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 경복궁 정전(正殿)이자 법전(法殿)
근정전, 경복궁 정전(正殿)이자 법전(法殿)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1.07.28 17: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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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문화유산 돌아보기-46]

▲근정전 하월대 동쪽모서리 해치(석견)상.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은 문무백관(文武百官)의 조하(朝賀)를 비롯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동시에 법전(法殿)이었다.

근정전은 조선 태조 4년(1395)에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1592)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에 재건되었다. 경복궁에서 왕위에 오른 왕은 조선 전기 대부분의 왕들로 정종·세종·단종·세조·성종·중종·명종 등이다. 그리고 단종은 자선당에서 태어났으며, 문종 비 현덕왕후 권씨, 예종, 명성왕후 등이 경복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근정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2단의 석조기단인 월대 위에 세워진 목조건물로 정면 5칸 측면 5칸의 중층 다포계 팔작지붕의 34m 높이로 장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근정문 행랑 오른쪽 모서리에서 보는 근정전의 아름다운 지붕곡선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며 근정전 북쪽과 서쪽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의 능선과 어우러져 가히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양천도 이듬해인 태조 4년 새 궁궐의 건물을 짓는 공사가 완료되었다. 이해 10월 7일 왕명에 의해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은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景福宮)’이라고 짓고, 다른 전각의 이름도 지어 올렸다.

궁궐의 이름 ‘경복’은 ‘이미 술에 취하고 덕(德)에 배가 불러서 군자의 만년을 빛나는 큰 복〔景福〕을 빈다.’는 뜻을 《시경(詩經)》주아(周雅) 편에서 취하고, 정전의 이름인 ‘근정(勤政)’은 《서경(書經)》에서 취하였는데, ‘경계하면 걱정이 없고 법도를 잃지 않는다.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하게 되는 것이 필연의 이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정도전은 부지런함의 덕목을 강조하였다. 이어 “임금이 오직 부지런해야 하는 것만 알고, 무엇에 부지런해야 하는지를 모르면 그 부지런한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까탈지게 되어 보잘 것이 없는 것이 된다.”고 다시 강조하였다.

그리고 옛 현인의 자세를 빌려 “아침에 정무를 보고(聽政), 낮에는 사람을 만나보고(訪問),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修令), 밤에는 몸을 편하게 하여야 하는 것(安身)이 임금의 부지런함”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덧붙여 “부디 어진 이를 찾는데 부지런하시고, 어진 이를 쓰는 데는 빨리 하십시오.”라고 말하여 근정의 의미와 실천방략까지 제시하고 있다.    

현재의 근정전은 2중의 복도모양인 복랑(複廊) 형식의 외곽건물인 행각(行閣)〔回廊〕으로 둘러싸인 마당 약간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상?하 월대 위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중층(重層) 팔작지붕으로 고종 4년(1867)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임진왜란 전에는 회랑이 1칸 규모로 이어진 단랑(單廊)이었다. 정전 앞 넓은 마당에는 거칠게 다듬은 박석(薄石)이 깔려 있고, 그 가운데로 난 임금의 통행로인 어도(御道) 좌우로 문·무관(文武官)이 신분에 따라 자리하는 12쌍의 품계석(品階石,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정3품, 종3품, 정4품, 정5품, 정6품, 정7품, 정8품, 정9품)이 설치되어 있다.

기단부를 이루는 월대는 이중으로 되어있는데, 상·하 월대 둘레에는 연꽃문양의 하엽(荷葉) 난간을 둘렀고, 각 난간의 엄지기둥에는 방향에 맞추어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남주작(南朱雀)·북현무(北玄武)의 사신상(四神像)과 12지상(十二支像)의 일부(소丑?개戌?돼지亥와 호랑이寅를 제외한 8신상)와 서수상(瑞獸像)들을 조각했으며, 상·하 월대 정면 모서리에는 45도 각도로 돌을 돌출시킨 멍에돌)에는 해치 한 쌍을 각각 조각하였다.

이들은 딴청을 부리듯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고 있고, 어미 배에는 바짝 매달려 있는 새끼까지 조각되어 있어 해학적이면서도 모자간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 석상에 대하여 유득공은 《춘성유기(春城遊記 )에서 석견(石犬)이라고 하였다.

즉 “근정전 월대 모서리에는 암수 석견이 있는데 암컷은 새끼를 한 마리 안고 있다. 무학대사는 이 석견은 남쪽 왜구를 향해 짓고 있는 것이고, 개가 늙으면 대를 이어가라고 새끼를 표현해 넣은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의 화를 면치 못하였으니, 이 석견의 죄란 말이냐?며 다만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 모름지기 믿을 것은 못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조각상들은 장엄한 경복궁의 건축미에 더하여 세세한 곳까지 치밀하고 여유롭게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으로 우리 건축의 미를 한결 높이고 있는 것이다.  월대 기단에 오르는 계단은 전·후 중앙에 각 1개소, 좌·우측에 각 2개소를 설치했으며, 전면 기단 중앙에는 답도(踏道, 폐석陛石)를 두어 그 경사면 구름 사이에는 봉황을 조각하였다.

