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직장인이면 ‘독한’ 무교동 낙지쯤은
서울 직장인이면 ‘독한’ 무교동 낙지쯤은
  • 황교익 / 맛칼럼니스트
  • 승인 2010.05.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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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서울음식 먹어본 지 30년’ 8]
1980년대 말부터 나는 서울 사대문, 그것도 광화문과 종로를 무대로 살았다. 직장이 거기 있었다는 말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니 뭔가 그럴 듯한 서울의 음식을 먹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비루한 음식을 먹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점심은 구내식당의 ‘여물’을 먹거나 종로 골목길의 설렁탕과 선지해장국, 김치찌개 등을 먹었다. 저녁은 피맛골 선술집에서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들은 저녁이면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몸소 보여주었다. 한 집에서 술자리를 끝내는 일은 드물었다. 한두 시간 단위로 차수를 변경하며 먹고 마셨다. 그러면서 그 전통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여러 ‘썰’을 풀었다. 이 집은 시인 누구가 단골이었고 저 집은 영화감독 누구의 외상장부가 있다는 둥 그 술집들이 예사롭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그 중에 물리도록 들은 것이 무교동 선술집들의 역사였다.

▲ 무교동 낙지(위)는 “한국음식은 맵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는 음식이다. ⓒ황교익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무교동은 한국전쟁 후 문화계의 중심에 있었다. 바로 옆에 신문사들이 있었고 출판사, 영화사가 이 무교동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었던 까닭이다. 지금은 재개발되어 높은 빌딩이 서 있지만 예전 무교동은 조그만 가게가 골목을 끼고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파는 음식들은 파전이며 빈대떡에 막걸리였다. 당시 가난한 문화계 인사들의 ‘위안소’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교동에 입성을 하였을 때는 벌써 옛날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작은 집들은 헐리어 그 자리에 빌딩이 섰고, 또 더 서느라 내내 공사판이었다. 무교동의 선술집들은 큰 길 너머 교보빌딩 뒷길로 이전을 하거나 사라졌다.

나는 하나둘 사라지는 무교동의 선술집에서 무교동 낙지를 처음 먹고 심한 배앓이를 했다. 매운 것이라면 마산 아구찜으로 단련이 되어 있었는데 그보다 서너 곱절은 매웠다. 그것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으니 속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나는 무교동에 ‘서식’하는 문화계 인사들은 독종일 것이라 여기고 되도록 그 근처에 가지 않으려 했다. “무교동 낙지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하며. 그러나 내가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선배들에 의해 번번이 그 맵디매운 낙지에 소주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독종들” 하고 욕을 하였다.

내가 들은 무교동 선배들의 증언에 의하면, 무교동 낙지는 1960년대에 느닷없이 나타났다. 이제 와서 서로들 원조라고 주장하지만 이 음식을 처음 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어느 것이든 믿을 것이 못된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고 말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매운 한국음식’을 대표하는 무교동 낙지

무교동 낙지는 “한국음식은 맵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는 음식이다. 일본 관광객들의 한국음식 관광 코스로 이 무교동 낙지가 꼭 들어갈 정도이다. 무교동 낙지의 매운맛은 고춧가루보다는 마늘에서 얻는 것이 더 많다. 낙지를 볶다가 마지막에 마늘을 더하고 잽싸게 볶아냄으로써 마늘의 매운맛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무교동 낙지를 먹고 나면 생마늘을 다량 먹은 것처럼 속이 쓰리게 되는 것이다. 속을 다스리라고 데친 콩나물과 콩나물 국물이 같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무교동이 재개발되면서 교보빌딩 근처로 이사를 했던 낙지집들은 최근 또 재개발 바람에 밀려 여기저기 자리를 옮겼다. 광화문우체국에서 영풍문고 가는 길에 있는 낙지집들이 옛 무교동 낙지집의 모습을 그런 대로 지키고 있는 편이다.

최근에 피맛골이 재개발되어 새로 지은 커다란 건물의 2층 식당에서 무교동 낙지를 먹었다. 오랜만에 ‘시내’ 나갔다가 옛 추억을 더듬어볼 겸 맛을 본 것이다. 역시 독한 음식이었다. 새로 옮긴 그 식당은 여전히 직장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자면 무교동 낙지 정도는 먹어낼 정도로 독종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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