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에 고개 들지 못하는 꽃, ‘시클라멘’
죄의식에 고개 들지 못하는 꽃, ‘시클라멘’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3.21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85]
▲ 시클라멘. [송홍선]

시클라멘이라는 꽃이 있다.

한반도에서는 요즘 온실에서 꽃이 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시클라멘의 잎은 둥글고 얼룩무늬가 있다. 잎뒷면은 홍자색을 띤다. 꽃은 품종에 따라 적색, 흰색, 주홍색, 연분홍색 등 다양하지만 짙은 붉은빛이 일반적이다. 꽃잎은 5장이다.

꽃은 꽃자루가 나선모양으로 굽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밑쪽을 향지지만 꽃잎은 뒤틀려 위를 향한다. 일설에 의하면 꽃이 아래를 보고 피는 이유는 땅에서 보물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란다. 시클라멘(cyclamen)은 영명인 동시에 식물 고유학명의 속명이다.

이 말은 라틴어 '빙글빙글 돌다'라는 의미에서 유래하는데, 영어의 ‘cycle’과 비슷한 뜻이다. 이는 꽃봉오리가 곧은 모양처럼 되면 그 꽃줄기가 나선모양으로 꼬여 굽고 꽃잎이 돌아가면서 붙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클라멘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나 시리아 지방이다. 16세기부터 300년 이상의 재배역사를 가지고 있는 식물이다. 독일은 1731년 원산지로부터 도입해 재배를 시작했고, 1800년대 초에 영국으로 들어가면서 알뿌리 재배법이 알려지게 됐다. 그 후 1870년 미국에서 씨뿌리기 재배법이 개발돼 품종개량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현재 시클라멘의 개량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미국과 독일이다.

시클라멘은 꽃의 빛깔이 매우 짙은 붉은빛을 띠는 것이 많은데, 이 빛깔은 사랑의 아픔이 여인 시클라멘의 심장을 찔러서 짙은 붉은빛이 됐다는 전설 등이 전한다. 안타깝고 비장하며 아련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무구한 수도녀 시클라멘이 있었다. 어느 날 수도에만 전념하던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면서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 후 그녀는 귀의하고 있던 교를 뿌리치고 사랑하는 남자와 도피했다. 그러나 깊은 사랑에 빠진 시간은 순간이었다. 얼마 후 남자는 그녀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실연을 견디다 못한 그녀는 결국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때 흘린 그녀의 피가 시클라멘으로 피어났단다.

이 꽃은 전설처럼 어딘가 자신이 없고 마치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처럼 숙이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옛날 한 여신이 가슴에 두고 사모하던 남자에게 배반당하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손발과 얼굴이 여위고 초췌해 보기가 딱하게 됐다. 그러자 그녀의 딱한 처지를 보다 못한 다른 여신들은 서러움을 잊기 위해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버리라고 권했다. 그녀는 서슴없이 옷을 벗어버렸는데, 이것이 하계로 내려와 땅에 닿자 그곳에서 꽃이 피어났다. 이 꽃이 바로 시클라멘이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꽃이 아름답지만 결혼, 창립, 축하 등 축복의 장소에 이 꽃을 장식하면 얼마 안 있어 이혼, 파탄, 이별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때문에 이 꽃은 경사스런 축복의 선물로 선호하지 않고 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는 들판 어디에나 무리로 피어 있기 때문에 성모마리아에게 많이 바쳐지고 있다.

때문인지 이 꽃은 온실에서 재배해 크리스마스 꽃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꽃잎이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는 이류로 귓병에 잘 듣는다거나 뿌리를 으깨어 상대방이 모르게 달여 먹으면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전한다.

시클라멘은 마력을 숨긴 꽃, 병을 고치는 꽃, 성모의 심장, 수녀의 꽃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시리아 등 원산지에서는 돼지들이 이 꽃을 잘 먹기 때문에 ‘돼지만두(sowbread)’라 별칭하고 있다. 꽃말은 겸손, 내성적 성격 등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