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숨막히는 도시…그래도 서울이 좋아”
[창간기획]“숨막히는 도시…그래도 서울이 좋아”
  • 서영길 기자
  • 승인 2010.04.12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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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거리에서 만난 시민 10人②

다양한 생각, 다채로운 문화들이 조화를 이루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 곳,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 지난 호에 이어 서울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생각과 모습을 스케치 해 본다.

“서울은 살아 숨 쉬는 도시”
- 탈북자 동지회 사무차장 이해영씨

▲ "탈북해 서울에 왔을 때 사람들의 밝은 표정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죠"- 이해영씨 ⓒ서영길
강원도 원산에서 탈북해 15년째 서울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해영씨(47세, 중계동). 북에서 27살까지 살다가 러시아를 통해 1996년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는 이씨는 탈북자로 6개월간 교육을 받으며 서울에 정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본 서울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성장한 도시였습니다. 처음 접한 서울의 이미지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많았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강한 인상은 서울사람들 표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생활을 하면서, 서울시민 모두가 북한주민들 표정보다 밝다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말한다.

거의 30년간 북한사람들의 표정만 보던 그의 눈에 서울사람들의 표정은 말할 수 없이 밝아 보였던 것.

“서울에 살며 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서울은 기회의 도시이자 희망의 도시다.

“서울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시 자체가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딜가도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죠. 서울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행복합니다”

서울살이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해 하는 그이지만 세금과 물가가 계속 오르는 점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씨는 “서민들, 소외된 분들 용기를 잃지 마세요. 북한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노숙자 분들 쉽게 주저앉지 마시고, 힘을 내 다시 한 번 일어서길 바라요”라며, 밝게 웃었다.


“몸은 불편하지만 난 행복한 사람”
- 지체장애인 김기순씨

▲ "구에서 마련해준 일을 하며 삶에 활력을 얻었죠" - 김기순씨 ⓒ서영길
17년 전,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마비돼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온 김기순씨(60세, 명륜동). 35년 동안 서울에 살고 있다는 김씨는 서울살이 절반을 장애인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에게 서울은 희망의 도시이다.

“장애를 입은 지 17년째인데, 7년째 구(종로구)에서 마련해준 일을 하며 삶에 활력을 얻을 수 있었어요. 현재 ‘종로구립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모니터링 요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입고 보니, 서울이 장애인에 대한 복지 시설이 가장 좋다는 것과 장애인이 구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서울이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김씨는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일도 할 수 있고, ‘창경궁’, ‘비원’ 등이 자리한 서울 한가운데 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애인으로 생활하는 데는 여전히 제약이 많다.

“휠체어로 대부분의 일을 볼 수 있는 것은 예전보다 편해 졌지만, 지하철 계단의 리프트나 승강기 등은 아직까지 불편함을 많이 느낍니다. 잦은 고장 때문에 계단에서 난처함을 겪은 일이 많았어요. 그리고 저같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보다 시각장애, 청각장애가 있는 분들은 아직 불편함이 많은 것 같아요. 이 분들을 위한 장애인 복지시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녀는 일자리를 마련해 준 종로구청에 고마워하고 있단다.

“장애를 입으며 삶의 목적을 잃었는데 일자리를 제공해준 종로구가 고마워요. 저같이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시에서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더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바람 입니다”라며, 서울시에 부탁의 말도 전했다.


“서울시민들의 활력, 바로 제 에너지죠!”
- 지하철 6호선 기관사 구본근씨

▲ "지하철에 대한 서로 다른 민원…조금만 이해해 주시길" - 구본근씨 ⓒ서영길
하루 평균 58만명이 이용하는 서울도시철도 지하철 6호선. 이곳에는 매일 같이 서울시민의 발이 되어 주는 구본근(32세, 성산동) 기관사가 있다.

대구에 살다가 서울도시철도에 입사하면서 시작된 그의 서울살이는 벌써 6년차로 접어들었다. 그에게 서울은 언제나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활력 있는 도시이다.

“처음 서울에 올라 왔을 때 들었던 생각은 ‘복잡하다’ 였어요. 안양천을 한강으로 착각하기도 했고, 처음 한강을 보았을 때, 한강이 ‘바다’ 같았을 정도로 크고 웅장했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크고 복잡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항상 활력이 넘쳤죠. 새벽 5시 30분 첫차를 운행 할 때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렇듯 그는 6년째 서울시민과 함께하며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기관사로 일하며 보람있는 일도 많이 겪었다. 한 번은 운행 중 지체장애인을 도와줬는데, 그의 부모님이 구씨에게 고맙다며 눈물을 보였던 것. 하지만 기관사로 근무하며 애로사항도 많이 있다.

“환절기인 요즘, 열차의 같은 칸에서 ‘덥다, 춥다’ 민원이 들어오는데, 이런 점들은 시민들께서 조금만 이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루에도 에어컨을 ‘껏다, 켯다’ 수십 번 반복하거든요. 그리고 한순간의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지다보니 하루 종일 긴장을 하고, 집중력을 요하는 점이 힘들어요. 그래도 요즘은 스크린도어가 생겨서 불미의 사고(자살사고)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었습니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구씨는 "최선을 다해 서울시민의 발이 되어 드릴테니, 정차 중에 발이나 우산 등을 끼어 위험하게 탑승하는 행동은 자제해 주세요”라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당부했다.


“강압행정만 하는 서울시… 속상해도 서울이 좋아”
- 구두수선집 김태홍씨

▲ "도시미관도 좋지만,노점상도 먹고 살아야지…" - 김태홍씨 ⓒ서영길
종로2가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초입. 20년 동안 한 자리에서만 구두수선을 해온 김태홍씨(70세, 인사동)를 만날 수 있다. 그는 39년간 서울에서 구두수리공으로 살아왔다. 구두수선으로 자식들 교육까지 모두 시켰고, 지금껏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행복해 하는 김씨. 그는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 터를 잡았다.

“난 많이 배우지를 못했어. 그래서 내 새끼들 교육은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이 시키고 싶었지. 자식들 교육 때문에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 온거야”

이런 그의 눈에 비친 요즘 서울사람들의 모습은 ‘예의가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서울에서 구두수선집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봐오고 경험했지. 하지만 나 젊었을 때 보다 지금 서울사람들, 특히 젊은이들 너무 버릇이 없어. 자기주장만 옳다고…. 어른들에게 갖춰야 할 예의가 실종돼 버렸어. 이런 것 때문에 사회갈등이 시작되는거 아니겠어?”라고 반문하던 김씨는 시 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였다.

“시에서 노점상인들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무조건 원칙만 들이대.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뭐하는 짓이야. 이 (구두수선) 부스도 원래 이렇게 좁지 않았는데, 시에서 더 (보도 바깥으로) 들어가래. 속이 많이 상하지. 부스 앞에 붙여 놓은 ‘상품권 삽니다’ 같은 문구도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단속을 할 때면 정말 너무하단 생각마저 들어”

하지만 그래도 서울이 좋다는 김씨는 여생을 서울에서 보내고 싶단다.

“서울은 내 고향 같은 곳이고, 여지껏 이곳에서 먹고 살았잖아. 사람들도 많아서 아직까지 이 일을 하는 데 서울만한 곳이 없어. 예의 없는 젊은 사람들 때문에 화나고, 시 정책 때문에 힘들어도 나는 서울이 좋아”라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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