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진상품이면서 유혹의 과일인 ‘귤’
궁중 진상품이면서 유혹의 과일인 ‘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4.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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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94]
▲ 귤. [송홍선]

오늘날의 귤 종류는 많기도 하거니와 흔한 편이다. 그렇지만 예전의 귤 종류는 한반도 내륙의 본토에서 매우 귀하여 한양의 궁중에서나 먹을 수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의 제주목을 보면, 감(柑)은 황감(黃柑), 유감(遊柑) 등이 있고, 귤(橘)은 금귤(金橘), 산귤(山橘), 동정귤(洞庭橘), 왜귤(倭橘), 청귤(靑橘) 등이 있다고 하였다. 제주도는 온주밀감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여러 종류의 귤나무가 재배되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귤 종류를 공물로 바쳤다. 이 전통은 고려를 거쳐 조선에까지 이어졌다. 귤은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재배되지 않는 진품이어서 귤이 한양에 도착하면 큰 경사가 벌어졌다.

일설에는 제주도(또는 제주목사)에서 귤이 진상되면 서울 종묘에서 제사를 지낸 다음 각 전각과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귤이 대궐에 들어온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성균관과 서울의 동서남중 4개 학교의 유생들에게 감제 또는 황감제(黃柑製)라 부르는 특별과거를 보도록 하고 귤을 나누어주었다. 이 특별과거에 합격한 자는 보통과거의 합격자와 같은 자격을 주었단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는 ‘감귤봉진도’와‘귤림풍락도’가 실려 있다. 감귤봉진도는 망경루 앞뜰에서 귤을 수납하는 장면이고, 귤림풍락도는 녹의홍상을 입은 여인들이 거문고를 타거나 풍악을 울리는 장면의 그림이다. 생각건대 이 그림은 예로부터 제주의 귤이 진상품이거나 유혹의 과일로 유명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일까?

제주시 관덕정의 대들보에는 가마를 타고 가는 두보가 미녀들로부터 귤 세례를 받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에는 ‘취과양주귤만차(醉過楊州橘滿車)’라는 제목이 붙어있으나 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즉 이 그림은 술에 취한 두보가 교자(轎子)를 타고 가는 도중에 유녀(遊女)들이 와르르 몰려와 나무에 달린 귤을 마구 따서 문지른 다음 두보의 가마 속으로 던지는 내용의 그림이다.

그리고 귤은 ‘과원’이라는 시에 ‘대나무 빽빽하게 짧은 담장 지키고/ 귤숲은 무수하게 줄지어 안겨 있네/ 진진한 푸른 잎은 봄비에 젖었다가/ 금빛으로 둥근 열매 하룻밤 서리맞네/ 병객과 노인들 갈증을 멈춰주려/ 미인들 고운손길 딸 적에 향기나네/ 경포중리가 바다에 둥둥 떠서/ 시월이면 하여마다 사방으로 진상하네’라고 하여 진상품의 하나로 나온다.

이렇듯 제주도의 귤은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구할 때 유혹하는 것으로 알려졌거나 조정에 진상하는 귀한 과일로 유명하였다. 조선 후기 시인인 오장헌의 ‘가가귤유(家家橘釉)’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관각에 가까운 귤밭에서/ 술취한 두보의 수레를 이끌었고/ 육반의 효성도 감동시켰다/ 크고 작은 알알들/ 세 고을 집집마다 헤아릴 수 없네/ 유독 이 섬에서만 번식함으로/ 으뜸가는 진상품이 되었네’

이쯤해서 보면 제주도의 귤이 진상품보다 유혹의 과일인 것에 이상하게도 주목된다. 유녀들이 두보의 교자에 귤을 던진 것은 분명 유혹의 뜻이 있는데, 말하자면 관심과 사랑의 신청이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옛날에는 매실(매화)의 열매나 모과 열매 등도 여자가 남자를 유혹할 때 던지는 과일이었지만 지금은 매실, 모과 등으로 유혹하는 사례를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귤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 온주밀감. [송홍선]

20여 년 전의 1990년대 초에 서울 압구정동의 로데오 거리에서 오렌지족들이 귤차(오렌지차)를 대접하고 사랑을 신청하는 일은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온주밀감의 꽃말은 친애, 깨끗한 사랑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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