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잔칫날’ 서울에 올라온 충무김밥
‘전두환 잔칫날’ 서울에 올라온 충무김밥
  • 황교익 / 맛칼럼니스트
  • 승인 2010.04.16 12:29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교익의 ‘서울음식 먹어본 지 30년’ 2]

1981년 서울의 봄은 올해 봄처럼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청춘의 봄바람은 아니었다. 

그해 나는 대학에는 들어갔으나 공부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누구든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작살이 날 수 있다는 공포가 만연하였다. 옥상에서 몸을 밧줄로 묶고 ‘삐라’ 몇 장 뿌리고는 죽도록 맞아 끌려가는 선배들을 말없이 보았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전두환은 정말 무서웠다.  

공포에 찌든 국민들을 위무하기 위해 전두환이 봄바람을 일으켰다. ‘국풍 81’이란 행사였다.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다. 그 전해 5월 27일 광주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전두환의 자축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 시민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잔치가 벌어졌으니 놀아야 했다. 

▲ 통영의 명물에서 서울음식으로 자리잡은 충무김밥. ⓒ황교익

‘국풍 81’, 향토음식이 서울로 진출하는 계기로

나도 그때 여의도 광장에 있었다. 흙바닥의 그 허허벌판에 봄바람이 심하게 일었었다. 뿌연 먼지 속에 사람들은 꾸역꾸역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놀았다. 그 행사장의 음식 중에 향토음식이 여럿 있었다. 지방에서는 유명하지만 서울에는 아직 없는 음식들이었다. 음식문화와 관련한 여러 자료를 보면, ‘국풍 81’을 향토음식이 서울로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행사로 평가하고 있다. 전두환이 전국의 음식을 모아 제대로 자축연을 벌인 것이다. ‘국풍 81’의 향토음식 중에 내게는 깊은 추억이 있는 음식이 있었다. 충무김밥이다. 

내 고향은 마산이다. 나는 틈만 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거제도를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 새벽에 마산항에서 배를 타면 거제도의 여러 포구 마을을 구비구비 돌아 점심 때쯤 통영에 이르고, 이 배는 다시 여수나 마산, 부산으로 가게 된다. 배 위에서 보는 다도해 풍경은, 그때의 여린 감수성 탓이었는지, 눈물겨운 아름다움으로 각인되어 있다.  

여객선은 통영항에서 5분 가량 정박하게 되는데 계속해서 여행을 하는 사람은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한다. 이때 ‘김밥 할머니’들이 배에 오른다. 뚱뚱한 몸매에 커다란 고무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배 위로 잽싸게 뛰어올라 장사를 한다. 배 하나에 서넛의 김밥 할머니들이 올랐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신문지나 비료포대 찢은 종이 위에 밥만 만 김밥과 무김치, 꼴뚜기홍합꼬치를 차려주었다. 친구들과 여객선 위에서 먹던 그 충무김밥의 맛을 어디에 비길 것인가.

‘국풍 81’ 현장에서 나는 충무김밥을 먹지 못하였다. 그런 음식이 올라왔는지도 몰랐었다. 오뎅 몇 조각 먹었던 것이 다였다. 이후 신문에서 충무김밥이 ‘국풍 81’ 행사장에 나온 음식 중 가장 인기를 끌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명동에 충무김밥집이 생겼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충무김밥 앞에 명사가 하나 더 붙었다. 명동충무김밥. 서울의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 서울 명동에 위치한 '충무김밥'. ⓒ황교익
나는 한때 명동에 나가면 명동충무김밥을 먹었다. 그 충무김밥이 맛있어서 먹었던 것은 아니었다.(딱딱한 밥에 뻣뻣한 김, 달디단 오징어무침은 정말 맛이 없다.) 충무김밥을 먹으면 고향의 바다와 친구들이 떠오르고, 그게 서울에서의 팍팍한 내 삶에 조금의 위안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명동충무김밥을 먹을 때면 친구와 바다에 대한 추억과 함께 ‘국풍 81’의 그 먼지 날리는 여의도 광장이 기억나고, 이어 전두환이의 얼굴이 떠오르고, 광주에서의 그날이 연상되고, 교내 옥상의 그 선배들이 기억나기도 하였다.

나에게 온전히 맛으로만 즐길 수 있는 충무김밥은 통영항에 가서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어찌 충무김밥뿐이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zig 2010-05-17 18:41:26
이게 어찌 전대갈에게 고맙단 글이냐.
충무 김밥보면 전대갈 생각나서 x같다는 거잖아.

다비니 2010-04-16 22:38:15
잘 노라슈

냠냠 2010-04-16 13:46:24
배고파, 먹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