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유일한 향교, 가양동 '양천향교'
서울시의 유일한 향교, 가양동 '양천향교'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1.08.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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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문화유산 돌아보기-48]
▲양천향교 대성전 내부의 공자상과 위패.

양천향교(陽川鄕校) 터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234번지(향교길 50)에 위치해 있으며, 1990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양천향교는 1963년 김포군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가 되었다. 현재 중건된 양천향교는 총 건평 72평에 8동의 건물이 있으며, 석조기단 위에 세워진 목조건물이다. 현재 서울특별시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양천향교는 태종 11년(1411) 궁산 아래에 남향하여 창건되었는데, 궁산 일대는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양천현감(陽川縣監)으로 있으면서 진경산수(眞景山水)를 그린 풍경이 빼어난 곳이다. 양천향교는 창건 이후 선현을 제향하던 문묘(文廟) 기능과 함께 지방 중등교육기관의 기능을 하였다.

대한제국 말기 융희 3년(1909) 7월 5일 <소학교령> 대신 <보통학교령>을 반포하고 <고등학교령>이 신설되는 등 학제(學制)가 크게 개편됨에 따라 대한제국 말기 전국의 모든 향교와 마찬가지로 교육기능은 상실되고 문묘의 기능과 교화사업만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지방행정구역의 개편으로 양천(陽川)·통진(通津) 2개 군이 김포군에 합쳐졌다. 일제 당국은 이에 앞서 향교재산을 정부 소관으로 이속시킨데 이어 당시 폐지된 郡의 향교는 합쳐진 군의 향교에 통합하도록 하는 ‘1군 1향교’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지방의 실제 상황에 따라 1군 안에 여러 개 향교가 존립한 채 활동하였는데, 양천향교도 계속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45년 해방 이후 향교 재산은 각 도별로 재단법인을 두어 관리하게 됨에 따라 양천향교는 재단법인 경기도향교재단의 관리 아래 독립 운영되면서 건물들이 복구되기 시작하였는데, 현재의 향교 자리는 본래 위치 그대로다.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의 변경으로 이 향교가 위치한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동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입됨에 따라 1965년 12월 재단법인 서울특별시 향교재단이 설립되었고, 경기도 향교재단으로부터 양천향교의 재산을 인수하였다. 1969년에는 대성전(大成殿)과 외삼문(外三門)을 보수하였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 동안 향교복원공사계획(鄕校復元工事計劃)을 수립하여 1980년 11월 19일 복원공사를 착공하여 1981년 8월 31일 완공을 보았다.

이 공사로 향교 경내를 넓히면서 성현에게 제사지내는 대성전, 교육 장소로 사용되는 명륜당(明倫堂),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 머물렀던 동재(東齋)의 건물 규모를 크게 하여 새로 세웠으며, 없어졌던 서재(西齋)도 새로 세웠다.

이외에도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에 사용되는 그릇을 보관하는 전사청(典祀廳), 대성전 영역 출입문인 내삼문(內三門), 향교 출입문인 외삼문(外三門)을 넓혔으며, 담도 증축하였다. 언덕바지에 건립된 양천향교는 강학(講學)을 위한 공간과 제향(祭享)을 위한 공간이 각각 담으로 둘러싸인 별도의 영역을 형성하며 앞·뒤에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로 배치되었다.

강학공간에는 중심건물인 명륜당이 계단으로 조성된 언덕 위에 남향하고 있고, 계단 아래에 동재와 서재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서있다. 명륜당은 전면에 길게 툇칸을 둔 정면 5칸, 측면 2칸 반, 초익공,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로서,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그 좌우로 각각 1칸의 온돌방 협실을 두었다. 동재와 서재는 같은 규모인데, 각각 전면에 툇칸을 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에 납도리·팔작지붕 건물이다.

제향공간에는 대성전이 남향하여 서있고, 그 서쪽에 전사청이 동향하여 서있다. 대성전은 외벌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서있는 겹처마, 이익공, 맞배지붕의 건물로, 내부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안자(顔子)·자사(子思)·증자(曾子)·맹자(孟子) 등 5성(五聖), 주돈이(周敦?)·정이(程?)·정호(程顥)·주희(朱熹) 등 송조 4현(宋朝四賢),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라의 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 고려의 안유(安裕)·정몽주(鄭夢周), 조선왕조의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조헌(趙憲)·김집(金集)·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박세채(朴世采) 등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받들어 행하고 있다.

향교 입구에는 홍살문이 서있고, 외삼문으로 오르는 계단 좌측에는 역대 현감과 현령들의 선정비(善政碑)가 모여 있는데, 이는 1988년 중수하면서 양천 현아 주변에 있던 것을 지방 유림들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강서구 가양동의 양천향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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