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전설의 족두리모양 꽃, 족도리풀
슬픈 전설의 족두리모양 꽃, 족도리풀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4.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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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96]

▲ 족도리풀. [송홍선]

족두리(簇頭里)는 옛날 여자가 의식 때에 예복을 갖추어 쓰던 관의 일종이다. 아래는 둥글고 위는 분명하지 않게 여섯 모가 졌으며 검은 비단으로 만들었다.

위쪽보다 아래쪽이 좁으며 속에는 솜이 들어 있고 그 가운데를 비게 하여 머리 위에 올려놓도록 되어 있다. 족두리는 장식이 없는 민족두리와 족두리 위에 옥판을 받치고 산호주(珊瑚珠), 밀화주(蜜花珠), 진주 등을 꿰어 만든 주민족두리가 있다.

또한 솜족두리라 하여 어여머리를 꾸밀 때 쓰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어염족두리라고도 했다. 이밖에도 상제가 쓰는 흰빛의 족두리가 있는데 이는 장식을 하지 않고 납작한 모가 난 모자와 같은 모양이다.

이렇듯 족두리를 설명한 이유는 우리 식물의 이름 중에도 족도리풀(족두리풀), 민족도리풀(민족두리풀) 등이 있기 때문이다. 족도리풀은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줄기는 마디가 많으며 매운 맛이 있다. 잎은 원줄기 끝에서 2개가 마주나며 염통꼴이다. 잎자루는 길며 자줏빛을 띤다. 꽃은 잎이 나오는 4월에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그 끝에 달리며 자흑색이고 족두리모양이다.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이 식물의 꽃은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꽃을 자신의 줄기 사이에 놓고 손바닥 크기의 잎으로 가려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약한 냄새를 내기도 한다. 이 잎을 좋아하는 곤충도 있다. 애호랑나비는 대체로 족도리풀의 잎에 알을 낳는다. 그리고 알에서 깬 애벌레는 이 잎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족도리풀과 관련한 전설도 있다. 경기도 포천 지방에서 전하는 낭자 이야기이다. 꽃과 같이 예쁘고 깜찍스러운 낭자가 어느덧 자라나 혼인할 나이가 됐다. 어느 날 키가 크고 힘이 아주 센 장수가 나타나 궁중에서 궁녀를 뽑는다며 홀어머니를 남기고 낭자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궁녀로 뽑혀간 낭자는 얼마 후 다시 중국으로 뽑혀 가는 신세가 됐다. 예쁜 얼굴을 가진 것이 운명을 나쁘게 했던 것이다.

그 후 낭자는 머나먼 나라에서 들판에 굴러다니는 꽃잎 같은 신세가 됐다. 세월은 흘러 낭자도 할머니가 되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죽었다. 낭자의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맞았다. 낭자의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혼자 집을 지키면서 딸이 잘 되기만을 기도하였던 어머니는 딸을 먼저 잃은 슬픔 때문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어느 날 낭자의 어머니도 슬픈 죽음의 날을 맞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낭자의 집 뒷동산에는 이상한 꽃들이 피었다. 다른 꽃과는 달리 잎과 꽃이 함께 땅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었다. 마치 시집갈 때에 머리에 쓰는 족두리 같은 모습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이 소문은 온 고을에 순식간에 퍼졌고, 그래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 족도리풀-꽃. [송홍선]

어떤 사람들은 이 꽃을 낭자의 한이 맺힌 꽃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낭자 어머니의 한이 맺힌 꽃이라고 했다. 이 꽃은 많은 사람들이 시집도 가지 못하고 타국 땅에까지 팔려간 한 맺힌 슬픔의 낭자가 족도리풀로 환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족도리풀의 약성은 따뜻하고 맛이 몹시 쓰고 매우며 독이 있다. 그늘에 말린 뿌리를 두풍(頭風), 발한, 거담, 후비(喉痺), 두통, 풍습비통 그리고 기관지확장증의 진해제로 쓰고, 구내염의 약효를 가지고 있다. 박하 사탕의 맛을 내는 원료로 쓰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뿌리, 꽃 등을 약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한자로 세신(細辛)이라고 하는 데서 매운맛, 족도리풀이라는 이름에서는 족두리를 표상한다. 낭자 전설에서는 기다림, 슬픔, 이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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