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월드컵, 멀어지는 서울광장
다가오는 월드컵, 멀어지는 서울광장
  • 고동우 기자
  • 승인 2010.04.20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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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광장 사용 ‘자의적 규정’ 논란 … 주민발의 조례 개정은 요원
오는 6월은 서울광장에 여러모로 의미있는 달이 될 것 같다.

6월 12일, 한국과 그리스 전을 시작으로 막이 오르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은 또 다시 수십·수백만의 ‘붉은악마’를 광장으로 불러 모으게 될 것이다.

6월 23일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예선 마지막 경기가 펼쳐질 즈음엔, 많은 사람이 주목하진 않겠지만 바로 옆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제7대 의회 마지막 정례회가 열리게 된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때 서울광장의 사용을 현행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10만 주민발의 조례 개정안’이 통과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을 반대하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절대 다수인 의회 구조상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 2006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로 가득찬 서울광장.

월드컵 응원전과 주민발의 조례 개정안

언뜻 보면 전혀 별개의 사안 같다. 하지만 월드컵 응원전과 조례 개정은 서울광장 사용과 관련한 서울시의 자의적 판단이 논란이 돼 시민사회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하나의 이슈나 마찬가지다.

문화연대는 지난 5일 서울시가 “월드컵 기간 동안 서울광장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축제 공간으로 개방한다”고 밝힌 데 대해 “언제부터 월드컵 응원이 서울시의 ‘허가’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는가. 시는 자발적 참여를 빙자해 기업의 응원전 개입에 정당성까지 부여해주고 있다”는 비판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시는 기업이나 단체의 참여는 적극 보장하되, 이들의 로고나 브랜드 노출은 금지시켜 부작용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화연대 측은 과거 사례 등을 근거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문화연대 최지현 문화정책센터 팀장은 “로고 노출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며, “지난 2006년 월드컵 때를 보면 안다. 당시 광장 사용권을 따낸 기업 측은 직원들을 동원해 시민을 통제하는가 하면, 연예인을 등장시키거나 노출이 심한 여성을 앞자리에 배치하기도 했다. 이번엔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하게 될 것이므로 더 전면적으로 이러한 ‘마케팅’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남아공 월드컵에 임하는 주요 기업들의 전략은 이른바 ‘엠부시(ambush)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굳이 로고 노출을 하지 않더라도 광고 문구 등을 통해 특정 스포츠 이벤트와 관련이 있는 업체라는 인식을 줘 이익을 취하는 기법이다. 그래서 ‘매복 마케팅’이라고도 부르며 이미 여러 기업이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SK텔레콤이 월드컵 응원 관련 광고를 내보내거나 한 패션업체가 ‘all the reds’란 슬로건이 찍힌 티셔츠를 대량 판매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붉은악마’ 측도 이러한 움직임에 불쾌감을 표현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엠부시 마케팅으로 많은 슬로건이 생겨나면서 붉은악마가 여러 슬로건을 만들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붉은악마와 뜻이 같은 기업이 있다면 언제나 환영이지만 그들의 열정이 영원하지 않고, 월드컵 특수만을 노린다면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적인 응원도  허가 받아라?

더욱 근본적인 쟁점은 바로 현행 ‘허가제’ 문제이다. 서울시 측은 서울광장 사용과 관련해 월드컵 응원전뿐만 아니라 모든 집회·행사에 ‘허가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는 특정단체나 사람의 ‘독점적 이용’을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정순구 행정국장은 “서울광장은 행정재산이다. 이 행정재산은 법에 의해 전체 또는 일부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경우 반드시 허가를 받게 되어 있다. 일상적인 이용은 허가가 필요하지 않지만 일정시간 이상, 일정지역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때는 다르다. 신고제를 하게 되면 상황에 따라 독점적으로 이용되면서 일반 시민의 자유로운 이용이 오히려 제한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민단체 쪽도 독점 우려에 대해선 공감하는 편이다. 문제는 서울시의 ‘기준’이다. 조례 개정 운동을 주도하는 참여연대의 김민영 사무처장은 “서울시가 규정을 핑계로 여가 선용을 위한 문화행사 이외에는 사용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문화행사도 그 주최자를 자의적 기준에 따라 선별해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는 사용을 불허한다. 시가 서울광장의 관리 주체가 아니라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최근에도 지난 10일 오후 열릴 예정이었던 독도사랑시민모임·시민정치연합 주최 ‘독도야 사랑해’ 행사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바 있다. 서울시 측은 “애초 허가 내용과 달리 정치적 목적의 행사로 판단돼 불허했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 측은 “광장 사용이 마땅한 기준도 없이 매우 자의적이고 정치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자인한 셈”이라고 꼬집는다.

월드컵 응원전과 관련한 ‘허가’ 사항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연대 최지현 팀장은 “현실적으로 대규모 응원전을 조직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과 재원은 거대 자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며, “이렇게 대기업들의 참여를 허용해 상업화는 방치하면서, 비판적인 단체의 집회는 막는 게 현재의 서울광장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서울광장에선 시민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응원 문화도,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도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인 셈이다.

일단 서울시 측은 “월드컵 응원전이 기업 주도가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시민을 위한 행사가 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만일 시민단체들의 우려대로 과도한 통제나 기업의 개입이 명백할 땐 2006년 붉은악마가 다른 곳에서 응원전을 펼쳤던 것처럼 시민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시에 서울광장 사용과 관련한 조례 개정 요구는 이제 10만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주민 발의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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