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朝鮮王陵)①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朝鮮王陵)①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1.01.11 11:2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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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문화유산 돌아보기’ 30]

조선시대 왕실의 무덤은 그 신분 또는 위계에 따라 능(陵)·원(園)·묘(墓)로 구분된다. 왕릉은 전근대사회 최고 권력자로 살다간 왕 또는 왕비의 무덤인데, 죽음으로 혼(魂)과 분리된 백(魄)과 시신을 함께 모신 곳이다.

유교에서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육신을 거느리는 백과 정신을 다스리는 혼이라고 하는 것이 몸에 함께 있다는 뜻이다. 즉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혼백이 나갔다는 뜻이니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육신은 사라져도 초자연적인 혼백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왕릉은 조상신을 모시는 사상에서 나온 제례의식과 더불어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성함을 지닌다.

▲ 태조의 건원릉 정자각.

이러한 사유형태에서 살아 있는 자의 거주 공간으로서의 집과 궁궐 등 양택(陽宅), 죽은 후 혼이 머무르는 공간으로서의 사당(祠堂), 시신과 백이 모셔져 있는 능·원·묘 등 각종 무덤인 음택(陰宅)의 공간구조가 설정된다. 따라서 왕릉은 왕과 왕비의 음택을 말한다.

즉 왕은 살아서는 각종 궁궐에서 거주하며 정치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고, 죽은 후에는 종묘에 혼을 모시고, 능에 체백(體魄)을 모시게 된다. 따라서 그 공간구조와 시설물의 배치도 같은 성격으로 마련되었다.

예외로 연산군, 광해군과 같이 왕위에 있었지만 묘호를 받지 못한 왕이나,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와 같이 왕의 생모로서 한때 능으로 불렸지만 폐비된 후 복권되지 않은 경우는 묘라고 불렸다. 이는 당대 정치적 사건과 관련되고,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복권되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왕릉의 가치,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은 도성에서 10리 밖, 100리 이내에 위치해야 한다는 기준에 따라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왕의 능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울과 서울 근교에 분포해 있다.

조선 왕릉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서 100년 전까지 조성되었으나 조성 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훌륭하게 원형이 보전되어 왔다. 여러 차례의 전쟁과 20세기에 급격히 진행된 도시개발을 겪으면서도 온전한 모습으로 보전되어 마침내 2009년 6월 26일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1392년에 건국하여 1910년까지 519년간 지속된 조선왕조는 왕과 왕비 및 추존 왕과 왕비의 무덤인 왕릉 42기와 폐위된 두 왕의 묘 2기를 합해 총 44기의 무덤이 모두 보존되어 있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로 그 고유성을 띤 가치가 매우 높다.

아울러 조선 왕릉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고유한 유적이며, 또한 개개의 왕릉이 구조나 기능·의례 면에서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점은 더욱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 왕릉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가 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세계유산(World Heritage)은 유네스코(UNESE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1972년 정기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문화와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후세에 전수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유산을 말한다. 이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이 두 가지 유산의 성격이 복합된 복합유산(혼합유산)으로 구분되었으며, 1978년부터 시행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세계유산협약 시행지침서’의 내용을 충족해야 하는데, 기념물·건조물군·사적 등 3개의 영역 가운데 문화유산의 진정성, 완전성, 탁월한 보편적 가치, 국가의 보존관리 상황, 유사 유산과의 비교 및 차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등재기준은 ① 인간의 천재적 창조성을 보여주는 걸작, ② 오랜 시간동안 또는 세계문화사적으로 건축의 발전 또는 기술, 장식예술, 도시계획, 조경설계에 관한 인류가치의 중요한 교류현상을 보여주는 유산, ③ 현재 존재하거나 사라져버린 문명 또는 문화전통에 관한 독특하고 예외적인 증거가 되는 유산, ④ 인류역사의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유형의 건축물이거나 건조물 집합체 또는 조경유산, ⑤ 한 문화(복수의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 인간주거지 또는 토지이용에 관한 유산으로, 급격한 변화로 파괴의 위험에 직면한 문화유산, ⑥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보유한 행사․생활전통·사상·신념·종교와 세계적으로 우수한 예술·문학작품과 직접적이거나 가시적으로 관련이 있는 유산(예외적 적용 : 적어도 문화와 자연유산의 선정기준 중 다른 기준과 함께 부합될 때만 인정됨) 등이다.

그리고 문화유산의 진정성과 관계되는 내용은 ① 디자인·재료·제작술 또는 세팅에 있어 진정성 평가를 충족시키며, 문화경관의 경우 독특한 특성과 구성요소를 지니는 것(재건축의 경우 매우 예외적으로 적용), ② 지정된 문화재 또는 문화경관의 보전을 보장하는 적절한 법적, 계약상, 전통적 보호와 관리 기제를 가지고 있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은 기준에 의해 조선 왕릉은 조선왕조 특유의 세계관·종교관 및 자연관에 의해 타 유교 문화권 왕릉들과 다른 자연친화적인 독특한 장묘 문화를 보여는 것으로, 문화적 전통 또는 살아 있거나 소멸된 문명에 관한 독보적이고 특출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에 일치하고 있다.

