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 없는 사랑의 슬픈 이야기 ‘수선화’
반응 없는 사랑의 슬픈 이야기 ‘수선화’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3.14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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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83]
▲ 수선화. [송홍선]

수선화의 꽃망울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물론 제주도에서는 새해 시작과 함께 피기 시작했지만 서울 중심의 중부권은 지금 꽃망울을 터뜨리려 하고 있다. 중부권에서 심어 기르는 품종은 꽃이 크고 노란빛인 것이 대부분이다.

매년 꽃이 핀 수선화를 바라볼 때면 나르시스(Narcissus, Narcisse)의 단어가 떠오른다. 나르시스는 식물분류학적으로 수선화속 식물을 총칭한다. 문학적으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의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정신분석적으로는 반응이 없는 사랑이다. 자기도취형의 사랑이다.

또한 나르시스는 나르시스트(Narcissist)와 나르시시즘(Narcissism) 등의 용어를 탄생시켰다. 나르시스트는 자기애착의 사람이거나 잘난 체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나르시시즘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성적 발달초기의 한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기 자신에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일종의 자기색정(自己色情)을 뜻한다.

신화 속 나르키소스(Narkissos, 나르시스)의 사랑 이야기는 여러 형태로 전한다. 이 이야기는 결국 수선화 식물의 탄생화 유래담을 일컫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는 아름다운 소년의 목동이었다. 그는 매일 양떼를 몰고 다니는 것이 일과였다.

나르키소스는 양떼와 같이 샘물로 갔고, 거기서 종종 여러 님프를 만났다. 그때 그는 여러 님프들의 애절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님프를 농락했다. 동성의 아메이니아스(Ameinias)는 사랑을 거절당하자 자살했다.

숲과 샘의 님프인 에코(Echo)도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헤라(Hera)로부터 말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아 마음을 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에코는 그로부터 무시당하자 실의에 잠겨 여위어 가다가 형체는 사라지고 메아리만 남게 됐다.

나르키소스에게 속았거나 사랑을 거절당한 어느 님프가 이 원한을 갚기로 마음먹었다. 여신 네메시스(Nemesis)가 이를 들어 주었다. 무대는 깊은 숲속의 샘물이었다.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그 샘물로 갔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물을 막 뜨려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물속에는 하얀 얼굴에 금빛 머리카락, 빛나는 두 눈을 가진 님프가 있었다.

그때 나르키소스는 “대체 누굴까, 신기하기도 하다”라고 중얼거렸다. 물속에 비친 그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인 줄을 모르고 중얼거렸던 것이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님프인 줄로만 알고, 그 그림자와 입을 맞추어 보았다. 손을 넣어 껴안아 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 수선화. [송홍선]

그럴 때마다 사라졌다가 다시 매혹하듯이 나타났다. 그런데 자신의 그림자를 좋아한 나르키소스는 그러기를 거듭하는 동안 몸이 쇠약해져서 끝내 샘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한 송이의 청초한 꽃이 피어났다. 이 꽃이 바로 나르시스(나르키소스), 곧 수선화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꽃으로 사원을 장식하고 장례용으로 썼다. 기원전 1500년 무렵의 그리스 유적에 수선화를 그린 벽화가 남아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수선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마호메트이 가르침 중에 이 꽃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두 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 조각을 수선화와 바꾸어라. 빵은 육체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한 빵이다”

영어 이름은 그리스어의 ‘마취’와 신화 나르시스에서 유래하며, 우리말로는 물에 사는 신선이라 하여 수선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수선화는 불사의 신과운명의 인간에게 빛과 고귀함을 준다’고 했으며, 영국 시인 워드워즈는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함께 춤춘다’라고 노래했다.

꽃말은 존경, 신비, 자존심, 사랑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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