사 고이고이 늘어진 실버들은 / 가는 임 억을 체 않고 휘놀기만 하느니’라고 한 수 읊었다. 계월은 재녀를 뜻함이 버들이었음을 알았는지, 그녀 자신이 아름다운 재녀였다.

봄이 한창이다. 버들강아지가 제철을 맞았다. 특히 봄비가 내려앉은 버들강아지는 더욱 초롱초롱하다. 앙증맞은 모습이기도 하다. 버들가지도 물이 올라 쭉쭉 자라고 있다. 버들가지가 늘씬한 몸매의 여인처럼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이래저래 버들은 여인과 관련이 많은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