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과수제과·피맛골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무과수제과·피맛골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 황교익 / 맛칼럼니스트
  • 승인 2010.04.11 14:4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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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서울음식 먹어본 지 30년’ 1]

서울은 내게 어색하다. 지방 소도시에서 살다가 대학 간다고 1980년에 이사 온 도시이다. 30년을 이 도시에서 공부하고 밥을 벌고 살았지만 내겐 항상 남의 도시이다. 정 붙여 오래 눅진하게 살아본 동네도 없다. 제 집 마련한다고, 재테크한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산다.

요즘은 일산에 있다. 경의선 타고 서울을 들락거린다. 엄격히 말하면 나는 서울시민도 아닌 것이다. 그런 나더러 ‘서울의 음식’에 대해 연재하자니 머리가 복잡하다. 서울 토박이 음식 전문가는 없나? 하기야, 옛날 서울 음식이 지금 서울에 얼마나 있겠는가. 그가 쓰건 내가 쓰건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서울 토박이도 근 30년간 이 서울이 변화해 나간 것을 보면 나처럼 어색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은 만인에게 서먹한 도시일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의 한 시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장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서울 음식은 무과수제과의 빵이었다. 1975년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는데 종로3가의 여관으로 큰형이 나를 찾아왔었다. 큰형은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담임의 허락 아래 큰형이 나를 데려간 곳이 무과수제과이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수많은 빵에 나는 정신을 놓았었다. 큰형은 어린 동생에게 빵을 잔뜩 먹이고 한아름 싸주었다. 내게 무과수제과는 서울 음식의 한 상징처럼 머리에 박혔다.

▲ 지난 겨울(2009년) 허물기 직전의 피맛골. ⓒ황교익

그로부터 5년 후 서울에 올라왔을 때 시내 나가면 이 무과수제과에서 빵을 사먹곤 하였다. 그러면서 서울 토박이들이나 나보다 일찍 서울에 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무과수제과의 긴 역사를 들었다. 해방 전후에 문을 연 제과점이었으며 한때 청춘남녀들의 미팅 장소로 유명하였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무과수제과에서 미팅 한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 했다. 그 긴 세월 서울 토박이들에게 무과수제과는 감미로운 청춘의 한 시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장소였던 것이다. 나는 무과수제과에서 미팅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내내 서운하였더랬다.

1990년대 말이었을 것이다. 한순간에 무과수제과가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였다. 그 근처에서 밥을 벌 때였다. 서울 시민들은 무과수제과의 실종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꽃같은 청춘일 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 있는 그 제과점이 사라지는데 누구 하나 ‘조사’조차 날리지 않았다. 문 닫기 전에 나는 무과수제과 주인과 몇 마디를 나누었다. 

 - 왜 문 닫아요. 
 “ 장사가 안 돼요.” 

 - 왜 안 돼요. 
 “이런 구닥다리 제과점이 누가 와요. 다 베이커리점에 가지.”

나는 그날 밤 술을 마시며 서울 토박이들에게 욕지거리를 날렸다. 아름다운 청춘의 추억이 있는 제과점 하나 챙기지 못하는 바보들이라고. 서울 토박이들 깍쟁이라더니 정도 없는 인간들이라고.

피맛골마저 날아가다

그런데, 요즘 그 욕지거리를 내게 돌리고 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무과수제과만 날아간 것이 아니라 청진동이 다 날아갔다. 피맛골이 다 날아갔다. 이 동네는 서울 이주민인 나에게도 크나큰 정이 쌓인 곳이었다. 밤새 피맛골의 선술집을 순례하며 마침내 대취하여 광화문 파출소 담 벼락에 방뇨하는 만용을 부린 적도 있고, 비오는 날 대낮부터 빈대떡에 막걸리를 들이킨 곳도 이 동네이며, 글 한 줄 못 쓰는 데스크가 내 원고 손댔다고 소주 한 병 원샷하고 개새끼 소새끼 불러 젖히던 곳도 이 골목이었다.

청진동이 날아갈 즈음해서 부러 여러 집을 순례하였다. 순례하며 내 청춘도 사라지는 듯하여 가슴이 아렸다. 청진동 재개발 반대 소리 한번 제대로 내어보지 않은 나를 책망하였다. 추억 쌓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서울은, 평생을 살아도 누구에게든 어색하고 서먹할 것이다.(※제목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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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ud2be 2011-05-12 02:07:09
무과수제과의 식빵과 빵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무과수제과가 없어지기전 미국으로 와 사라진지도 몰랐네여..
안타깝네여~~ㅠㅠ

몸이커 2010-04-13 07:34:34
2008년 말에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정신없이 살다가... 다음달 오랫만에 부모님과 친지들도 볼겸 한국에 잠시 들르는데, 외국인 친구와함께 가는터라 '피맛골,이곳은 서울에 가면 꼭 들려야하는 곳이다!'라고 엄청나게 자랑을 해놓은 터인데;; 거..참... 이제 어디가서 밤새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나... 역사가 깊은 피맛골의 혜택을 마지막으로 2000년대에 물려받은 세대로서.. 가슴이 많이 아프네요..

흙장난 2010-04-12 18:04:38
데스크의 간섭을 안 받으니 저렇게 재미난 글이 나오네요.

까까머리 중학생 촌놈이 서울 빵집 보고 눈이 휘둥그래했을 모습을 상상하니..ㅋㅋㅋ.

너무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