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비아니, 또는 ‘서울 불고기’에 대한 신화 ②
너비아니, 또는 ‘서울 불고기’에 대한 신화 ②
  • 황교익 / 맛칼럼니스트
  • 승인 2010.05.2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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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서울음식 먹어본 지 30년’ 7]
너비아니라는 단어는 19세기 말 조리책인 <시의전서>에 처음 나온다. 그 책에 너비아니를 이렇게 적고 있다. “연한 정육 얇게 저며 잔 칼로 자근자근 하여 갖은 양념에 재어 굽나니라. 제육구이도 이와 같으니라.” 이 책에는 너비아니가 서울 음식이라는 말은 없다. 그냥 고기를 얇게 저며 자근자근 다진 후 양념해서 구운 고기 음식을 말하고 있다.

1970~80년대 자료들을 보면 너비아니라고 적고는 괄호를 만들어 그 안에 불고기라고 쓰고 있다. 또 어떤 자료에는 불고기는 저급한 음식인 듯 말하고 너비아니는 뭔가 품격이 있는 음식인 듯 쓰고 있다. 불고기라는 말 대신에 너비아니라는 말을 쓰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 한국식 불고기(위)는 일본식 불고기인 야키니쿠와 유사한 점이 많다. 야키니쿠는 한자로 ‘燒肉’(소육)이라 쓰는데 풀이하면 ‘燒(불)+肉(고기)’이다.

너비아니, 서울 신흥 부자들의 욕망

1970년대 강남이 개발되면서 서울에 신흥 부자들이 속속 생겨났다.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고깃집도 서서히 늘어났다. 불고기는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 멀리 전남 광양에도, 부산 해운대에도 있었다.

이어 경제 사정이 점점 나아지면서 서울의 서민들도 쉽게 불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의 신흥 부자들은 지방민이나 서민들이 먹는 불고기와는 다른, 품격 있는 불고기를 먹기 원했다.(어느 사회이든 상위계급들은 꼭 따로 놀려고 한다.) 그냥 불고기가 아닌, 뭔가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불고기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누군가가 옛 문헌의 너비아니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울식 불고기’니 ‘궁중 불고기’니 하는 수식어를 붙였다.(요즘 궁중떡볶이가 유행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서울의 신흥 부자들이 한양의 양반 노릇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 욕망을 너비아니라는 말이 충족시켜준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서울의 신흥 부자들은 이 너비아니도 버렸다. 쇠고기는 얇게 썰어 양념하여 먹는 방식보다는 두툼하게 썰어 숯불에 구워야 맛있다는 것을 안 까닭이다. 서민들도 신흥 부자들의 습성을 뒤쫓아갔고 결국은 불고기든 너비아니든 쇠고기를 얇게 저며 굽는 방식은 급속히 사라졌다.

근래에 불고기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한식 세계화의 한 아이템으로 불고기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야키니쿠(일본식 직화구이 또는 불고기) 붐이 일어 한국에까지 그 바람이 미치니 “이건 우리 것이야” 하고 민족감정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이제는 우리가 잘 먹지도 않는 음식을 두고 이러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불고기는 우리 것이 맞는가?

과연 불고기는 우리 민족만의 독창적 음식인가에도 많은 의문이 있다. 우리의 불고기와 일본의 스키야키(쇠고기와 야채를 넣어 만든 일본식 전골 요리), 야키니쿠, 이 셋은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음식이다. 일제시대에 분명히 서로 관여하고 분화하였을 것이다.

그 관여와 분화의 시발 음식이 무엇이냐를 두고 한일 간에 민족적 자존심 대결을 벌이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한테 별로 이득이 안 된다. 불고기라는 말 자체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고(음식평론가 김찬별의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이란 책에 따르면, <동아일보> 1935년 기사에 불고기란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그 조어 방식이 묘하여 우리에게 불리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 음식명 짓기의 원칙은 ‘재료+조리법’이다. 떡+볶이, 제육+볶음, 감자+튀김, 김+말이, 김치+찌개, 된장+찌개, 삼계+탕, 대구+탕, 아구+찜 등등. 이는 ‘목적어+동사’로 문장을 만드는 알타이어계의 언어구조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물론 원칙이 있으니 변칙도 존재한다. 비빔밥, 군고구마, 볶음국수처럼 뒤집어진 것도 있으며 조리된 음식의 모양새나 맛 등의 특징을 잡아 이름을 붙이는 방식도 있는데, 이런 음식명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불고기는 한국어의 음식명 조어 구조에서 벗어난다. 불(火, 조리방법)+고기(肉, 재료)이다. 한국 음식명 중에 ‘불-’로 시작하는 단어가 불고기 외에는 불닭, 불닭발, 불오징어 정도이다. 그러나 이때의 ‘불-’이란 ‘붉은-’ 혹은 ‘매운-’으로 쓰이는, 뒤에 붙은 닭이나 오징어를 형용하는 접두어로, 불고기가 ‘붉은 혹은 매운 쇠고기 요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한 같은 작명법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없다. 일본어 야키니쿠는 한자로 ‘燒肉’(소육)이라 쓴다. ‘燒(불)+肉(고기)’이다. 여기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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