테 안에 가득 차게 나래를 활짝 펴고 구름 속을 노니는 봉황새의 양각된 모습은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그리고 층계석 3단에는 넝쿨무늬를 양각하였는데, 이는 민초(民草)라 하며 백성을 상징한다. 즉 민초들이 옹위하는 왕실로 하늘의 천손이 백성들과 어울려 사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건물 외관은 중층이지만, 내부는 층의 구분이 없이 전체가 트인 통칸으로 되어 있으며, 뒷면 내진주 중앙에는 어좌(御座)를 마련하였고, 그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 일월오봉도)의 병풍이 있다. 본래 실내에 의장기물(儀仗器物)이 가득 장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어좌가 마련된 보좌(寶座)는 복련과 앙련을 새긴 연화대좌를 받침으로 하였고, 대좌의 옆면은 3단의 궁판으로 나누었다. 궁판에는 풍혈을 새기고 그 사이에 보상화문을 조각하였다. 대좌 위에는 난간을 두었고, 계자각을 설치하였다. 계자각 사이 아랫부분에는 귀면(鬼面)을 2구씩 두고 그 상부에는 풍혈을 조각하였으며, 계자각 윗부분은 하엽(荷葉)과 원죽(圓竹)으로 둘렀다.

어좌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앞·뒤 쪽과 좌·우 측면에 각각 1개씩 설치하였다. 어좌의 상부 천정에는 사각평면에 다출목(多出目)의 작은 공포를 짜고 네 귀를 모접이 한 뒤 다시 다출목의 작은 공포를 짜서 만든 말각(抹角)천정 형식의 보개를 마련하였고, 그 중앙에는 쌍룡과 여의보주를 조각하였다.

평면은 건물 밖으로 돌린 외진주와 건물 안의 내진주로 구성되었고, 건물 안 네 모서리에는 별도로 고주(高柱)를 세웠다. 내진주는 독립된 고주로서 외진부와는 퇴량으로 연결되었고, 퇴량과 뜬창방 사이의 상부 둘레에는 당초문을 조각한 낙양각을 돌렸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이며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 위에 세웠는데 바깥 원기둥은 귀솟음 수법으로 처리하였다. 기둥 사이에는 솟을빗살 분합문을 달았고 문인방과 창방 사이에는 교창(交窓, 光窓)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전·후 툇칸 11량이고, 포작은 다포계 외3출목, 내4출목으로 되었으며, 기둥머리마다 직각 방향으로 튀어나온 안초공(安草工)을 두었다.

건물 외벽 상부에는 창방을 하나씩 더 넣어 건물의 높이를 높였다. 건물 안쪽에서 볼 때 위층은 아래층 퇴보와 내목도리 및 멍에창방을 짜맞춘 곳 위에 위층 평주를 놓고 아래층과 똑같은 공포로 짜올렸다. 1층과 2층 처마 아래에는 새들이 깃들이지 못하도록 건물 전체를 빙 둘러가며 부시(罘罳)를 설치하였다.

천장은 격자 형태로 처리한 소란우물천정을 가설했는데, 천장 중앙에는 장방형 틀을 돌리고 다출목의 작은 포작을 다포식으로 짠 보개 천정을 마련하고 구름무늬를 그렸고, 발톱이 7개인 칠과룡(七瓜龍)을 만들어 달았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평탄하게 전돌을 깔았다. 건물의 외부 정면 좌우에는 청동제 향로를 놓았으며, 정면 서쪽계단 옆에는 무쇠로 만든 드므를 두고, 거기에 물을 담아 화기(火氣)를 진압하였다.

팔작지붕의 모든 마루면에는 양성을 발랐고,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를, 추녀마루에는 용두(龍頭)와 잡상(雜像)을 배열했다. 2000년 1월 해체수리에 착수하여 2003년 까지 ‘경복궁 근정전 보수공사’를 진행하여 개원하였다.

▲경복궁 근정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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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모 2012-04-15 06:31:00
나박사님! 부시는 명주실로 짯다고 알고있는데--사전엔 철망 이라고 나와 있어서 혹여 지난 수리보수중에 전통방식을 배제하고 철망을 붙였는지요? 궁금합니다-아니라면 전통방식으로 명주실로 짯는지요? 이메일로 보내 주시면 감사 하겠읍니다 수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