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朝鮮王陵) ③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朝鮮王陵) ③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1.01.21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각순의 ‘서울문화유산 돌아보기’ 32]

왕릉의 공간 구성

조선 왕릉의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독특한 특성으로 보이는 일정한 법칙성을 보인다. 신성한 공간인 왕릉은 봉분이 있는 능침공간과 정자각 등 제사를 지내기 위한 시설들이 위치해 있는 제향공간으로 나뉘는데 이 두 공간은 높낮이에 차이를 두었다.

따라서 봉분이 있는 성역 공간에 서면 아래의 제향 공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반대로 아래쪽의 정자각 부근에서는 정자각·비각·수복방·수라간 등의 부속건물과 우거진 수풀 등 때문에 위쪽 능침이 있는 성역 공간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는 능침공간을 성역으로서 신비롭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왕릉 공간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울창한 숲으로 주위 경관을 조성하였다.

조선시대 왕릉의 신성공간 구성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인 정자각을 경계로 2단계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왕의 체백이 모셔져 있는 능침공간과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제향공간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홍살문에서 봉분의 내룡(來龍)지는 신성공간에 해당한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왕릉을 에워싸고 있는 능역으로서 사신사(四神砂)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과 능역 외곽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설정한 화소(火巢) 지역까지를 왕릉의 공간 범위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곳에는 제향을 위해 왕이 행차할 때 머무는 시설과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 및 수로 등 왕릉 보호시설이 포함된다. 이는 왕릉 보호구역이자 왕릉으로 나가는 진입공간으로 세속공간의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하면 홍살문의 설치 의미와 같이 이곳부터 능침공간까지를 신성공간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중 정자각까지는 왕의 혼백과 참배자가 만나는 제향공간이 된다.

특히 사초지 언덕 위 봉분을 중심으로 곡장과 석물이 조성된 능침공간은 신성공간의 중심부분이 된다. 물론 산 자의 영역과 죽은 자의 영역이라는 큰 범주로 나누어 보면 왕릉의 전체 능역을 신성공간 즉 성역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전근대사회에서 산 자의 최고 권력기관인 왕궁과 죽은 자의 최고 상징시설인 왕릉·종묘가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 숲에 둘러싸인 선릉의 성종 능역. [나각순 제공]

한편 조선 왕릉의 배치구조는 고려 초까지 봉분을 중심으로 하여 석물들이 추가되는 형식으로 전개된 능 위의 구역과 고려 말 성리학의 전래와 그 영향에 따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능 아래의 제례를 위한 구역으로 구성되었다.

고려 말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玄正陵)에서 능위의 봉분과 석물 구조는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전기의 왕릉은 재궁이 자리하는 혈(穴)을 중심으로 마련되어, 도교의 영향으로 비정형적이고 비규칙적인 꺾어진 축선 형태가 많이 나타나며, 한편으로는 유교의 영향으로 직선축 형태도 함께 나타난다.

태종의 헌릉이나 문종의 현릉을 살필 수 있다. 조선 중기에는 유교적인 정치체제가 안정됨에 따라 불교적 요소가 사라지고 형식적이고 기하학적으로 다듬어진 직선축 형태가 완성된다.

인조의 장릉과 현종의 숭릉에서 살필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영조 이후 세도정치의 출현에 따른 왕권의 약화는 왕릉 건축에도 반영되어 직선축 형태의 변형인 사선축 형태로 나타난다. 순조의 인릉과 헌종의 경릉에서 살필 수 있다.

또 전체적으로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참도 길이와 봉분까지의 길이에 일정한 관계를 보인다. 후대에 올수록 전체 거리의 규모가 줄어들면서도 전체의 양식은 원래의 법식을 지켜나갔다.

이는 봉분의 배치형식이 후대에 올수록 단릉·쌍릉·동원이강릉보다 합장릉 형식이 많아진다는 것과 일치한다.

왕릉의 배치 개념은 일반적으로 왕궁의 배치 개념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즉 명당개념에 따라 오성좌(五星座, 수·금·목·화·토)나 삼신오제사상(三神五帝思想)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왕궁은 살아있을 때의 공간이고, 왕릉은 사후세계의 공간으로 보아 영혼불멸설에 따라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배치를 일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봉분을 왕의 능침공간으로 해석하여 궁궐의 침전공간과 일치시킴에 따라, 제례공간에 있는 정자각의 정전이 북궁, 배전이 중궁, 정자각 좌우의 수복방과 수라간이 동궁과 서궁, 홍살문이 남궁에 해당되는 배치공간으로 대치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한편 후대에 내려오면서 정자각과 일치되었던 수복방과 수라간의 위치가 예법상의 해석문제로 홍살문 쪽으로 내려옴에 따라, 봉분-정자각-홍살문의 배치가 형식적인 직선축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 개념은 자연지형의 풍수형국의 이해에 따라 융통성을 갖게 되는 것으로 획일적인 적용은 어려운 것이다.

즉 왕릉의 건축물 배치가 명당 개념의 원형을 바탕으로 하여, 물과 산의 형국에 따라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개연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사후의 궁에 해당되는 능은 자연 속에서 정제된 규모와 생략된 표현의 현상적 특징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왕궁은 살아 정치하는 활동적인 공간을 표현한 규모를 가지며, 종묘는 사당 공간으로서 엄격한 규모와 자제되고 정적인 표현의 건축물이라는 것과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 다음회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