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로 보는 서울시민의 산책 또는 보행
일을 위한 걷기, 중구·종로구·강남구 유동인구 ‘으뜸
지난 가을 서울시는 걷기 좋은 서울길 10선을 내놓았다. 숲길, 하천길, 공원길, 역사 문화길 4가지 테마로 구성된 서울길은 경사로를 고려해 난이도별로 나눴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자신만의 걷기코스’를 발굴하고 자주 다니는 것이다.
광야를 말달리던 인디언들은 잠깐씩 말을 멈춘다.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제주올레길 서명숙 이사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전국이 걷기 열풍이다. 2007년 처음 개장했을 당시 3000명에 불과했던 올레길탐방객은 2008년 3만 명, 2009년 25만, 2010년 60만을 넘겨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안타깝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제주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OECD에서 최장노동시간 1위의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고용부가 내놓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2011년 6월)’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기업의 연차휴가 평균 발생일수는 11.4일인데, 실제 휴가 평균 사용일수는 7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다운 휴가는 딱 일주일인 셈이다.
다행이다. 서울에도 걷기 좋은 코스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가을 서울시는 걷기 좋은 서울길 10선을 내놓았다. 숲길, 하천길, 공원길, 역사 문화길 4가지 테마로 구성된 서울길은 경사로를 고려해 난이도별로 나눴다. 숲길 코스로 북한산 방학 능선길, 불암산 숲길, 강동 그린웨이, 대모산 숲길, 국사봉 숲길, 관악산 계곡길 6곳이 추천되었다.
하천길로 선정된 ‘성동 송정둑길’은 어린이대공원을 거쳐간다. 공원길로는 강서구의 ‘우장산 숲길’과 ‘월드컵공원 순환길’이 뽑혔다. 자연뿐 아니라 문화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길로는 ‘홍릉 수목원길’이 꼽혔다. 홍릉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으로 44만㎡ 면적에 수많은 나무와 꽃들의 도심 속 거처이다.
이런 길들이 가을에만 좋을 리 없다. 입춘이 막 지났다. 겨울과 봄을 잇는 근사한 산책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걷기 좋은 길들은 대부분 도심과 연결돼 있어 점심시간이나 여유시간을 이용해 구간 일부라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자신만의 걷기코스’를 발굴하고 자주 다니는 것이다.
산책은 나의 종교
심보선의 ‘삼십대’라는 시는 원래 이 보다 더 길다. 산책 버전으로 중간 중간 편집했다. 원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시에는 마침표가 없고 전부 쉼표로만 이어져 있다. 산책과 쉼표는 아주 잘 어울린다. 산책은 무엇인가를 끝맺기 위해서나 강렬한 느낌표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쉬엄쉬엄 감정과 생각을 숙성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산책에서 만들어졌다. 이십 대에 인도로 건너가 일 년 넘게 맨발로 걸었다. 죽기 직전 그의 인생은 전기 작가와의 산책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베토벤의 산책과 교향곡은 유명하다.
야구감독 김성근은 인천시절 중요한 경기에 질 때마다 문학경기장에서 송도 집까지 두 시간 이상 혼자서 걸었다. 패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만족과 여유라는 단어를 제일 싫어한다는 그의 산책은 비장하고 혹독하다.
심보선 시인은 오랜 해외 유학시절 작은 방에서 그 시를 썼다. 포유류 고래는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와 숨통을 틔워야 한다. 산책은 잠영 사이 숨 쉬는 시간이었을까. 스티브 잡스는 자기를 버린 부모를 찾기 위해 사립탐정까지 고용했다. 산책은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인가보다. 김성근 감독은 이십 대에 한국에 귀화한 재일교포 출신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쪽발이’라는 욕을 듣는단다. 그에게 산책은 지독한 이 사회의 편견에 대한 자존심 걸린 투쟁일 것이다.
