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朝鮮王陵) ④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朝鮮王陵) ④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1.01.2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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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문화유산 둘러보기’ 32]

세속공간

왕릉에서 홍살문에서 능침까지는 핵심 성역 즉 신성공간에 해당된다.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내룡(來龍)으로 이어지는 북현무와 좌청룡·우백호의 산줄기를 비롯한 남주작에 해당되는 안산으로 둘러싸인 내사산(內四山) 지역과 그 밖으로 흐르는 외명당수(外明堂水) 즉, 외금천(外禁川)에서부터 일정한 면적을 화소지역으로 둔다. 이 화소지역까지를 금역(禁域)으로 설정하여 출입을 금하였다.

화소지역은 나무·풀 등을 베어내어 불이 나 내사산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완충지역을 말한다. 이곳은 농경을 하는 생활공간으로 내사산을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또 화소지역에는 민가와 무덤 등을 두지 못하게 하였는데, 왕릉의 외곽에 해자를 파거나 형편상 큰 길을 경계로 하여 그 외곽을 화소지역으로 정하여 화소 안에 있는 시설물을 철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봄·가을로 번(番)을 나누어 화소지역을 구분 관리하였다. 선릉(宣陵)의 경우는 화소 둘레가 20리이며, 삼월 초하루에 번을 합하여 화소를 관리하였다. 또한 화소를 포함한 금역을 헌릉은 40리, 광릉은 90리로 정하였다.

이와 같이 화소지역은 능침 혈의 생기와 관련은 없으나, 신성공간을 보호하고 있는 사산지역으로 화재가 미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사산지역 밖을 금역으로 삼은 곳이다.

한편 왕릉 입구에 이르러 재실․지당․금천교 등 신성공간에 진입하는 공간에 여러 시설이 마련되었다. 이 공간은 처음 만나는 신성공간의 시설인 홍살문․배위(판위)․참도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재실은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세속의 공간이 된다.

재실은 향과 축문을 두는 안향청(安香廳), 제관과 참봉이 머무는 재실(齋室),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제수(祭需)를 마련하는 전사청(典祀廳)으로 구분되며, 능을 관리하는 능참봉이 거주한다. "

이렇게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을 지나 명당수가 흐르는 개천을 따라 진입하면 작은 연못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능참봉과 능 관리인들이 그들의 농토에 물을 대는 공간이었다. 지역에 따라 연못 구조가 없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진입하면 왕릉의 앞을 휘돌아가는 명당수 위에 금천교라는 돌로 만든 다리가 나타난다. 이는 상징적으로 명당수를 건너면 왕의 체백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속세의 마음을 버리고 정결한 마음으로 제향에 임하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금천교의 기능은 왕궁이나 사찰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금천교는 신성공간과 속세공간의 영역과 구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성공간의 제도적 시작은 홍살문이라는 상징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쌍릉의 모습을 갖춘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 [나각순 제공]

신성공간

신성공간은 왕릉에 묻혀있는 선왕(先王)이 항상 머무는 능침공간과 현왕(現王)이 세자 이하 제관들을 이끌고 제향 의식을 위해 배례하고 거둥하여 제향을 올리는 공간을 포함한 제향공간으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① 제향공간

금천교를 지나면 능원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홍살문 안쪽 바로 오른쪽에는 네모난 판위가 있는데, 이곳은 왕이 능에 도착했음을 고하는 알능례(謁陵禮)와 능을 떠날 때 사릉례(謝陵禮)를 올리는 배위이다. 신하들은 홍살문 밖에서 절을 한다.

그리고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단 높은 길은 능에 모신 돌아가신 왕이나 왕비가 이용하는 신도(神道)라고 하며, 왕과 참배자가 사용하는 그보다 낮고 좁은 길이 어도(御道) 또는 어로(御路)가 된다. 이 어로는 정작각의 장대석을 높이 월대를 동쪽으로 돌아 계단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참도가 끝나는 길에서 선왕의 혼백을 불러 제향을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丁字閣)이 있다. 정자각의 양 옆으로는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음식을 데우는 등의 제례 준비 공간인 수라간과 능침을 지키는 사람의 공간인 수복방이 설치되어 있다.

대체로 수라간은 서쪽, 수복방은 동쪽에 위치하는데 동쪽에 나란히 자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례 의식을 마치는 정자각의 서북쪽으로는 축문을 태워 묻는 예감이 배치되어 있다.

또 정자각의 열린 후문(神門)에서 능침의 사초지로 이어지는 곳으로 정자각의 빗물이 떨어진 배수로 위에 작은 다리(神橋)가 놓여 있다. 이는 왕의 음신인 백(魄)이 제향에 따라 봉분에서 나와 다시 돌아가는 교통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사초지 앞쪽에서 이어진 신도(神道)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능침이 마련된 곳의 산신에게 제사지내는 산신석이 사초지 동쪽 아래에 위치하게 되는데, 경우에 따라 중앙이나 예감 가까이에 있기도 하다. 그리고 왕의 업적을 새긴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 자리 잡고 있다.

② 능침공간

능침 공간은 장대석으로 구분하여 3개의 단층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는데, 위로부터 상계(上階)·중계(中階)·하계(下階)라고 부른다. 상계는 초계(初階)라고도 한다.

이렇게 능침공간을 3단으로 나누는 것은 도교에서 유래된 태계(泰階) 즉 하늘에 있는 3계에 비유된 구조이다. 즉 상계는 천자(天子), 중계는 제후(諸侯)와 공경(公卿), 하계는 서인(庶人)으로 그 타고난 자질을 구분한 것과 견주어 상계는 봉분, 중계는 문석인, 하계는 무석인이 배치되어 3계의 조화로 천하가 평안해 진다는 의미이다.

상계에는 여러 상설이 배설되어 있다. 상계에는 왕릉의 핵심으로 봉분의 좌우와 뒷면 3면에 곡장이 둘러져 있으며, 그 주변에는 소나무가 둘러싸여 있어 위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내룡(來龍)으로 이어진 것으로 북현무에 해당하는 산세와 조산으로 이어져 지기를 받게 되어있다.

그리고 입수석(入首石)이 있기도 하다. 능침인 봉분은 보통 방위를 나타내는 12면의 병풍석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병풍석에는 12지(十二支)의 그림과 글자 등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양석·호석·혼유석·망주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중계는 중간 단으로 왕릉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장명등․문석인 1쌍과 석마 1쌍이 배치되어 있다. 그 아래 공간인 하계(下階)에는 무석인이 석마 각 1쌍이 배치되어 있으며, 일부 왕릉에는 그 아래 중앙에 배석(拜石-정중석)이 있기도 하고, 그 아래로 잔디언덕인 사초지(莎草地)가 형성되어 있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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