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이야기이다.
붓꽃은 5월말에 자줏빛으로 피는 꽃이 아름다운 식물이다. 영어로는 아이리스(iris)라 부르고 쓴다.
아이리스는 붓꽃인 동시에 무지갯빛을 뜻한다. 또한 아이리스는 신화 속의 여신이며, 얼마 전 절찬리에 방송된 TV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최근 아이리스의 인터넷 검색은 ‘붓꽃’보다 ‘드라마 아이리스’가 훨씬 많다. 드라마 아이리스는 첩보원들의 일과 우정과 사랑을 그린 대한민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액션 드라마였다.
필자는 아이리스가 붓꽃이므로 드라마의 제목 아이리스에 남다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의 아이리스는 정체가 불분명한 비밀조직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도중에 붓꽃(독일붓꽃, german iris)을 왜 클로즈업했고, 여주인공의 여러 생각을 왜 붓꽃 정원에서 리얼하게 묘사했을까?
식물을 좋아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장면 때문에 작품의 제목이 아이리스가 됐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일반인들은 그냥 비밀조직의 이름으로 각인했을 터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드라마 아이리스는 신화 속의 아름다운 여신 아이리스(이리스)가 신의 전령으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여주인공에 비유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TV드라마 ‘아이리스’로 유명세
그리스 신화에서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는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무지개가 하늘과 땅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그녀는 천상의 뜻을 지상의 인간세계에게 전달하는 전달자로 여겨졌다. 주로 헤라의 심부름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비를 몰고 오는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이다. 아이리스가 소문이나 풍문의 상징이 된 것은 아마도 남편 때문인 것 같다. 소문은 무지개와 바람처럼 멀리 이동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화 속 여신과 드라마의 여주인공 역할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영명의 무지갯빛(iridescence)은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하며, 영명 또는 라틴 속명(genus)의 붓꽃(iris)도 바로 이 여신의 이름에서 물려받았다. 즉 신화에서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는 지상으로 내려와 붓꽃으로 모습을 바꿨다. 붓꽃의 꽃잎은 무지갯빛의 한 빛깔을 갖고 있다.
붓꽃은 기원전 2000년의 이집트 벽화에 나타난다. 특히 이집트의 투트모세(Thutmose) 3세는 승리의 표지로 여겼고 이 꽃을 재배했다. 그것은 성전의 벽과 입상 그리고 파라오의 왕홀에서 찾아볼 수 있단다.
프랑스 루이 왕조의 국장(國章)
프랑스의 국화는 백합으로 기록되지만 그 백합은 루이 왕조가 문장으로 사용했던 아이리스(붓꽃 종류)이다.
아이리스는 루이 7세 이후에 프랑스의 국장(國章)이 됐는데, 이것은 클로드비히(Chlodwig) 1세가 쾰른 근처에서 알레만인에게 추격당할 때 라인강에 핀 붓꽃 종류를 보고 강을 건널 수 있을 만큼 물이 얕음을 알아 전멸을 모면한 고사에 따른 것이다.
붓꽃은 꽃봉오리가 마치 붓과 비슷한데서 그 이름이 붙었다. 붓꽃은 흔히 백합과 비교되지만 붓꽃의 잎은 검(劍)이라 하고, 백합은 기사(騎士)의 꽃이라고 하여 함께 다루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붓꽃도 백합과 함께 기사의 꽃이 됐다. 꽃말은 슬픈 소식(노란빛), 사랑(흰빛), 기쁜 소식, 우아한 마음, 사명 등이다.
일본에서 5월의 어린이날을 상징하는 꽃은 붓꽃의 일종인 꽃창포이다. 칼 모양의 잎은 용감함을 의미하고, 꽃의 무지갯빛은 독수리의 피를 상징한다.
화투에서 5월의 그림은 난초가 아니라 붓꽃이 옳다. 붓꽃은 우리나라에서 5월의 아름다운 꽃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을 얻어 아이리스의 영명도 일반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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