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소통 없는 ‘디자인서울’ 비틀어보기
시민과 소통 없는 ‘디자인서울’ 비틀어보기
  • 이태향 객원기자
  • 승인 2010.06.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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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시기획자 3인 인터뷰

‘‘디자인 서울’이란 말이 어느 순간부터인지 익숙해졌다.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 광고판에서 눈만 돌리면 보이는 홍보 포스터는 ‘서울이 좋아요’, ‘디자인 덕분에 살맛 나요!’이다.

그런데 조금 불편하다. 그 이유가 단지 ‘Hi, Seoul. soul of Asia’하는 식의 영어 표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을 꾸미고 포장하는 것이 과연 서울시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브랜드화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디자인서울’인가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작년 가을 어느날 문득 서울시에서 하는 홍보물이 ‘도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서울시의 정책에 대해 처음엔 긍정적으로 보았는데, 점차 디자인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전시를 기획한 프로젝트팀 AMP의 최정은 씨(27세)는 서울시의 ‘디자인서울’에 대해 이렇게 운을 떼면서 자신들이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 ‘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시기획자들(사진 왼쪽부터 박상권, 최정은, 서은선 씨). ⓒ이태향

전시는 지난 6월 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다. 전시 기획자 프로젝트팀 AMP(Art.Minority.Play.)는 문화예술기획자인 젊은 활동가들의 모임이다. 최정은, 박상권, 서은선, 세 명의 기획자가 구상한 디자인서울 비틀어보기에 관한 기획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독립큐레이터 및 예술기획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시공모 지원사업에 팀으로는 유일하게 당선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 제목에서 ‘금메달’의 의미는, 서울시민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를 의미하며, 디자인서울에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메시지라고 공동기획자들은 설명한다.

“디자인서울 거리 조성을 위해 실제 그 거리에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오던 노점상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았고요. 여기저기 공사판이 벌어지면서 시민들의 공간이 위축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새로 단장한 구둣방에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신고할 재산 상한선을 넘으면 안 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혼한 경우를 보았는데, 과연 거리디자인을 깨끗하게 하면 서울사람들의 생활이 좋아지는 건지 의문이 들더라구요.”

공동기획자 중 한 사람인 서은선 씨(26세)의 말이다.

디자인서울의 사회적 맥락은?

“그래서 이런 관심들을 모아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전시를 통해 디자인을 디자인 자체로만 보는 것을 넘어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각자 개인적으로만 느꼈던 답답함을 해소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최정은 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번 전시가 서울시의 정책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단지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의식이 생기게 하는 담론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충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시포스터.
이번 전시는 전시장인 인사미술공간 1층과 2층, 지하 1층을 활용해 관람객이 스스로 자율적인 생산과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그룹 중 하나인 ‘미디어버스’는 출판을 매개로 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리서치 그룹이다. 그들은 1988년의 서울올림픽과 현재 ‘서울디자인올림픽’의 작동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신문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또 하나의 작가그룹 FF group은 디자인, 경영학, 컴퓨터공학, 심리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디자인으로부터 형성되는 문화적인 양상들을 읽어내고 그것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려고 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이들은 디자인 수도서울과 관련된 캠페인을 진행했고, ‘ilikeseoul’ 캠페인이라는 행동으로 표출했다.

그리고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젊은 건축가와 미술가들이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의 젊은 건축가들과 서울을 연결하며 건축과 미술을 연결시키는 도시 미래주의 프로젝트 팀인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는 서울시의 급조된 랜드마크의 30년 후를 조명하고 있다.

다양성에 기반한 서울시정을…

이번 전시의 개막행사는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 개표결과가 방영되는 가운데 열렸다. 전시 참여자와 관람객들이 디자인서울의 행보를 주목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고 했다.

서울시장과 구청장, 시의회 의원 등을 뽑는 선거를 지켜보면서 서은선 씨는 “누가 서울시장이 되든 간에 정책을 뒤집기 위해 예산을 들일 필요가 없는 지속 가능한 정책을 애초부터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 전시가 열리는 인사미술공간 입구. ⓒ이태향

공동기획자 중 한 사람인 박상권 씨(29세)는 “디자인에 돈이 들어가는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서울을 디자인하기 위해 과도한 예산을 투입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를 화분에 옮겨 심어 볼 수 있게 하기보다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죠”라며 사실상 서울을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포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세훈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지만 선거과정을 통해 드러났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잊지 말고, 지난 4년의 시정과는 달리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의 경우 ‘런던플랜’을 기획하고 기본 계획이 나오는 데 4년이 걸렸다고 한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조된 것이 이해 당사자들과의 파트너십이었다. 시민의 의견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계획은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시장이 바뀌더라도 정책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시는 디자인서울을 기획하면서 “디자인의 궁극적인 가치는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소통하여 막힘없이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은 사회평등과 인간가치의 실현을 추구하고자 하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민의 참여가 없는 정책은 겉보기에 아무리 화려한 포장을 하더라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시민과 함께 소통하는 사회적 솔루션으로서의 디자인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 지금이 늦은 때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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