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용택
시인 김용택
  • 정윤희
  • 승인 2010.07.15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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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다시 시를 말하다

<출판저널>은 최근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김용탁 시인’으로 열연한 김용택 시인을 전주에 내려가 만났다. 새로운 아파트로 입주한 지 나흘 째 되는 날이었다. 아직 서재를 정리하지 못했다며 기자들을 인도한 시인의 방은 벽면을 둘러싼 서가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새벽차를 타고 내려온 기자들을 맞이하듯 향긋한 녹음이 창밖에서 넘실거린다. 단오를 넘긴 유월의 바람은 시인과 객들 사이에서 유영하다 머물고 간다.

▲ 김용택 시인

“야들야, 느덜이 하도 징글징글허게 말을 안 들어서 나 인자 핵교를 그만둘란다! 인자는 느덜 그만 가르칠라고 헌단 말이여이. 알어?”

시인 김용택. 구수한 사투리만 들어도 세상 시름을 잊게 하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스물한 살이었던 1970년부터 38년동안 모교 후배들인 덕치초등학교 아이들과“재미있게 놀다가” 2008년 8월 29일 교직생활을 정리했다.

1982년 창비 21인 시작시집《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시인은 시집《섬진강》《맑은 날》《그 여자네 집》《나무》《연애시집》《그래서 당신》등과 산문집《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섬진강 이야기》《사람》《수업》(공저)《 오래된 마을》《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공저)《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입 맞추다》,《시가 내게로 왔다》, 동시집《콩, 너는 죽었다》《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등 다작으로 독자들을 웃음으로, 사색의 심연으로 이끈다.

덕치초등학교를 퇴임한 후 그는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 특강을 다닌다. 배꼽잡을 정도로 청중들의 혼을 쏙 빼는 그의 말솜씨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면 점심을 먹고 충주로 특강을 가야 한다. 다음날 대구에 있는 읍내 도서관에서 강의하고 곧바로 광주로 내려간단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동행할 것이란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김용탁 시인’으로 등장하시는데요. <시>에 어떻게 출연하시게 되었나요?

소설을 쓰셨던 이창동 감독과는 안면은 있지만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이 만든 <오아시스> 등 그의 영화를 무척 좋아했어요.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김용탁’시인이 등장하는 거예요.

속으로 혹시 나를 영화에 출연시키려고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강연을 녹화해가더라고요. 제가 촌사람이잖아요. 영화 속 공간이 시골인데, 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한 강연을 몇 컷 쓰려나보다, 라고 생각했지 출연까지는 생각을 안했죠, 감히.

어느 날 이창동 감독님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아휴, 말도 안된다고 했죠. 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고, 또 제가 강연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연기해보니까 힘들대요. 저는 강연할 때 웃고 떠들고 굉장히 시끄럽게 해요. 근데 영화는 그렇게 못하잖아요. 하하하.

선생님이 순창농림고등학교를 다닐 때 순창극장에 들어온 영화는 다 봤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애착이 크셨는데요. 직접 영화에 출연해 보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아내와 같이 시사회를 보러갔는데, 남편이 나오니까 정신이 없어 하는 거예요. 저도 부끄럽잖아요. 하하하. 영화를 제대로 못 봐서 두 번 봤어요. 직접 영화에 출연해 보니까 배우라는 직업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가장 힘든 일 같아요.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정말 힘든 일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영화감독과 음악 작곡가들은 천재들이에요. 시인은 훈련이 필요한데, 영화감독과 작곡가들은 타고 나야할 것 같아요. 영화에는 장면들이 많잖아요. 한 장면을 몇 초 보여줘야 하는가, 이게 너무 중요한데,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 보면 천재에요. 머릿 속에서 종합하는 능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하나의 사건이 됐든 한 인생이 됐든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되고,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에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야 하잖아요. 정말 힘든 일인데 해내잖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하고, 경제가 허물어지는 복잡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견상 풍족하지만 사람의 내면은 삭막해지고 있습니다. 자살률도 높아지고요. 시인으로서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복잡하죠.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농경사회에서 살았잖아요. 가난을 별로 탓하지 않고 살았던 거지요. 가난하지만 가난을 탓하고 살지 않았어요. 왜냐면 가난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몰랐으니까. 서구적인 가치가 들어오기 전에는 자연처럼 그렇게 살았던 거지요.

산업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경제적인 가치가 우리 정신을 지배하게 잖아요.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요동치기 시작하죠. 30~40년 만에 급격하게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잘살게 되고, 우리가 모델로 삼았던 미국처럼 잘살게 된 거죠.

그러나 왠지 허전해요. 너무 갑작스럽게 삶의 형식과 내용이 변해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적응을 못하는 거지요. 불안하고 허전하고 긴장하고 초조하고 그러면서 방황하죠. 그러다보니까 자연을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자연 속으로. 그러나 자연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잖아요.

시골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을 해야 돼요. 자연현상에 민감하죠. 자연현상에 따라서 농사를 짓고 살잖아요. 나무 한 그루, 물 줄기 하나, 바람 한 점, 햇볕, 땅, 벌레까지 관심을 가지고 살다가 사람들이 서서히 도시로 나오게 되면서 너무 심난해 합니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대로 안되는 게 많아지죠. 사람들이 간섭하고 거기에 참여해서 도시를 가꾸어나갈 수 있는 힘이 미치지 못한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개인적이고 폐쇄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속으로 들어와서 보니까 또 허전한 거예요.

사회는 월드컵이다 뭐다 축제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기도 하고 뜻도 모으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결국 혼자인거지. 그래서 또 자연을 찾아가요. 거기서 위안을 삼는 거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힘을 깨달아가는 거라고 볼 수 있죠.

이렇게 복잡한 시대 속에서 문학이 견디기란 정말 힘든 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소설 등 문학은 우리 인간의 창조적인 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 것 같고요.

시대가 너무 급변하기 때문에 문학이 견디기 힘들죠. 사람의 관심과 가치가 문학이라든가 정신적인 가치보다 물질이 앞서버리니까요. 또 문학이라는 것은 그 본질 상 감동이 더디고 늦게 오는 겁니다. 시를 읽고 나서 금방 감동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늦게 더디게 와서 우리를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데 사람들은 늦고 더디게 오는 것을 못참는거지. 인터넷처럼 탁 누르면 톡 하고 그림이 튀어나와야 하는 것처럼 속도가 빠른 것을 원해요. 사람들이 속도에 적응하다 보니까 문학이 사람들과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더라도 파편화된 인간들의 삶에 개인들, 또 자본이 만들어낸 자본이 소외시켜버린 인간, 이런 속에서 시가 이 세계를 종합해 내는 거지요. 즉 소외된 인간의 정신을 가지고 이 사회를 바라보는 거예요. 시가 이 사회를 종합하려고 하는 거지요. 사람들이 시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보면 굉장히 난해해요.

우리 문단이 1970년대 1980년대까지는 너무 뻔한 얘기를 해 왔어요. 무슨 의미인지 알았죠. 왜냐면 그땐 단순했으니까요. 경제성장만 하면 됐었고. 또 경제성장을 부르짖는 산업화 권력이 인간을 소외시키기 때문에 거기에 저항해서 싸웠죠. 그게 민주화 운동이잖아요. 민주화운동 세력과 산업화 세력들, 흑백논리, 좌파우파가 뚜렷했던 거지요. 그때는 어디로 화살을 쏘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안거지.

그러나 오늘날에는 과녁이 사라졌어요. 말하자면 어떤 것을 맞힐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방황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문학도 함께 방황한다고 봐야지요. 그 방황 속에서 젊은 시인들이 도시라는 복잡하고 다중적이고 입체적이고, 우리 눈으로, 사회과학으로, 문학으로 담아낼 수 없는 보다 복잡한 도시란 게 있어요. 그것을 향해서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시인들이 있는 것이죠. 그들의 시는 굉장히 다양하고, 놀랍고 허무하고 절망적입니다. 낙관보다도 비관적인 시들, 어두운 구석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 시들은 사람들 가슴에 가서 닿지 못하죠.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니까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거예요. 느리고 더디면 안돼요. 기다릴 줄을 모르는 거지. 그리움이 없는 거야. 우리 문학이 지금 헤매고 있으면서도 젊은 시인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바라보는 눈은 매우 냉철하지요.
 

저는 문학하는 사람들이 생태주의, 자연주의를 외치는 것은 못마땅하게 생각해요. 오늘날 자연주의적이라는 것은 도피라고 할 수 있어요. 자연주의, 생태주의적인 것이 사실은 편한 거예요. 정신적으로 굉장히 편한 거죠. 불편한 것을 말해야죠, 문학은.

불편한 진실. 저도 그렇고. 우리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오고, 농경사회를 맛본 세대를 살아온, 매우 인간적이었던 삶의 공동체적인 것을 맛을 본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기가 힘든 거죠. 그래서 젊은 미래파 시인들의 시들이 눈부시죠. 저는 그런 점에서 우리 문학의 희망을 보고 있어요.

영화 <시>에서“시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니까 황병승 시인이“죽어도 싸다”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은 죽어도 싸죠. 하하하. 시가 죽어간다는 의미는 시가 이 시대에서 할 일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시가 할 일을 회피했거나 낭비했거나 삶 속에 찾아들어가지 못한 거지요. 영화 <시>를 보면‘최미자’가 시를 찾아가지만 괴롭고 힘들어 하잖아요.

