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퇴치 복사나무, “복숭아는 젯상에도 안 올려”
귀신 퇴치 복사나무, “복숭아는 젯상에도 안 올려”
  • 송홍선 /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4.2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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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4]

복숭아나무는 복사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한자로는 도화(桃花) 등으로 쓴다. 복숭아는 그 나무의 열매이고, 복사꽃은 그 나무의 꽃이다. 심심풀이의 식물명 나열처럼 보이지만 알아둘 만한 상식이다.

복사꽃 만발한 무릉도원

▲ 강렬한 붉은 빛깔의 복사꽃. ⓒ 송홍선

복사꽃은 빛깔이 매우 짙다. 붉은빛의 꽃빛깔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과 대비된 탓인지 매우 강렬하다. 그래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복사꽃이 필 때면 으레 전설상의 이상향(理想鄕)이 생각난다. 속세와 떨어진 선경(仙境)의 사회이다. 복사꽃이 만발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그 마을이다. 그곳은 전란을 피해 몇 백 년을 숨어사는 사람들의 고향이다. 조정의 간섭을 받지 않았음은 물론 세금도 없는 곳이다. 별천지다.

복사꽃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릉도원의 이상향만이 아니다. 귀신나무라고 별칭해도 좋을 만큼 전하는 신령스런 이야기가 쉽게 떠오른다. 복사나무는 민간신앙에서 축귀(逐鬼)의 효능을 지닌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잡귀를 쫓을 때에 복사나무의 가지가 사용된다. 그 열매의 복숭아도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복사나무는 꽃도 예쁘고 열매도 맛이 좋지만 신비한 탓에 집안에 심지 않는다. 요사스러운 기운을 쫓아내고 잡다한 귀신을 몰아내는 힘이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또한 복숭아 열매를 제사에 쓰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잡귀와 함께 제사상의 조상신마저 쫓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궁중에서 악귀 퇴치의 방법으로 행한 구나희(驅儺戱)의 연극 기록이 있다. 이것은 동쪽으로 뻗은 복사나무의 가지로 비를 만들어 귀신을 때리고 쫓아내는 행사이다. 민간에서도 복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 잡귀를 축출하고 신년을 맞는 풍습이 있다. 복사나무가 민간요법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정신병 환자에게 맹인이나 무녀가 굿을 하면서 그 가지로 환자를 때려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치렀다.

▲ 옛부터 복사나무는 귀신을 쫓아내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 송홍선

신라의 건국신화에도 복숭아가 등장한다. 선도산(仙桃山)에 사는 지선(地仙)의 사소(娑蘇)는 중국 제실(帝室)의 딸이었다.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海東)에 와서 오랫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니, 그녀의 부친이 솔개에 부쳐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 솔개의 인도로 선도산에 웅거하게 됐다. 사소는 처음 진한(辰韓)에 왔을 때에 동국(東國)의 첫 임금이 된 혁거세 성인을 낳았다. 또한 가락국기에서 허황옥(許黃玉)은 천체가 계시한 부친의 꿈 이야기를 듣고 김수로왕을 만나기 위하여 하늘에 가서 복숭아를 얻었단다.

복숭아는 신성한 과일

복사나무 관련 풍습으로는 이 나무로 도장을 만들어 호부(護符)로 지니는 것이 있다. 천도 모양의 연적과 장식, 궁중의 천도 그림 병풍, 천도 무늬의 금박 등은 모두 장수의 상징이나 호부 또는 부적의 목적을 지닌 것이다. 복숭아 열매는 무화(巫畵)나 제당(祭堂)의 당화(堂畵)에도 나타나는데, 시녀가 복숭아를 따거나 쟁반에 담아 신에게 바치는 장면이 많다. 즉 복숭아가 천상의 신이나 신선들이 먹는 신성한 과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예로부터 복숭아나 그 꽃은 아름다운 여인에 비유되어 그 과일을 먹으면 얼굴이 예뻐진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화녀(桃花女)는 자용염미(姿容艶美)하여 신라 진지왕이 반할 정도였다. 복숭아는 그 형태가 여근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복숭앗빛은 그 꽃빛깔을 나타내지만 이보다는 남녀 사이의 색정적인 성행위를 의미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 근래의 유행어인 핑크빛이라는 말도 남녀 간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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