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의식주에 고루 쓰인 ‘칡’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식주에 고루 쓰인 ‘칡’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7.05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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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16]
예나 지금이나 칡의 이용은 다양한 것 같다.
생활에 필요한 의류에서부터 신발이나 각종 민구, 약재, 식품에 이르기까지 활용 범위가 매우 넓었다.

▲ 칡은 꽃과 열매, 줄기와 잎, 뿌리까지 모두 유용하게 쓰였다. ⓒ송홍선

뿌리의 갈분은 숙취 해소에 효능

칡은, 줄기와 꽃은 물론 뿌리까지 모두 유용하게 쓰였다. 칡은 햇빛이 많은 야산에서 생장이 왕성하다. 추위에 강하고 바닷가의 염기에도 잘 견딜 뿐만 아니라 마른 땅의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때문에 사방사업용이나 도로 절사면의 토양 유실 방지에 활용했다.

줄기와 잎은 가축의 사료나 퇴비용으로 쓰였다. 더욱이 손가락처럼 가는 줄기는 주로 삼태기나 바구니 따위를 엮을 때 필요했다. 또한 농가에서 쓰는 키의 쳇바퀴를 매거나 도리깨 등을 묶는 등 주로 힘을 받는 곳에 널리 사용한 것도 칡이었다. 농촌에서는 노끈의 대용으로도 많이 쓰였다.

땅 속의 뿌리는 녹말이 많이 들어 있어 흉년에 구황식량으로 즐겨 먹었다. 칡의 뿌리에서 걸러낸 녹말가루가 갈분인데, 이것을 녹두가루와 섞어 국수 또는 수제비를 만들거나 쌀가루를 섞어 죽을 끓여 먹었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갈분에 생강즙과 꿀로 반죽을 해서 갈분다식도 만들어 먹었다. 특히 갈분을 묽게 쑤어 생강즙과 꿀을 탄 것을 갈분응이라 하는데, 이것은 술 마신 다음날에 좋았다.

한방에서는 발한, 해열, 진경(鎭痙)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하여 뿌리를 약재로 썼다. 꽃은 주독을 없애고 하혈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민간약으로 제격이었다. 특히 칡은 술을 덜 취하게 하거나 주독을 풀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애주가들이 종종 찾기도 했다.

반면에 최근에는 칡의 성분 가운데 알코올을 거부하는 물질을 발견함으로써 술을 끊는 묘약으로도 개발이 가능해졌단다. 서양에서는 화살의 독을 제거할 때에 이용했단다.

▲ 민간요법에서 주독을 없애고 하혈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칡 꽃. ⓒ송홍선

청올치로 옷을 짜고 짚신 삼어

칡의 섬유는 ‘청올치’ 또는 ‘칡오락’이라 했다. 이것을 이용해 짠 옷이 갈옷 또는 갈포(葛布)이다.

갈포는 한때 선조들의 의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갈옷은 비를 맞아도 피부에 달라붙는 일이 없으며, 땀에 젖은 것을 그냥 두어도 쉽게 썩지 않았다. 세탁을 할 때도 비누가 필요하지 않았음은 물론 물이 빨리 빠지므로 실용성이 많았다. 오늘날에는 갈옷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게다가 짚신도 칡의 속껍질로 꼰 ‘청올치’로 엮었다. 신바닥과 신총을 모두 칡으로 삼거나, 신바닥을 짚으로 하고 신총만 속껍질로 만든 짚신도 있었다. 칡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데다 질기므로 농촌 사람들은 칡으로 엮은 신을 즐겨 신은 적도 있다. 줄기의 섬유는 닻줄이나 물고기를 잡는 데 쓰이는 주낙줄로도 좋았다.

이렇듯 선조들은 칡의 섬유를 빼내어 갈포를 짜 옷을 지어 입었고, 갈건(葛巾)을 만들어 썼으며, 갈혜(葛鞋)를 삼아 신었다. 또한 칡에서 녹말가루를 뽑아내 국수를 빼어 먹거나 수제비를 끓여 먹었고, 녹말가루를 뽑아낸 섬유를 모아 흙벽돌을 찍어 벽을 쌓고 지붕을 이었다.

이렇게 칡은 허세가 없는 최저의 삶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속세에 미련이 없는 은둔생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청구영언(靑丘永言)》의 “갈건에 술 거르는 소리, 가는 비 소리인가 하노라”는 구절은 속세를 버린 은둔 생활을 뜻함이 아닐까.

한편, 일부 산간지방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 부드러운 칡의 섬유 검불 위에 받으면 한평생 앓지 않는 것으로 믿었다. 사람이 죽으면 칡의 가는 줄기를 끈으로 이용해 시신을 묶었는데, 이는 이승에서 원한이 없이 편히 잠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이처럼 칡은 우리 한민족이 그 위에서 태어나 그로써 먹고 입고 잘 살다가 그것에 묶여 묻히는 한민족적 인생의 최소, 최저의 보장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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