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 일상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비밀은…
‘정보통’ 일상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비밀은…
  • 이태향 객원기자
  • 승인 2010.06.21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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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족만화 <비빔툰> 작가 홍승우 화백
▲ 홍승우 화백.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홍승우(43) 화백을 만났다.

13년째 한겨레신문에 가족만화 <비빔툰>을 연재하고 있는 그는, <비빔툰>의 캐릭터 정보통 씨처럼 따뜻하고 편안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아주 작은 감정들이 비빔밥 비벼지듯 서로 모여 만들어진다는 의미의 ‘비빔’과 만화를 뜻하는 ‘툰’(toon)을 조합한 <비빔툰>에는 제목에서 보이는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가 유머와 따뜻한 시선으로 버무려져 있다.

<비빔툰> 때문에 한겨레신문을 구독한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비빔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은 특별하다.

“7년 전쯤에 몇 달 동안 휴가를 받고 <비빔툰>을 쉰 적이 있었어요. 매일 연재를 하는 데 따른 압박감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그때 격려해주는 독자들의 편지를 읽고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함께 호흡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게 큰 힘이 되었지요. 지금은 일 주일에 한 번씩 그리고 있습니다. 천천히 조깅하듯이 평생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함에서 우러나는 따뜻함

많은 독자들이 작품을 통해 느끼는 ‘따뜻함’에 대해 홍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의도적으로 따뜻함을 주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솔직한 표현, 진솔함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적으로 느껴질 때 공감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때로는 독자들이 작품의 인물과 작가를 동일시하게 된다. 엄밀하게 그것은 같지 않지만 사적인 경험이 각색되어 작품에 드러나는 것에 대해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들 딸인 다운이와 겨운이, 아빠 엄마인 정보통 씨와 생활미 씨가 저희 가족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가족의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대중적인 시선에서 보려고 하지요. 본질적으로는 공감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어떤 때는 독자들이 객관적인 마인드로 보고 싶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집도 그랬는데, 그 집도 그렇단 말이지? 하면서 공감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자연스러운 발로가 아닐까 합니다.”

결국은 개연성의 문제일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풀어주는 작품 속에서 사람들은 즐거워도 하고 함께 분노하거나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우리 집 아이가 어렸을 때 이야기는 실제 경험을 그대로 그려도 작품이 되는 상황이 있었어요. 부부가 적응하는 시기에도 그랬고, 그 때는 부부간의 트러블을 소개만 해도 공감하는 분위기였지요. 하지만 요즘은 저 자신의 생활부터가 안정적이고 아기자기하던 맛은 없어진 거죠. 그러다보니 일부러 그렇게 그리지는 않으려고 해요. 요즘은 다양한 시선을 접하고 싶은 독자들의 생각을 그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 <비빔툰> 등장인물들이 <서울타임스>에 바라는 메시지.

“어렸을 땐 감성교육 우선”

홍 화백의 자녀들도 작품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초등학생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랬다.

“아내와 저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합의한 게 있어요. 자랄 때는 감성교육을 우선으로 하자. 지식교육은 대학 갈 나이 정도 되어서 그때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죠.”

실지로 그의 자녀들은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큰 아이가 저학년일 때는 사실 잘 보낸 걸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좀 산만한 면이 있는 녀석이었는데 더 산만해진 것 같았으니까 말에요.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예의바르게 변하고 사물이나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태도를 가지더군요. 지금은 대안학교의 교육에 감사하고 있지요.”

현재 큰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와 함께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교육 방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방식을 선택하려면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그는 아내의 교육관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다.

작품 속의 겨운이의 모델인 딸아이도 현재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일반중학교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고 아마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녀와 부모가 함께 상의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기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자이자 만화가인 박재동 화백이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감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된 것에 대해 홍 화백은 “원래 고등학교 선생님이셨고, 정치와 시사만화를 주로 그리면서 사회적인 관심이 있으셨을 것이기 때문에 좋은 선례를 남기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교육이란 갑작스럽게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계단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변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만화의 조건

▲ <비빔툰>, '나는 너의 편'
홍승우 화백의 만화에는 심리를 꿰뚫는 관조가 있다. 따로 심리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어 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 자체가 공부라는 말도 했다. 그것을 두고 그는 ‘마음의 추스림’이라고 표현했다.

“힘들어서 그만두어야겠다고 했던 때가 갈림길이었어요. 행복한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편안합니다. 한 컷에 대한 집착을 놓으니까 그게 가능해지더군요.”

‘한 컷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모든 만화가들이 고개를 끄덕일 내용일 것이다. ‘반전과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만화가들이 고심하겠지만 홍 화백은 긴장하지 않고 작업하려고 한다고 했다.

“전력질주하기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하구요. 저에게 이 작품은 숨 쉬는 공기 같은 느낌이 들어요. 독자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랜 기간 연재할 것이라고 짐작도 하지 못 했고 계획한 바도 아니었지만 <비빔툰>은 이미 자신의 삶의 길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평생을 두고 그리고 싶다는 소망을 그도 이야기했지만, 독자들도 평생을 두고 작품 속의 인물들과 함께 나이 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는 것을 홍 화백이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퓰리처상에 빛나는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은 ‘만화는 영화보다 심오하고 연극보다 유연하다’고 했다. 삶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통로로서의 작품은 때로는 삶 자체보다 더 심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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