영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고 봐야죠. 시가 죽어가고 있죠.

어떻게 해야 이 시대에 죽어가고 있는 시를 살릴 수 있을까요?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을 것 같고, 아…살리는 방법은 없고…, 영화 <시>에서처럼 시를 쓰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요. 그렇다고 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요. 시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우리들 말이,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 시대가 가다가 또 시가 우리 시대에 한 몫을 담당하는 때가 오기도 하겠죠. 시인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지요. 모색을 하고 삶의 핵심에 가닿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피투성이가 되도록 현실과 대결하는 시인들이 많으니까요.

선생님이 말하는 미래파 시인들의 시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이기 보다는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시를 읽고 음미하는 독자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미래파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면 난해한 시들이 많죠. 그러나 시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아요. 복잡한 사회를 치열하게 담아내려고 하는, 긴장된 언어들로 구성돼 있어요. 우리가 시를 자세히 안 볼 뿐이죠.

제가《시가 내게로 왔다》를 냈는데, 책 뒤에도 글을 썼어요. 이른바 G세대, 세계화되고 환경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세대들이 등장했어요. 자본의 혜택을 받으면서 자라난 G세대의 등장이 우리 시대를 바꿔가는 겁니다. G세대인 젊은 시인들은 보다 복잡한 사회를 문학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 미래파 시인들이죠. 이들은 문학적 전통도 필요 없고, 선배도 필요 없어요. 우리처럼 빚지고 사는 세대들이 아니에요.

우리 문학세대는 김수영 시인에게 빚지고, 신동엽 시인에게 빚지고, 김소월 시인에게 빚지고… 선배 문학인들에게 다 빚지고 살았잖아요? 우리는 그들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받았고요.

그러나 미래파 젊은 시인들은 선배들의 문학적 전통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복잡한 현실을 바라볼 뿐이에요. 느리고 더디는 서정적 시는 별로 재미가 없어지는 거지요. 정답이 나와 있는 시는 아닌 거지요. 왜냐면 우리 사회는 정답이 있는 사회가 아니니까.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이 그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거에요. 그러니까 자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내면적일 수밖에 없는 거지요. 보다 난해한 시가 나올 수밖에 없고요. 그러한 시를 우리가 이해해야 해요.
젊은 미래파 시인들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의미에요.《 시가 내게로 왔다》를 쓰면서 젊은 세대의 번쩍이는 외로움, 독선적이고 독단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속에서 문학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시를 찾아다니는 외로운 그들이 보이는 거예요. 참 괴로운 일이죠.

그 괴로움을 느껴야 하는 것이 또 괴로워서 정작 읽어야 할 시를 읽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것을 또 탓하면 안돼요. 그게 현실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시가 할 일이 미미하고 힘이 없지만 그래도 시라는 게 필요하잖아요. 영화 <시>에서“시는 죽어도 싸다”고 외치지만 시는 죽어버릴 수 없죠. 그 속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거지. 그게 시의 운명이에요.‘

최미자’의 운명처럼, 어디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 그렇다고 시는 어디로 가버리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 아픔과 고통은 남아요, 우리 가슴 속에. 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죠. 또한 시는 아름다운 거잖아요. 어쨌든 고통은 축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영화 <시>에서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시를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을 갖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생님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요?
저는 늘 지금이 좋은 사람입니다. 지나간 건 별 의미가 없고요. 오지 않은 것은 모르고.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지금 이렇게 내 방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래도 덕치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요. 제가 살아오면서 잘했다고 여기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요. 제일 잘 한 것은 초등학교 아이들과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을 산 일. 또 잘 한 것은

제가 선생을 그만 둔 일이죠. 본 나이로는 2년 남았었고, 호적 나이로는 6년이 남았었지요. 일찍 그만 둔 게 정말 잘했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많잖아요. 그렇다면 일찍 그만둔 게 너무 잘 한거죠. 10년 후면 일흔세 살밖에 안먹잖아요? 10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요. 하하하.

퇴임 후에도 선생님이 쓰신 시집, 산문집이 나옵니다. 평소 글쓰기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요즘에는 신문을 자세히 읽어요. 〈전북일보〉〈조선일보〉그리고〈한겨레신문〉을 봐요. 또 인터넷 들어가서 칼럼들도 다 찾아서 읽어요. 특히〈한국일보〉칼럼은 빼놓지 않고 다 챙겨 봐요.

새벽 3시 반이나 4시 사이에 일어나요. 대신 전날 오후 8시 넘으면 일찍 자요.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다듬고, 4시 정도에 신문이 오면 신문을 다 읽어요. 시간이 남으면 6 시 반까지 그동안 써놓은 글을 손질하고 운동하러 나가요. 러닝머신을 하는데요. 좀 기분 나빠.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야. 하하하.

운동하고 들어오면 간단하게 아침 먹고 아침에 강의가 없으면 책을 읽거나 글을 다듬거나 하고요. 그럼 잠이 와요. 낮잠을 좀 자기도 하고요. 특강이 없는 날은 아내와 영화 보러 나가요. 멀리 특강을 하러 갈 때는 아내와 같이 가서 2박3일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도 해요.

영화를 보면‘사과’를 들고‘보다’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시인으로서 ‘보다’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신가요?

제가 그 장면을 찍고 그 사과를 집에 가지고 왔어요. 사과가 썩어버렸어요. 영화 찍을 때 하도 닳아서…. 하하하. 저는 영화 속에서처럼 ‘비춰도 보고’그렇게 강의 안하는데 감독님이 하라고 해서 한거에요. 하하하.

시는 여러 관심의 대상 중 한 가지에요. 예를 들어 집을 짓는다면, 벽지를 바르는 일이고 유리창을 다는 일이죠. 시란 벽지를 바르고 유리창을 다는 일을 문학이라는 언어로 가져와서 시라는 형식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지요.

시인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기 꽃이 피어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자세히 보지 않는 것을 보도록 말해주는 사람이죠. 시는 억지로 쓸 수가 없어요. 억지로 시를 지어 놓으면 읽는 사람들이 공감을 못합니다. 시란 삶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죠. 꽃이 피었다고 하는 사람이고, 바람이 분다고 말하는 사람이 시인이죠.

시를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시를 잘 쓰려고 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이 세상의 핵심에 가 닿고 싶은 거예요. 그 핵심을 내 말로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이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거예요. 우리가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곳에 복잡하고 무수한 삶의 모습들이 있어요. 그것을 잘 읽고, 그것들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면 돼요.

예를 들면 창밖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해봐요. 늘 똑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아요. 늘 변해요. 나무에게 일어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아요. 그 나무가 나에게 전해주는 말이 있어요. 그렇듯이 삶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면 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죠. 책을 읽는다는 의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1970년, 스물한 살에 덕치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로부터 배우면서 살아오셨습니다. 1982년에 창비에 <섬진강 1>을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하셨는데요.선생님에게 시란 어떤 의미입니까?

제가 선생이 되고 나서 어느날 학교에 월부 책장수가 왔어요. 그 중에서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샀지요. 여섯 권 짜리 전집이었는데, 선생이 되고 나서 처음 맞는 겨울방학에 전집을 모두 읽었습니다. 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 후로 저는 책을 옆에 끼고 살았습니다. 방에 쌓인 책을 보면서“나도 글을 써볼까? ”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쓰기 시작했지요.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3년 만에 시인이 됐습니다.

저는 처음에 문학을 접했을 때도 그렇고, 시에 대해서 절실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시인이 되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살다 보니까 어느 날 시인이 되어 있었던 거죠. 시란 내게 삶의 일부이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시는 그냥 나에요. 살다 보면 어느 날 시가 써지는 거지요. 이런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요. 저는 시가 써지든 안 써지든 상관 안해요. 써지면 쓰는 거고. 시에 대해서 편해요. 불편한 게 없어요.

선생님의 화통한 웃음이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없고, 고통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돈이 많은 사람도 고통은 있어요. 삶은 걱정과 근심과 고통이 존재해요. 그래서 인생을 고해라고 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고통을 버리려고 애를 써요. 그러나 더 고통스럽지요. 피할 수 없으면 그 고통을 내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을 내 삶의 발판으로 삼는 거죠. 고통이 나를 키워주는 것이죠. 고통이 없으면 성장과 성숙이 없습니다. 고통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죠. 고통을 떼어내려고 할수록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니, 고통과 슬픔을 나의 힘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죠. 인생은 고해니까요.

재미있게 글 쓰고, 재미있게 세상을 살고 싶은 시인

시인의 눈은 깊다. 선생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아이들 얘기를 할 때면 안경 너머 눈물이 일렁인다. 시인은 하하하 화통하게 웃으면서“아이들은 돌아서면 선생을 잊어버린다”며 말하지만,《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맞추다》에“내 생을 다 보낸 그 세상 세월을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때로 아이들이 뛰노는 작은 학교 운동장이 그립다.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새까만 눈동자들도 그립다. (중략)

생각하니 가만가만 눈물이 고여온다”라고 적어 놓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시인은 시인으로서 살 것이다. 재미있게 글 쓰고, 재미있게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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