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고수레’ 풍속으로 풍년바라는 벼
모내기 ‘고수레’ 풍속으로 풍년바라는 벼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6.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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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108]
▲ 벼 꽃. [송홍선]

벼는 인도 및 동남아시아 원산이며, 줄기 높이가 1m 정도까지 자란다. 생활형으로 보면 벼는 물이 있는 곳에서 자라는 전형적인 수생식물이다.

아시아의 온대지역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현재 한반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벼농사 지대에서 모내기를 통한 벼 재배가 일반화되어 있다.

모내기는 못자리의 모를 넓은 논에 옮겨 심는 일이다. 한반도에서 모내기의 벼농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말 공민왕 18년(1292)에 볍씨 대신에 모를 키워 심는 모내기 재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내기는 볍씨를 못자리에 뿌리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볍씨는 대체로 물길이 좋은 땅, 즉 ‘못자리 배미’라는 곳에 해마다 뿌린다. 볍씨는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날 뿌리는 것이 좋다. 모내기와 관련한 전통의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전하고 있다.

경북 영천지방에서는 아침 일찍 볍씨를 뿌리고 급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둑에 오래 있으면 모 뿌리가 깊어져서 모를 찔 때 힘이 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북 문경지방에서는 볍씨뿌리는 날을 따로 받으며, 동쪽 논은 1∼2일, 남쪽 논은 3∼4일, 서쪽 논은 5∼6일, 북쪽 논은 7∼8일을 피한다. 그러나 9∼10일은 ‘대장군’이나 ‘손’이 없는 날이어서 어느 곳에 있는 논이라도 모를 낼 수 있다.

경기 김포지방에서는 이날 벼가 잘 서고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못자리에 술과 북어를 차려놓고 빌며 ‘고수레’하면서 술도 뿌린다. 또한 뿌리고 남은 씨는 잘 말려서 입으로 까먹거나 절구에 찧어서 밥이나 떡을 해 먹는다. 자라난 모는 아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손으로 뜬다. 뿌리의 흙을 물에 흔들어 떨어지게 한 다음 나르기 쉽도록 묶어놓는다. 모를 찔 때는 다음과 같은 ‘모찌는 소리’를 부른다.

에헤야 어기어라/ 머난디가 살아지라/ 앞의 산은 가까워지고/ 뒤의 산은 멀어진다/ 에헤야 어기어라/ 머난디가 살아지라/ 먼데 사람 듣기 좋고/ 가까운데 사람 보기 좋고/ 에헤야 어기어라/ 머난디가 살아지라/ 다 되었소 다 되었소/ 이 모판이 다 되었소/ 에헤야 어기어라/ 머난디가 살아지라. <호남지방 민요>

모를 심을 때에는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끼리 어울리며 논이 인접한 경우에는 품앗이를 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땅이 많은 사람이 품삯을 주어 모를 심기도 했다. 호남지방에서는 모를 심을 때 수 십 명이 농악을 치는데, 이때 치는 북을 ‘모북’ 또는 ‘못방구 친다’라고 한다. 모를 심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모심기 노래’를 부른다.

어라디야 저라디야 상사로세/ 이 농사를 어서 지어/ 나라 봉양을 허고 보세/ 어라디야 저라디야 상사로세/ 이 배미 저 배미 다 심었으니/ 장구 배미로 넘어가세/ 어라디야 저라디야 상사로세. <호남지방 민요>

▲ 모내기. [송홍선]

그리고 모내기를 하는 날의 논 주인은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고, 밥을 풀 때는 한 숟가락을 논에 떠 넣으며 ‘한 마지기에 한 섬씩 나도록 도와 줍소서’하고 축원하는 지역도 있다.

한편 황해도와 경기도 일부의 농촌에서는 정월대보름날 저녁에 마을 청년들이 모여 모심기놀이를 벌였다. 윷놀이가 끝난 다음 산신 역을 맡은 한 젊은이가 암소를 거꾸로 타고 산쪽에서 내려오면 청년들은 이를 맞아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이때 사람들은 실제 모낼 때처럼 옷을 입으며 종이나 짚으로 만든 모를 손에 쥐고 농악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모심기 흉내를 낸다. 이 놀이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장만한 음식을 들며 하루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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