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문과 온갖 민구의 재료로 이용한 싸리
사립문과 온갖 민구의 재료로 이용한 싸리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7.23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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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20]
▲싸리   ⓒ송홍선

우리 속담에 ‘도둑맞고 사립문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에 나오는 ‘사립문’의 재료는 대부분 싸리(싸리나무)로 만들었다. 따라서 사립문은 싸리로 만든 문을 뜻한다. 싸리는 굵기에 비하여 나무의 질이 단단하고 가지가 가늘어서 작업하기가 쉬웠다. 그리고 야산에 흔히 자라므로 수집도 어렵지 않았다. 때문에 이것을 사립문의 재료로 썼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옛날 사람들은 불붙는 성질이 아주 뛰어난 싸리를 땔감으로 이용하였다. 특히 정월대보름날에는 어느 집이고 싸리로 밥을 짓는 습속이 있었다.

싸리는 우리의 민속에서 여러 분야에 이용되었다. 배송굿을 할 때에 천연두의 두신(痘神)을 태워 보내던 ‘싸리말’도 싸리로 만든 것이었다. 천연두에 걸렸을 때에 싸리말을 태워서 역신(疫神)을 내쫓는 풍속 등은 싸리에 대한 의식이 주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싸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활용이 매우 많은 식물이다. 싸리의 채취는 보통 한여름에 하지만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대를 쓸 경우에는 가을 늦게 채취한다. 이렇게 채취한 싸리의 가지는 싸릿개비라고 한다. 이 싸릿개비를 솥에서 삶았을 때에 껍질이 벗겨진 속을 속대라 하고, 그 벗긴 껍질을 비사리라 한다.

채그릇은 싸릿개비를 엮어 만든 그릇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종류로는 쟁반처럼 둥글게 엮은 채반, 곡식을 저장할 수 있도록 독 모양으로 만든 채독, 옷이나 헌 책 따위를 담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채롱 등이 있다. 채그릇은 산에서 나는 싸리나무, 참싸리, 꽃싸리 등으로 만들었다.

흔히 채반, 채롱, 소쿠리 등은 매끈한 속대로 만들었다. 적기에 채취하고 말려 두었다가 겨울 한가한 때가 되면 물을 적시고 눅눅하게 하여 엮었다. 때에 따라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대로 엮을 경우도 있는데, 농산물을 널어 말리는 발, 지게 위에 얹는 발채를 비롯하여 삼태기, 바자울, 잠박 등은 모두 통대로 만들었다. 통대로는 싸리비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비사리는 독특한 갈색을 띠기 때문에 짚으로 엮은 맷방석, 둥구미, 도래멍석, 망태기 등에 무늬를 놓은 재료로 이용하였다. 이는 미의식의 한 표현이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여러 민구 종류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사리로는 그밖에 밧줄을 꼬았고, 볏짚보다 약간 질기기 때문에 짚신 바닥을 삼는 데에 곧잘 활용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멱서리, 섬 이외에 싸리로 만든 채독에 곡물을 저장하기도 하였는데, 여름에 싸릿개비를 구하여 껍질을 벗기거나 또는 통대로 엉성하게 채독 모양을 만든 다음, 안팎을 종이로 바르고 흙으로 쌌다. 흙을 바를 때는 진흙에 쇠똥을 섞었는데, 그 이유는 채독이 말라도 흙이 떨어지거나 갈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만든 채독은 헛간이나 부엌 같은 곳에 놓아도 쥐가 쉽게 파지 못하였으며 사시사철 습기 조절이 잘 되었단다.

한편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딱지 게임의 한 종류로서 즐기는 화투놀이가 있다. 그 놀이에 쓰는 화투는 48장으로 되어 있고 12가지(개월)로 크게 분류된다. 그 중에 4월은 흑싸리이라 하고, 7월은 홍싸리라 한다. 흑싸리는 음력 4월에 보랏빛으로 피는 등나무의 꽃이고, 홍싸리는 7월에 붉은빛으로 피는 싸리나무의 꽃이다. 따라서 싸리나무는 지금 꽃이 피는 식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적으로 마당 귀퉁이에 심어 마당비를 묶는 데 사용하는 ‘댑싸리’는 싸리라는 이름을 포함하지만, 이것은 콩과의 싸리나무 종류가 아니라 명아주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싸리의 이름도 싸리의 이용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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