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강심제로 더 유명한 디기탈리스
꽃보다 강심제로 더 유명한 디기탈리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9.0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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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127]
디기탈리스에서 추출한 스테로이드 글리코시드 성분은 의약품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일상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의약품은 주로 어디에서 원료를 추출한 것일까. 의약품이 인공으로 합성한 성분에 의하여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동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원료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예컨대 해열과 진통제로 유명한 아스피린(aspirin)은 지금부터 2400년 전에 의사 히포크라테 (Hippocrates)가 흰버드나무 껍질을 관절염이나 신경통의 환부에 붙이던 것에서 유래하고 있다.

남미의 인디언들은 안데스 산맥에 자생하는 키나나무(Cinchona속 식물) 가 말라리아의 특효약임을 알아냈는데, 1820년에는 키나나무에서 말라리아에 효과가 좋은 성분을 추출하여 내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3500년 전에는 양귀비에서 아편을 추출하여 진통제로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전래된 식물의 약효가 그 진가를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된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에 들어서야 의학전문가들은 흰버드나무에서 살리실산(salicylic acid), 키나나무에서 퀴니네(퀴닌, quinine), 양귀비에서 모르핀(morphine) 등을 추출하였고, 코카콜라 유래의 코카나무에서 코카인(cocaine), 대마초에서 마리화나, 마황에서 에페드린(ephedrine) 등을 뽑아내었다.

기침약으로 이용하는 아미그달린(amygdalin)은 재래종 복숭아의 종실, 혈관확장제로 쓰는 징코플라본 글리코사이드(GFG)는 은행나무 잎에서 추출하였다. 가장 널리 쓰는 스테로이드 약은 1960년대 초에 개발한 경구용 피임약이다.

이것은 야생의 마(산약) 식물로부터 얻어지는 식물성 스테로이드의 디오스게닌(diosgenin)에서 주로 만들어지며, 배란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관절염 치료제인 코리티손(cortisone)은 마에서 뽑아낸 코리티코스테로이드(corticosteroid)가 주원료이다.

코르티코스테로이드와 이것의 합성 유도체인 프레드니솔론과 덱사메타손은 류머티즘 및 그 외 염증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된다. 또한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때때로 수술 후 환자 및 노인병 환자에 투여하면 근육성장과 세포조직의 재생을 촉진시킨다.

그리고 현재 관상용으로 인기가 좋은 원예종 디기탈리스(common fox glove, Digitalis purpurea L.)에서 강심제로 널리 쓰는 디기토닌(digitonin)을 추출하였다. 18세기에는 디기탈리스라는 이름의 의약품도 생산될 정도로 이 꽃은 심장병에 탁효하다.

이 같은 용도로 쓰는 조제약의 활성성분인 디기탈리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스테로이드에 당이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일종의 스테로이드 글리코시드이다. 여러 식물의 스테로이드는 심장 기능의 강화작용을 하는 글리코시드이지만 많은 양을 복용하면 치명적이며, 식물에서는 포식성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디기탈리스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어느 요정이 길을 걷다가 여우를 만나자 손에 들고 있던 디기탈리스 꽃다발을 선물하였다. 꽃을 선물로 받은 여우는 꽃의 모양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그 꽃으로 자신의 발을 감쌌다. 그랬더니 아름답기도 하였지만 발소리가 나지 않아서 좋았다. 여우는 그날부터 안심하고 닭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닭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디기탈리스는 영국에서 ‘여우의 장갑(fox glove)’이라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는 ‘여우의 방울’, ‘여우의 음악’, ‘요정의 골무’, ‘요정의 장갑’, ‘마녀의 장갑’, ