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사랑앓이와 열매의 교훈적 속담, 배나무
꽃의 사랑앓이와 열매의 교훈적 속담, 배나무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5.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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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97]

▲ 배나무 꽃. [송홍선]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울며 잡고 이별한 임/추풍낙엽에/저도 나를 생각하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오락가락 하노매’

이 시조는 1573년 부안읍에서 태어나 기생의 몸으로 가슴에 맺히는 원한을 시로 달래고 거문고로 되새겨 가다가 38세에 서럽게 죽은 매창(계생)이 읊은 것이다.

매창은 이 시조에서 나타났듯이 비처럼 흩뿌리는 배나무 꽃잎을 보며 이별이 서러워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또한 매창은 떠나간 유희경을 손꼽아 기다리다 새벽에 일어나 이런 시를 짓기도 했다.

‘배꽃 피는 뒷동산에 두견이 울고/ 뜰에는 달빛 넘쳐 서러운 심사/ 꿈이나마 꾸자건만 잠도 안와서/ 창가에 기대앉아 닭소리만 들으오’

이렇듯 달빛 어린 배나무 꽃은 사랑앓이를 더욱 깊게 했는데, 배나무 꽃을 내세워 임을 그리워함은 비단 매창 뿐이 아니었다. 조선 선조 때 예조정랑을 지내다가 당파 싸움을 개탄하고 명산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마친 임제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시냇가 열다섯 살 아가씨/ 수줍어 말없이 임을 보내고/ 돌아와 문을 꼭 잠그고/ 달빛 어린 배꽃보며 눈물 흘린다’

여기에 나타난 배나무 꽃은 봄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오는 날에 피어나고 향기와 달빛이 그려져 있다. 또한 배꽃은 어여쁜 소녀 같고, 춘색의 기다림을 자아내게 하는 봄의 요정과도 같다. 그리고 배꽃을 보면 사랑앓이를 지울 수 없다.

당나라 시인 가지는 ‘춘수’라는 시에서 ‘풀빛은 청청하고 버들빛은 누르러/ 복사꽃 만발하고 배꽃도 향기롭다/ 수심만은 봄바람도 보내지 못하여/ 시름은 외곬으로 깊어만 가는고야’라고 읊어 향기로운 배나무 꽃과 함께 수심과 시름을 나타냈다.

그리고 김삿갓은 나그네의 시름을 봄에 잠시 피었다가 지는 배꽃에 비유하였는데, 그는 ‘나그네의 시름이 쓸쓸하여 꿈자리가 사나운데/ 서리 찬 달빛조차 내 옆을 비쳐주네/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이나/ 복사꽃과 배꽃은 잠시 피었다 진다’라고 썼다.

이렇게 볼 때에 옛 시조에 나타난 배나무 꽃은 슬픔과 시름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나무 꽃은 언제나 깨끗하고 청초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이 있다.

▲ 배나무-열매. [송홍선]

한편 배나무 열매는 식용과 약용 등 이용이 많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가래, 침 등에 약재로 쓰고 있고, 김치를 담그거나 냉면 요리 등에 넣고 있다. 또한 쇠고기를 먹고 배나무 열매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는 것으로 믿었다.

전하는 이야기를 보면 독일의 운스텔베르크에 있는 배나무는 나라의 변고가 있기 전에 시들고, 새 나라가 출현하려면 생기를 되찾기 때문에 신성시됐다. 중국 당나라 현종은 배나무 밭에서 제자 300명을 가르칠 때에 그 제자들을 배밭제자라고 불렀다.

옛 사람들은 배나무 열매와 관련한 교훈적인 속담을 만들어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오비이락, 烏飛梨落)’는 우연히 동시에 생긴 일이라도 남에게 혐의를 받기 쉬우니 매사에 신중을 기하고 조심하라는 비유의 교훈을 담고 있다.
 
‘다문 입에 배 안 떨어진다’는 속담은 무슨 일이건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 ‘썩은 배는 딸 준다’, ‘떫은 배도 씹어 볼 만하다’는 속담도 있다. ‘배 먹고 이 닦기’라는 속담은 한 가지 일에 두 가지 이로움이 생기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눈부시도록 희고 아름다운 배나무 꽃은 맑음, 깨끗함, 순결함을 상징한다. 꽃말은 위로, 온화한 애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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