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와 의지, 길가의 풀 ‘질경이’
끈기와 의지, 길가의 풀 ‘질경이’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6.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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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13]

공터나 길가에 흔히 자라는 풀 중에 질경이가 있다. 이 풀은 그 때문인지 예로부터 농로의 마차와 관련이 많았다. 그 예는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질경이의 한자이름은 마차가 다니는 농촌의 길가에서 잘 자란다는 뜻의 차전초(車前草)이다. 차과로초(車過路草), 차전자(車前子) 등으로 부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속칭이다. 그러니까 차전초의 차(車)는 오늘날의 트럭이나 승용차가 아니라 마차였던 것이다.

또한 우리말의 갈짱귀, 길장구 등은 길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들이다. 우리말 이름의 질경이는 잎이 질긴 데서 유래했거나 길(질)가에 많이 자라기 때문에 붙여졌다.

▲ 농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질경이. ⓒ송홍선

한자이름은 차전초(車前草)…갈짱귀란 별칭도

질경이의 어린잎은 물에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었는데, 이때 녹말과 섞어서 먹으면 안 된다는 금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즙을 내어 기름과 함께 고기에 발라 고추장에 무쳐 먹었으며, 밀가루를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천식, 위통, 축농증 등에 질경이를 달여 녹차처럼 마셨고, 말린 잎을 달인 물은 소화불량, 설사에 이용했다. 그리고 생잎은 고름을 잘 빨아내는 것으로 믿어 약한 불에 태운 후 종기에 발랐다. 한방에서는 이뇨, 진해, 해열 등에 다른 약재와 함께 처방하여 썼다.

▲ 질경이 어린잎은 물에 데쳐 나물로도 식용. ⓒ송홍선
약효를 주 내용으로 하는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도 있다. 옛날 어느 고을에 훌륭한 한의사가 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의사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웃 마을로 지나갔다는 소문만 퍼졌다. 이웃 마을에서도 소문은 이웃 고을의 것과 똑같았다.

소문은 또 다른 소문으로 이어졌다. 그 한의사의 수레가 지나간 자리에는 이상한 풀이 돋아났다는 것 등이다. 또한 그 풀만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소문이 자자하자, 동네사람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길가의 풀을 따서 달여 먹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앓던 병이 나았는데, 이 풀이 바로 질경이였단다.

중국 사람들은 이 풀을 먹으면 몸이 강해지고 노쇠를 방지하는 것으로 알았다. 영국 사람들은 이 잎을 소금에 절여 부드럽게 한 후 발에 붙이거나 양말에 넣어두면 장기간 여행에서 피로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상처나 열에 효과가 있는 약초로 중요시했다. 질경이는 그밖에도 주술로서 사랑을 점치는 데 쓰이고, 꽃 이삭을 두드려 떨어뜨리는 놀이에 이용했다.

생잎은 고약처럼 종기 치료에 효과

질경이는 마차 바퀴에 치일뿐만 아니라 사람이 마구 짓밟고 지나다니는 길가에 흔히 자라는 강인한 풀이다. 일본의 어느 학자는 ‘칭기즈 칸’(Chingiz Khan)의 옛 성터에서 질경이의 대군락을 발견하자, “질경이의 뿌리가 이 산과 저 들판으로 종족을 퍼뜨리고 있다. 이곳에 영웅들이 살아남은 것은 질경이와 같은 기백과 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질경이는 끈기와 의지를 상징한다. 영국에서는 그리스도의 발자취,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백인의 발자취에서 생긴 풀로 여긴단다.

아무튼 마차가 자동차로 바뀐 곳은 다름 아닌 우리의 농촌이다. 최근 들어 농촌에서도 마이카 시대가 성큼 상륙했다. 그 때문에 소나 말을 몰고 가던 농로가 넓은 아스팔트길로 변했다. 이로 인해 파생된 결과도 나타났다. 농로에서 흔하게 자라던 노방식물(路傍植物)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질경이가 좋은 예이다. 필자는 간혹 마차를 이끌고 질경이를 밟으며 거닐던 농로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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