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청장 선거쟁점 ①] 후보 자격 공방
지난 5월 23일, 한나라당 중앙당에서는 도문열 부대변인 명의의 매우 이례적인 논평 하나가 발표되었다. 전국적 사안도 아니었고 야당 주요 지도부를 겨냥한 것도 아니었다. 고작 서울 한 자치구 구청장 후보, 다름 아닌 민주당 유종필 관악구청장 후보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은 내용이었다. 관악구 판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판단해서였을까. 도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유 후보는 자신을 오직 한 길, ‘지조와 소신’을 지켜왔다며 노무현 대통령 언론특보를 지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후 민주당에 남아 지난 2005년 ‘노 대통령은 영남패권주의 정당을 꿈꾸는가?’ 등의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며, “관악구에서 광주로, 다시 관악구청장으로 출마한 유 후보는 배신정치, 이중적인 정치철새’라는 비판에 정식으로 답해야 한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자 이틀 뒤(25일) 이번에는 민주당 중앙당에서 논평이 나왔다. 이규의 부대변인 명의의 “오신환 관악구청장 후보는 천안함 영결식 날 주민자치위원장들과 회식을 한 사실로 인해 사전 선거운동으로 고발되었다”는 사실 폭로로 시작하는 이 논평은, 핵심은 “경찰은 편들기ㆍ보복 수사를 중단하고 신속하게 불법 선거운동에 엄중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지만 누가 봐도 한나라당 쪽 경쟁 후보를 겨냥한 것이었다.
배신, 낙하산, 뜨내기, 철새, 함량미달…
6월 2일 투표일이 점점 다가오고 각 지역마다 승패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울 구청장 선거 역시 후보자들 간 정책 논쟁과 자격 공방이 한층 더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서울타임스>는 그 가운데 ‘서울지역 구청장 선거 쟁점 리뷰’ 첫 번째 순서로 각 후보자들이 상대 후보에 제기하는 ‘자격 논란’을 살펴본다.
후보의 자격 문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곳은 중구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출신인 민주당 박형상 후보는 원 공천자의 출마 요건 미비로 갑작스럽게 공천장을 받게 된 한나라당 황현탁 후보를 ‘낙하산·뜨내기’로, 지난 3월부터 불과 2달 사이에 한나라당-민주당-무소속으로 롤로코스터 행보를 보여온 정동일 후보(현 중구청장)는 예의 ‘정치 철새’로 공격하며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그냥 당하고만 있을 상대 후보들이 아니다. 정동일 후보는 ‘정치 철새’ 논란과 관련 “함량 미달의 후보, 정치판에서 갑자기 등장한 후보 때문에 정말 일 잘하는 구청장이 그만둘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외려 다른 후보에 역공을 가한다. 그는 또 한 토론회에서 “도박을 선도하는 사업을 하시는 입장에 있었다”며 황현탁 후보의 한국카지노협회 부회장 경력을 은근히 자극하는가 하면, “변호사라서 말씀은 잘하시지만 저는 중구 발전과 중구민의 행복 증진을 위해서 4년간 쉼없이 달려 왔다”며 중구의 살림에 관한 한 자신이 박형상 후보보다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황현탁 후보도 “중구에서 오랫동안 살아와서 지역 현안과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른바 ‘낙하산’ 논란을 일축하면서 “허황된 약속을 남발하고 정치적인 입신을 위해 구청장 자리를 이용하는 정치 지향적 구청장, 여러 구설수에 오르고 당적을 자주 옮긴 구청장이 아니라 오직 주민 삶의 개선하는 데 노력하는 구청장이 될 것”이라고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토론 불참하자 “무능 후보 입증” 맹비난
강남·서초·송파 강남 3구에서는 방송 토론 참석 문제를 둘러싸고 후보자들 간 자격·자질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여당 후보들로서는 되도록 큰 쟁점 없이, 괜한 분란 일으키지 않고 조용조용 가고자 하는 게 당연. 신연희(강남)·진익철(서초)·박춘희(송파) 이 세 한나라당 후보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는 방송 토론회에 일제히 불참 의사를 밝혀 다른 후보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토론자 구성 문제, 상호 비방 우려 등 각자 그럴듯한 불참 사유를 내놓았지만 “준비가 덜 된 무능한 후보라는 것을 입증했다”(서초 민주당 곽세현), “책임있는 여당 후보의 자세가 아니다”(송파 민주당 박병권), “저와 공약으로 선의의 경쟁을 해줄 것을 기대했는데 이런 기대를 저버렸다”(강남 무소속 맹정주)는 경쟁자들의 맹비난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동작은 후보자의 ‘허위 경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재순 후보 측은 지난 19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문충실 동작구청장 후보를 서울중앙지검과 동작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 핵심 내용은 “문 후보는 서울시 현장시정추진단장으로 근무하며 ‘서울시정 전반에 대한 큰 그림을 짰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추진단은 불성실·부적합 공무원에 대한 시정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울시 주요 정책과 전혀 관련이 없”고 “또한 마포구 부구청장 재직 당시 상암월드컵 및 경기장 유치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문 후보가 부구청장으로 근무했던 시기(1999년) 이전에 이미 결정난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문 후보 측은 그러나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현장시정추진단장의의 업무 영역과 관련해선 “추진단의 일은 시민들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지원 업무였는데 이를 위해 당시 단장으로서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렸다”고 해명하고 있으며, 월드컵 경기장 유치 문제 역시 “마포구에서 부구청장 외에도 재무국장·행정국장 등을 역임하며 6년여를 일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장 유치가 확정된 뒤 추진해야 하는 실질적인 업무들을 지켜봤다”고 반박한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제2의 을사조약?
노원구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자격 시비의 빌미가 됐다. 현 구청장인 한나라당 이노근 후보 측은 민주당 김성환 후보가 지역 내 단일후보로 선출되자 “그들만의 급조된 단체를 앞세워 단일화의 조건으로 나눠먹기식 협약을 체결,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야당과 시민단체 중심으로 구성한다는 ‘정책협의회’는 구청장과 구의회 위에 있는 옥상옥인 조직으로, 이들의 조종을 받아 구청장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서약한 치욕적 제2의 을사조약과 다름없다”고 격렬한 비판을 가했다.
김성환 후보 측은 이에 이노근 후보의 공식 사과는 물론이고, 심지어 ‘후보 사퇴’까지 요구하며 맹반격에 나섰다. “구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조차 독선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있는 제왕적 구청장인 이노근 후보는 지역사회의 주요한 구성원과 함께 하는 구정이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시민참여의 기본도 모르는 이 후보는 즉각 사과하고 후보직을 사퇴하라”는 것이었다.
보통 전문가들은 이상적인 선거로 정책 경쟁 중심의 선거를 꼽지만, 후보자들의 ‘자격 검증’ 역시 선거에서 빠져선 안되는 매우 중요한 과정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세운다고 해도, 평소 앞뒤가 다른 말을 많이 하거나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후보에게 그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실천’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자격 검증과 근거없는 비방, 흑색선전은 엄격히 구분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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