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단상 “인생무상 상념을 피우다”
할미꽃 단상 “인생무상 상념을 피우다”
  • 송홍선 /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4.15 14: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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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2]

새싹을 내밀었다. 털을 빽빽이 지닌 채 돋아나 자라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낮은 산야의 할미꽃이다. 뒷동산에 남아 있는 무덤가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새싹이 재빠르게 잎을 펼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꽃줄기가 나와 고개를 숙인다. 매년 이맘때면 필자는 이상한 상념에 빠져든다. 할미꽃을 바라보면서 인생무상을 떠올리는 것이다.

인생무상을 느끼거나 한번쯤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에 어울리는 말이 있다. 그보다 선한 마음이 최선임을 깨달았을 때에 더욱 그럴듯한 말이라고 해도 좋다. 그것은 ‘천불생무록지인 지불생무명지초(天不生無祿之人 地不生無名之草)’다. 즉, 하늘은 복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을 낳지 않으며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자라나게 하지 않음이니,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대로 행복과 제 먹을 것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 할미꽃

그런데 행복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 실러(Schiller)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왔다가 미련도 없이 지나간다. 어김없이 왔다가 틀림없이 간다.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니 주어진 시간과 맡겨진 시간은 잘 붙들어 잡아야 한다. 잃어버린 시간과 가버린 시간은 아쉬움과 미련만을 남긴다. 현재는 화살처럼 쏜살같이 날아가고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라고.

정말이지 인생살이에서 귀중한 황금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행복도 젊음도 따라서 지나간다. 때문에 사람들은 정도의 시간을 잘 활용하며 죽는 날까지 행복의 시간을 마련하고 젊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명창 장우벽(張友壁)은 성천기생(成川妓生) 일지홍(一枝紅)과 술잔에 정을 나누면서 늙음을 한탄하여, “백발은 누구도 싫어하는 것이나(白髮非公道) / 사랑하는 마음은 역시 인정일네라(東風亦世情) / 동산에 꽃이 아름답게 피어났건만(名園花早發) / 한사의 구레나룻이 너무 희구나(寒士구先明)”라고 읊었다.

일지홍은 이 시를 듣자 장우벽이 서글퍼하는 심정을 재빨리 알아채고 다른 옛 사람의 가사로서 얼른 대를 놓았다. “태양에는 아침과 저녁이 있어도(白日有朝暮) / 청산에는 옛날과 지금이 없도다(靑山無古今) / 영욕을 떠나 한잔 술을 나누며(一杯樂辱外) / 서로의 회포를 마음껏 풀어보세(相對細論心)”라고.

은발(銀髮)을 축 늘어뜨린 백두옹(白頭翁)

어쨌건 실러의 말처럼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면 누구나 백발의 노인이 된다. 일지홍이 한잔 술로 회포를 풀어야 한다고 하였던들 늙음은 늙음이지 않은가.

아지랑이 피어 오른 봄날 뒷동산의 할미꽃을 바라보면 한없는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할미꽃은 암술의 날개를 긴 은발(銀髮)처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나면, 이 날개가 하얗게 부풀어 할머니가 흰빛의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모양같이 둥글게 된다. 그래서 할미꽃을 백두옹(白頭翁)이라 불러보니 애석하기 그지없다.

인생은 덧없어도 사랑과 우정과 행복이 있기에 그나마 살만하다. 인생을 탓할 만한 세대가 아니라지만, 50세를 바로 앞에 두고 힘차게 살아가는 필자도 이제 할미꽃과 벗하기를 꺼려야 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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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nf 2010-04-16 22:33:01
장우벽과 일지홍이 뉜가 알 수가 엄써 ㅠㅠ

할미 2010-04-16 13:48:38
할미꽃과 벗하기에는 좀 이르겟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