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지진, 그 후 1년
아이티 대지진, 그 후 1년
  • 백연주
  • 승인 2011.01.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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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주의 ‘프랑스 엿보기’]

2010년 1월 12일, 강력한 지진이 아이티의 수도 포르 토 프랭스(Port au prince)를 강타, 무려 2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사 후 1년여가 지난 지금, 당시 기적적으로 구출됐던 사람들은 어떻게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공포의 8일, 그리고 기적

다섯 명의 형제, 자상한 부모님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던 어린 소년 키키는 방과 후 숙제를 하던 중 같이 있던 형제들과 함께 무너져내린 집 아래 갇히게 되었다. 고립되었던 8일 동안 눈 앞에서 어린 동생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키키와 큰 누나 사브리나는 파견된 뉴욕 구조대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대지진 이후 또 다른 재앙을 두려워하던 키키의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지방에 있는 친가로 보내고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수도에 홀로 남아 세관에서 근무하며 번 돈을 매달 가족들 생활비로 보낸다.

그의 월급은 75유로, 한화로 약 15만 원 정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엔 벅찬 액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액을 가족에게 보내는 그는 현재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생활 중이다.

그렇다면 지진 위험이 없는 지방으로 피신한 키키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키키의 어머니는 모아진 성금으로 키키와 사브리나를 학교에 입학시켰다. 다만 아이들의 학교는 2km 정도 떨어져 있는데다가 물살이 거센 강까지 건너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업어 통학시키는 상황. 이러한 어머니의 정성으로 이젠 제법 활기를 되찾았다는 키키.

키키는 이제 몸도 건강하고 지진 당시 상황을 웃으며 얘기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키키의 누나 사브리나는 아직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암흑속에서 사망한 어린 동생들의 시체에 옷을 벗어 덮으며 며칠을 울었다는 그녀는 아직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키키와 사브리나라도 무사히 구출되어서 다행이라는 어머니는 하루빨리 온 가족이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모아졌던 약간의 성금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고 건강도 많이 되찾았지만 요즘은 돈이 부족해 밥 한 끼 제대로 먹기도 힘들어요. 혼자 폐허가 된 수도에 남아 고생하는 남편을 돕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해 안타까워요"- 그라시아

구출된 어린 천사, 위니

지진 발생 후 약 16시간 만에 구조되었던 위니는 당시 18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기였다. 안타깝게도 위니의 부모님은 그녀를 품에 안아 보호하려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도 꿋꿋히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던 위니는 아이티 대지진 생존자 중 최연소로 집중조명을 받았다.

불운의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위니는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구조된 후 임시 보호소에 위탁되었었던 위니는 미국의 한 아동보호단체의 도움으로 삼촌을 찾을 수 있었다. 위니의 삼촌 프랜츠 또한 지진으로 임신 4개월이던 아내를 잃고 홀로 방황하고 있었고 그는 즉시 위니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가끔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위니는 마치 사고 당시 상황이 떠오르는 듯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요. 안타깝죠. 너무 어려서 부모님의 사망을 기억하지 못해요. 그저 제가 아빠인 줄 알고 있죠”

그렇게 삼촌과 새 인생을 시작한 위니는 이제 제법 말도 잘하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또래 아이들과 똑같아졌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아동보호단체의 담당자가 정기적으로 그의 집을 방문해 위니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으며 삼촌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위니의 원활한 교육과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럭키 가이 위스몬드

식료품점 점원이었던 25세 청년 위스몬드는 지진 당일, 창고 정리를 위해 지하 1층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굉음이 들리며 벽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는 붕괴된 4층 건물의 지하에 홀로 갇히게 되었다. 약 2주 후 프랑스 구조대에 의해 밖으로 나오게 된 그는 의외로 건강한 모습으로 환한 미소를 띠었다.

마침 식료품점의 창고에 있었던 덕에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음식으로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던 행운의 사나이 위스몬드.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새로운 꿈을 꾼다. 엄청난 대재앙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신의 계시라 믿게된 그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때 만약 신이 저와 함께 계시지 않았었다면 전 이미 죽었을거에요. 이 모든 게 기적이죠. 이런 행운을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하고 싶어서 목사가 되기로 했어요”

그러나 지진으로 전재산을 잃은 위스몬드에겐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교에 진학할만한 자금이 없는 상태다. 도시 재건축으로 집을 다시 찾을 때까지는 지진 피해자들이 머물고 있는 수만 개의 텐트를 돌며 설교를 이어가겠다는 그는 오늘도 또 다른 청중을 찾아 나선다.

대지진 이후 도착하기로 되어있던 수십억 원의 지원금은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의 무관심으로 행방이 묘연하고 그렇게 폐허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붕괴된 도시.

아직도 수만 명의 아이티 국민들이 텐트에서 쪽잠을 자고, 수천 명의 아이들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임시보호소에 머물고 있다. 한순간에 잃어버린 그들의 행복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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