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닥 숫자로 농작물 풍흉 알아냈던 보리
뿌리가닥 숫자로 농작물 풍흉 알아냈던 보리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1.31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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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71]
▲ 보리열매. [송홍선]

어릴 때였다. 추운 겨울에 보리밟기를 했다. 그때는 마구 밟으면 보리가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보리밭은 밟을수록 좋았다. 서릿발에 보리뿌리의 착근이 좋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보리를 밟아서 착근이 잘 되도록 했다.

요즘 추위가 한창이다. 사람들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보온효과가 있어 보리가 얼어 죽거나 고사하지 않아 풍작을 이루는 것으로 알았다. 그렇지만 겨울이 따뜻하면 보리가 웃자라는데 웃자란 보리는 날씨가 추워지면 동사하는 것이 많아 흉년이 드는 것으로 믿었다.

민간에서 전하는 보리 점(占)도 잘 알려져 있다. 보리 점으로는 보리뿌리점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보리뿌리점은 입춘날 농가에서 보리뿌리를 파보고 그해 농작물의 풍흉을 알아내는 점법이다. 보리뿌리가 3가닥이면 풍작이고, 2가닥이면 평년작이며, 가닥이 없으면 흉작으로 믿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보리뿌리점은 뿌리가 하나이면 가뭄이 들어 흉년이 들 것이고, 뿌리가 둘이면 비가 알맞게 내려서 풍년이 들 것이며, 셋이면 수재가 있어 흉년이 들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이러한 보리뿌리점은 입춘날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정월초하룻날, 대보름, 동짓날 등으로 지역과 사람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경남 지방의 보리할매점은 보리할매, 보리할마이, 고양할매, 꼬부랑할망구라고도 한다. 보리할매는 보리 12말을 가지고 섣달 그믐날 저녁에 이 세상에 내려와 하루에 한 말씩 보리를 먹고 지내다가 정월의 첫 소날에 하늘로 올라간다.

보리할매는 정월 10일 이전에 첫 소날이 들면 가지고 온 보리를 다 먹지 못하고 남겨서 놓고 가므로 그해 보리농사가 풍년이 들고, 첫 소날이 정월 10일 이후에 들면 가지고 온 보리가 모자라 빌어먹고 가기 때문에 그해 보리농사가 흉년이 드는 것으로 믿었다.

이 점은 각 지방에 따라 전하는 말이 다른데, 고성 지방에서는 보리를 한말 가지고 와서 하루 한 되씩 먹는다고 하며, 창녕군 영산에서는 첫 소날이 정월 7일 이내에 들면 좋고, 정월 13일 이후에 들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 어린이삭. [송홍선]

이밖에도 보리와 관련해 전하는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풋보리먹기는 한민족 세시풍속의 하나인데, 6월 5일 무렵의 망종(芒種) 때에 풋보리를 베어다가 그을려서 먹으면 다음해 보리농사가 잘 될 뿐만 아니라 그해 보리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날 보리를 약한 불에 살짝 익혀서 밤이슬은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다. 이렇게 하면 허리가 아픈데 약이 되고 그해 병이 없이 지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보리와 관련된 암호로는 부러진 보릿대(분쟁, 계약의 결렬), 보릿대를 꺾다(다툼), 보릿다발(경제), 불붙은 보리(재산의 상실), 젖은 보리(투옥)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의 쌀은 농비를 충당하기 위해 거의 팔아야 했고 강제 공출을 했으므로 봄철인 3~4월에 이르면 양식이 거의 떨어져 보리의 수확을 애타게 기다려야 했다.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 하며 보리가 익을 때까지 산과 들을 헤매며 나무껍질이나 나물을 캐어다 연명을 했다. 때문에 보리가 완전히 익기도 전에 곡식을 쪄서 식량으로 삼기 시작했으며, 그러다가 보리가 완전히 익으면 꽁보리밥으로 벼수확 때까지 견디었다.

보리밥은 열무김치나 고추장에 비벼 먹거나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함께 먹으면 별미이다. 특히 보리가 완전히 익기 전에 베어다 쪄서 지은 햇보리밥의 누룽지를 끓여 만든 숭늉은 독특한 미각을 나타낸다. 이외에도 보리개떡, 보릿국, 보리단술, 보리두단 등을 만들어 먹었다.

한때는 이러한 보리밥을 경시하고 쌀밥만을 선호하여 정부에서 보리혼식을 장려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보리밥이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해서 보리밥을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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