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슬픔을 간직한 봄의 꽃, 바람꽃 무리
바람과 슬픔을 간직한 봄의 꽃, 바람꽃 무리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3.3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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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88]
▲ 꿩의 바람꽃. [송홍선]

한반도에서 봄의 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식물 중의 하나가 바람꽃이다. 그런데 정작 ‘바람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한여름에 꽃이 핀다. 이상하겠지만 봄의 꽃으로 알려진 바람꽃은 여름에 피는 한 종류의 식물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식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바람꽃’ 이름이 들어가는 식물들의 총칭이다. 분류학적으로 말하면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바람꽃속(Anemone), 매화바람꽃속(Callianthemum), 나도바람꽃속(Enemion), 너도바람꽃속(Eranthis), 만주바람꽃속(Isopyrum) 식물들이다.

이런 바람꽃 종류(무리)는 대부분 봄에 꽃이 핀다. 바람꽃 무리들은 거의 흰빛으로 꽃이 피는데, 꽃봉오리는 연한 분홍색을 띠기도 한다.

▲ 변산바람꽃. [송홍선]

바람꽃 종류 중 가장 꽃이 일찍 피는 종류는 변산바람꽃이다. 변산을 비롯한 전남북 지역과 경남 일부 지역에서는 2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하고, 수도권과 서해 무인도 지역에서는 3월 초순부터 너도바람꽃과 같이 피면서 산지의 봄을 알린다. 그리고 남한에 자라는 진정한 바람꽃속(Anemone) 식물의 꽃피는 순서는 꿩의바람꽃이 가장 빠르고 다음으로 숲바람꽃, 들바람꽃,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세바람꽃이 피고 나면 마지막으로 여름에 바람꽃이 핀다.

바람꽃속 식물은 영명으로도 아네모네(Anemone)이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의 Anemos에서 유래하며 ‘바람의 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아네모네는 꽃의 여신 ‘플로라(Flora)’의 시녀였다.

그런데 플로라의 남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Zephyros)’가 아네모네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플로라는 질투에 불탄 나머지 아네모네를 먼 포모루 궁전으로 보내서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슬픔에 젖은 제피로스는 언제까지나 아네모네를 잊지 못하고 꽃이 피는 봄 늘 따뜻한 바람을 보낸단다.

또 다른 그리스 신화에서는 멧돼지에 물려 죽은 아도니스를 무척 슬퍼한 아프로디테(Aphrodite, 비너스)가 시체에 신주(神酒)를 부었더니 바람꽃의 싹이 돋아났다고 한다. 바람꽃은 이렇듯 아프로디테의 슬픈 눈물에서 탄생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나라에서 약간 변형되어 전하기도 한다. 독일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궁전에는 봄의 신 글로리스와 아네모네의 소녀가 살고 있었다. 바람의 신 제피로스는 그 궁전의 글로리스보다는 아네모네를 더 좋아하였다.

그러나 글로리스는 제피로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래서 구혼해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어느 날 글로리스는 그의 사랑이 자신보다는 아네모네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아네모네를 궁전에서 추방하고 말았다. 그 후 제피로스는 글로리스의 애원에 못 이겨 아네모네를 잊기로 하고, 아네모네를 바람꽃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바람꽃을 모아서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제단을 장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바람꽃은 죽은 자에게 바치는 화환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바람꽃 종류 중에는 붉은빛의 꽃이 피는 것도 있는데, 이런 빛깔의 꽃은 예수가 처형되던 날, 저녁에 골고다 언덕에서 자라고 있던 흰빛의 바람꽃에 예수의 피가 떨어져 빨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꽃을 신성시 하는 습성이 있다.

바람꽃은 이른 봄의 바람을 맞으며 핀다고 하여 ‘봄의 꽃’으로 부르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제피로스의 꽃’이나 ‘아프로디테(비너스)의 꽃’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바람을 표상한다. 감격의 눈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꽃말은 기대, 그대를 사랑하여, 희박해져 가는 욕망, 덧없는 사랑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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