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의 주식이면서 구황식량이었던 감자
화전민의 주식이면서 구황식량이었던 감자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3.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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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82]
▲ 감자. [송홍선]

에스파냐인(스페인사람)이 멕시코를 정복한 1521년 이후 남미에서 유럽으로 전래한 감자. 처음에는 악마 등이나 먹는 음식으로 혹평을 당했던 감자. 유럽인들은 당시에 감자를 남미의 가난하고 미개한 원주민들이 먹는 것으로 여겼다.

감자는 땅속의 울퉁불퉁한 모습과 작은 점이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천연두를 연상시켰고, 사마귀 자국처럼 보여 싫어하였다. 또한 독성이 있고, 흙이 잔뜩 묻어 불결해 보이는 감자를 만지기만 해도 병을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감자가 나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소문이 영국에서 시작하여 유럽 전체로 퍼지기도 하였다. 때문에 유럽 전체의 감자 전파는 매우 느렸다.

감자가 동양에 전해진 시기는 16세기 말이다. 1598년 네덜란드 배가 일본 나가사키에 상륙하였을 때에 전해졌다. 중국에는 18세기, 한반도에는 19세기 초에 들어왔다. 감자가 한반도에 들어온 경로는 북방설과 남방설이 있다.

실학자 이규경은 ‘우주연문장전산고’에서 1824년과 1825년 사이에 관북에서 처음 들어왔다고 하였다. 관상쟁이 명천부(明川府) 김씨가 경사(京師)에 가서 가져왔거나 청나라 심마니가 우리의 국경을 몰래 침범하여 심어 먹던 것이 밭에 남아 있다가 전파된 것이라고 하였다.

김창한이 쓴 ‘원저보(圓藷譜)’에서는 북방으로부터 감자가 들어온 지 7~8년이 되는 1832년 영국의 상선이 전북 해안에서 1개월간 머물고 있을 때 배에 타고 있던 선교사가 씨감자를 나누어주고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였다.

한반도의 감자 보급을 위하여 노력한 사람으로는 무산의 수령인 이형재가 있다. 그는 감자가 좋은 식량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구해 전파시키고자 하였으나 백성들이 씨감자를 내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감자를 재배하면 이익이 많이 남으므로 관청에 씨감자를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많은 소금을 내놓고 감자를 구해 전파시켰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유럽과 달리 감자가 쉽게 전파되어 뿌리내렸다. 탐관오리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은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었는데, 그곳의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것이 감자이었다. 쌀 수탈이 극심했던 일제강점기에도 감자는 관헌이 눈독 들이지 않는 농민의 주식이었다.

▲ 감자. [송홍선]

옛날의 야생 감자는 맛이 써서 그대로 먹지 못하여 쓴맛을 제거해야 하였다. 원주민의 인디언들은 안데스의 자연을 잘 이용하여 쓴맛을 제거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감자의 수확이 끝날 시기는 우기가 끝나고 건기에 접어든다. 수확직후의 덩이줄기를 야외에 방치하면 밤에 얼고 낮에 녹는다. 이와 같은 동결과 해빙이 1주일 정도 반복되면 덩이줄기는 연하게 수축하나 수분이 아직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몇 번인가 반복하면 수분이 빠져 나오게 되며 그와 동시에 쓴 물도 제거된다.
그것은 또다시 야외에 방치하면 덩이줄기는 맛도 수분도 없는 코르크처럼 말라 딱딱하게 된다. 남미의 인디언들은 이렇게 건조시킨 덩이줄기를 추뇨(chuno)라 하였고, 건조시키지 않은 덩이줄기를 파파(papa)라고 불렀다. 독을 제거하는 이 독특한 방법은 안데스 원주민의 자연에 대한 승리를 표상한다.

한반도에서 감자 소재의 소설 ‘감자’가 있다. 소설의 감자는 채취시기로 보아 고구마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감자는 1925년 ‘조선문단’ 1월호에 발표된 김동인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가난뱅이의 복녀가 감자를 훔치다가 들켜 감자주인인 중국의 왕서방과 공공연한 매음이 이뤄지는 것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환경적 요인이 인간내면의 도덕적 본질을 타락시켜 간다는 자연주의적 색채가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감자는 역사적으로 늘 지배층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고급요리의 재료가 아니라 빈자(貧者)의 구황식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밀, 쌀, 옥수수 등과 함께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은 주요 작물로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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