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자리 서울국제도서전, 그 ‘이유’는?
반쪽자리 서울국제도서전, 그 ‘이유’는?
  • 김성배 기자
  • 승인 2010.05.17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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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출판사 불참…참신한 행사 기획력 필요

▲ 2010 서울 국제도서전에는 12만 4,000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김성배
“대규모 도서전인데 내실이 없는 것 같아요. 출판사별로 대형 부스를 마련해 놓았지만 진열 서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이벤트는 없고 그저 할인 판매에만 매달리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럴 거면 왜 이런 도서전을 여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동 서적을 전시해놓은 공간은 아이들 눈을 현혹해 책이나 팔려는 전략만 설치고 있고, 모처럼 일요일에 시간을 내서 왔는데 이럴 거면 여자친구와 영화나 보러 갈 걸 그랬나 봐요.”

지난 16일 폐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한규민씨(대학생. 25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이번 도서전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했다. 꽤 많은 출판사들이 참여했다고 들었고, 모처럼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하며 도서도 구입할 계획이었기 때문. 하지만 한씨는 전체적으로 도서전이라기보다 거대한 북 할인마켓 같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아동관에서 만난 주부 박미자씨(주부. 37세)는 다른 의견을 내비쳤다.

▲ 다양한 서적 할인에 관람객들의 호응은 높은 편이었지만 출판사들이 지나치게 할인 행사에만 치중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김성배
“다양한 동화책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어요. 딸아이가 지금 여섯 살인데 너무 즐거워해요. 조금 번잡하긴 하지만 일반 서점에 가서는 이렇게 많은 책을 한꺼번에 골라 보며 구입할 수 없잖아요. 주위 사람들이 아이가 취학하기 전에 영어 동화책을 읽는 게 좋다고 해서 영국에서 라이센스로 들어온 동화책을 몇 권 샀죠. 가격이 꽤 높지만 서점가의 절반 정도라니 모처럼 나온 보람이 있네요.”

출판협회 현 집행부와 출판사들 간 알력이 문제 

올해로 16회째를 맞은 서울국제도서전에는 12만 4,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지난 1954년부터 개최된 도서전을 모태로 지난 1995년에 정부 차원에서 국제도서전으로 격상됐다. 또한 해외 유수의 도서전처럼 주빈국 제도를 도입해 2008년에는 중국, 2009년도에는 일본, 올해는 프랑스를 주빈국으로 선정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마르크 레비 등의 프랑스 대표작가 6명을 초청해 사인회 등의 행사를 펼쳤다.

업계에서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외형적으로 성장해온 게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경쟁력 있는 행사로 자리잡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이는 해외 유수의 도서전을 모방하는 데만 그쳐 자체의 정체성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

행사장에서 만난 P단행본 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요구하며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행사에 참가한 단행본 출판사가 사실 그리 많진 않아요. 몇몇 메이저급 출판사가 눈에 띄긴 하지만 상당수의 출판사들이 외면했거든요. 이유는 뻔해요. 부스 크기나 면적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도서전에 참가하려면 2,000만원 가까이 들거든요. 게다가 인력도 꽤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출판사 자체 일에는 차질이 빚어지기 쉽죠. 그렇다고 출판사 인지도를 높인다든지 마케팅 효과를 본다고 여겨지지도 않구요. 그러니 이렇듯 반쪽짜리 행사가 벌어지는 거죠.”

실용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S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또 다른 의견을 내비쳤다.

▲ 2010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창작과 비평사, 문학과 지성사, 현대문학 등 유수의 단행본 출판사들이 불참해 아쉬움을 줬다. ⓒ김성배
“제가 알기로 문제는 도서전을 주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단행본 출판사들 간의 알력 때문에 파행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사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모 출판사 회장이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회장이었을 당시에는 대다수의 단행본 출판사들이 도서전에 참여했죠. 하지만 그가 재선에 실패하고 지금의 회장단 체제가 형성되면서는 상황이 안 좋아진 거예요.”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의 백석기 회장(공옥출판사 대표. 74세)은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90년 해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1991년에 웅진출판 대표이사로 출판계에 입문해 7년간 재직한 후 2003년부터 4년간 협성대 총장을 역임했다.

백 회장은 지난 2008년 2월, 출판협회 정기총회에서 열린 2차 투표에서 213표를 얻어 190표에 그친 박맹호 당시 회장(민음사 대표. 78세)을 누르고 제46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백 회장은 1차 투표에서 202표를 얻어 박 회장(222표)에게 뒤졌지만 양 후보가 모두 유효 투표 503표 중 과반수 득표에 실패해 2차 결선 투표에 들어갔고, 최종 승자는 백 회장으로 판명됐다.

이 과정에서 백 회장이 출판 경력이 짧고 대표로 재직 중인 공옥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의 수량이 부족해 870여개의 회원사를 이끄는 수장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 회장 측은 웅진출판 대표로 재임 중 연매출을 성장시켰고 1996년 대한출판협회 부회장, IPA 저작권 위원으로 일할 당시 IPA 총회를 유치하는 등의 이력을 강조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깊어진 감정의 골이 국내 최대 도서전인 서울국제도서전을 반쪽 자리로 만들고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그 피해는 도서전을 관람하기 위해 휴일을 반납한 시민이 고스란히 받았다는 것.

이에 대해 대한출판문화협회 기획홍보부의 안명호 차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협회와 단행본 출판사들 간의 알력 문제는 전혀 근거가 없다”면서 “출판사 관계자들과 이야기해보면 내부 사정 상 도서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국제도서전, ‘정체성’ 확보할 기획력 필요

지난해 11월, 서울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는 제5차 출판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등의 출판 관계자들이 모인 이날 토론회에서는 향후 서울국제도서전의 발전방향으로 4가지가 제시됐다.

▲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유명 작가들의 사인회와 강연회가 있었다. <덕혜옹주>의 작가 권비영씨(좌)와 프랑스 그림 작가 에르베 튈레씨(우) ⓒ김성배
이는 ▲구색맞추기식 행정을 탈피해 내실 있는 출판교류의 도서전 모색 ▲상호 보완적 관계가 될 수 있는 출판사와 에이전시 참여 유도 ▲저자-편집자-에이전트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공식적인 장 마련 ▲해외 실무출판인 초청의 지속적인 실효를 거두기 위한 엔트리 확보.

물론 2010 서울국제도서전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보다 관람객이 7,000여 명 늘었고, 지난 해의 주빈국이었던 일본의 인기 작가들이 주로 사인회 참여에 국한되었던 반면, 올해 프랑스 작가들은 독자와 직접 얼굴을 맞대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

하지만 이번 서울국제도서전도 ‘재고 도서 판매처’라든지 ‘어린이책 할인장터’와 같은 오명을 벗는 데는 실패했다는 게 일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는 서울국제도서전만의 참신한 기획력과 경쟁력 있는 콘텐츠 마련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

▲ 전자출판 추세에 맞춰 교보문고, 인터파크, 북센 등 전자책 사업체들이 참여했지만 단말기 전시 정도에 그쳤다는 평가다. ⓒ김성배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전자출판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교보문고, 인터파크, 북센 등 전자책 사업체들을 참여시켰지만 단말기 전시 정도에 그친 점도 주최 측의 기획력 부족 탓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또한 국제도서전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각국 출판업자 간의 저작권 거래가 저조했던 점도 아쉬움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기획홍보부의 안명호 차장은 “여러 미흡한 점이 지적됐지만 이번 도서전에서는 전자출판 인프라 마련과 저작권과 관련한 공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나섰다”면서 “국내 최대의 도서전인 만큼 문제점을 보안해 내년에는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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