서울시민들의 걷기풍경
서울시는 2009년 4개월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서울시내 유동인구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총 2200명의 조사원을 동원했다. 서울시내 주요 가로와 교차로, 다중이용시설 등 1만 개 지점의 유동인구 규모와 특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매일 07시~21시까지 14시간을 기준으로 1일 2교대 계수기를 통한 관찰조사 방법으로 기록되었고 GIS(지리정보시스템)에 입력되었다. 예산 150억을 투입한 ‘희망근로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요일별, 시간대별 보행량을 볼 땐 서울시엔 금요일 18:00~19:00 사이에 보행량이 절정을 이룬다. 요일별로는 1만개 전 지점 평균 보행량 중 금요일 보행량이 3315(인/14hr)로 가장 많았고, 토요일이 2886(인/14hr)으로 가장 적었다. 월~금 평일 보행량은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이는 출퇴근 및 통학으로 인한 보행인구가 큰 영향을 미쳤고, 주5일제로 출퇴근 및 토요일 통학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시간대별 지점평균 보행 인구를 보면 금요일 18:00~19:00 시간대가 393명으로 가장 많고, 토요일 07:00~08:00 시간대가 73명으로 가장 적었다. 특히 오후 및 저녁 시간대가 오전 시간대보다 보행량이 많았다. 지역별 보행량을 보면, 요일별, 시간단위별로 조금씩 차이는 보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중구, 종로구, 강남구의 보행량이 25개 자치구 중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중랑구, 성북구, 금천구 보행량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나 홀로 걷는 사람이 73%
서울시내 10여 개 글로벌존의 유동인구 속성을 분석한 결과 인사동, 시청 인근과 역삼동, 테헤란로 등은 여성보다는 남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남대문과 명동, 이촌 지역에서는 그래도 여성비율이 높았다. 연령별 특성을 보면 동대문, 이촌 지역 등에서 20대 미만의 연령층 보행 비율이 높고 테헤란로와 명동, 동대문, 역삼1동, 이태원 등지는 20~30대가 즐겨 찾는 보행로로 나타나 지역특성과 맞물린 활기를 나타냈다. 한편, 인사동과 남대문에선 중장년층의 보행비율이 높았다.
유동인구의 보행패턴을 살펴보면 서래마을, 인사동, 명동 등은 동행자와 같이 다니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강남 테헤란로는 혼자 다니는 비율이 94.4%로 가장 높고, 교통수단 중 지하철을 이용하는 비율도 67.4%로 높게 나타났다. 길을 걷는 사람 중 맨손으로 다니는 비율은 77.1%로 나타났으며, 강남 테헤란로는 90.3%로 높으며 명동은 케쥬얼이나 평상복 차림의 보행자가 87.3%로 높고, 테헤란로는 정장 등 차림의 보행자가 43.8%로 나타났다.
우울함의 처방전
한국인의 우울증은 다른 나라와 다른 특성을 갖는다. 우선 짜증을 잘 내고 욱하고 화가 치미는 반응이 흔하다. 다음으로 가중되는 업무 부담, 서비스업 종사자의 증가 탓에 탈진증후군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대수롭지 않은 스트레스라도 그때 그때 풀지 못하고 계속 쌓이면 결국 작은 스트레스에도 못견딜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
햇빛은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일조량이 적어지면 멜라토닌이 감소해 잠을 잘못이루고 기분도 우울해진다. 일반적인 우울증 치료에 2500룩스 이상의 인공적인 빛을 쬐는 광 치료도 사용된다. 증상이 가벼우면 야외에서 산책이나 운동하며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서울백병원 정신과 우종민 교수의 조언이다.
당신만의 산책 스타일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인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자기시간의 하나뿐인 주인이다. 우리는 자신의 원소 속에 몸을 담그고 있듯이 자신의 시간 속에 몸담고 유영한다. 발걸음의 문화는 덧없음의 고뇌를 진정시켜준다. 걷기는 세계를 사물들의 충일함 속에서 생각하도록 인도해주고 인간에게 그가 처한 조건의 비참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다비드르브르통의 ‘걷기예찬’ 중 밑줄 친 구절이 있다. 그 중 너무 좋았던 세 구절을 옮겨놓는다. 한 동양철학자는 길을 뜻하는 도(道)자를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풀이한다. 한자어 도(道)를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 수(首)와 쉬엄쉬엄 가다 착(?) 두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상형문자의 해법으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어가는 것’이다. 길에서 걷기와 사색하기의 화음이 만들어진다. 서울엔 8067km의 길이 있다. 서울~부산의 스무 배의 길이, 얼마나 어디까지 걸어보았나 헤아려본다.
아침, 아파트 단지 작은 산책길을 걸었다. 아직 눈이 쌓여있다. 발걸음마다 소리가 났다. 나는 걷고 길은 소리로 답한다. 그 소리는 길이 내게 화답한 아주 작은 응답이자 내 몸의 낮은 메아리다. 나와 길이 빚어내는 화음이다. 도시의 보도블록이나 횡단보도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소음과 경적이 지배한다. 그럼에도 내면의 산책로는 발자국 소리로 화답한다. 어디든 좀 더 걸어야겠다. 새로운 화음을 짓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