또 500년 이상 지속하여 만들어진 조선 왕릉은 당대의 시대적 사상과 정치사, 예술관이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공간구성과 건축물과 석물 등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독창성이 뛰어난 조형물로서,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에 해당된다.

그리고 국가 제례가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왕의 신위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기 위한 공간인 종묘가 설립되어 조상숭배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사실은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보유한 사건 또는 살아 있는 전통·사상·신념과 예술적·문화적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는 항목과 일치되는 사항이다.

따라서 2005년도부터 ‘조선 왕릉’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 드디어 2009년 6월 26일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9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궁궐․종묘․왕릉 등 나라의 대표적인 상징시설물이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우리나라의 역사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은 조선왕조 519년 27대에 걸친 왕과 왕비의 무덥 44기 가운데, 북한에 있는 제릉齊陵(태조 원비 신의왕후)·후릉厚陵(정종)과 연산군묘·광해군묘를 제외한 40기를 포함하고 있는 대규모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왕릉 40기의 면적은 64,971,864㎡(6,551.3ha)로 핵심지역은 18,755,788㎡(1,891.2ha), 완충지역은 46,216,076㎡(4,660.1ha)이다.

▲ 건원릉 잔디대신 억새를 덮은 봉분.

한편 조선 왕릉은 세계유산협약에서 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함께 조선왕릉 만이 갖는 고유한 조형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조선 왕릉은 먼저 그 전체 형태나 석물의 예술적 표현에서 고유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함께 동양 삼국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능묘와 견주어 알 수 있듯이 조선 왕릉의 봉분 축조방식이나 원장설치와 각종 석물배치는 주변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문·무석인의 조형이나 호석과 난간석은 조선왕조 조형예술에서 달성한 독특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홍살문에서 신도神道(향로香路)를 따라 이어지는 참도參道와 그 끝에 놓인 정자각의 단순하면서 절제된 건축형태는 조선 왕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엄숙하고 독특한 조형세계이다.

또 조선 왕릉의 조성에 있어서 풍수 이론에 대한 고유한 해석과 적용은 조선 왕릉이 보여주는 문화적 특징이다. 조선 왕릉에 적용된 풍수이론은 한반도의 지리특성이 고려된 조선 고유한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중국처럼 지리적 약점을 인공적인 구조물로 보완하려는 방식 대신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 조건에 구조물을 맞추어나가는 자연친화적인 방식을 선택하여 그 가치와 독창성을 더한다.

그리고 조선 왕릉과 관련하여 각 ‘능지陵誌’ 등 풍부한 기록물 역시 주목할 가치이다. 또 능원을 조성하면서 작성한 ‘산릉도감의궤’는 석물의 배열이나 정자각의 조성과정은 물론 산릉조성을 위해서 흙을 지어 나르는데 참여한 단순노역자의 이름까지 작성한 모든 문서가 남아있다. ‘산릉도감의궤’는 왕릉이 만들어졌을 때의 모든 내용을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따라서 설령 왕릉 중 일부가 불의의 사고로 훼손되거나 본래 모습을 상실했다고 해도 이들 의궤를 통해서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이렇게 왕릉 조영과 의례의 절차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후대에 전해짐으로써 조선시대 왕실 문화를 정밀하게 살필 수 있는 진정성의 가치가 한층 높이 평가되는 것이다.

아울러 조선 왕릉은 단순히 건조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개국 이후 현재까지 600여 년을 이어온 제례가 행해지고 있다. 일제강점으로 말미암아 1910년 조선왕조가 막을 내렸을 때 왕릉의 제례 역시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여건에 처했다.

그러나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제례를 계속해 나갔으며 그것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은 왕릉제례 외에도 종묘제례도 주관하면서 조선왕조의 무형적인 문화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왕실의 장례와 제례는 엄숙하고도 완벽한 예법에 따라 행해졌다. 또한 전승된 예법의 절차와 의미, 그리고 다양한 의물들은 각기 당시의 사상과 문화를 고찰할 수 있는 중대한 자료이다.

이와 같이 조선 왕릉은 고유한 전통적 자연관과 엄격한 유교 예법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성스럽게 조영되어 각 왕릉이 완전성과 진정성을 갖추고 있다. 또 그 원형이 지금까지 잘 보전되고 있으며, 제례의식 또한 유구하게 이어지고 있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특성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조선 왕릉만이 가지는 독특한 문화적 독창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 왕릉은 문화유적으로서 존재와 가치를 넘어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수반한다. 한 왕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의미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건축물을 보존하고 있는 조선 왕릉의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나아가 조선 왕릉의 문화적 가치를 실용적 가치로 재창조하여 관광자원으로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참여와 실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인문학적 정신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어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 인류의 삶에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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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rkdms 2011-07-20 22:04:43
감사합니다

ehrkdms 2011-07-20 22:04:43
감사합니다

ehrkdms 2011-07-20 22:04:3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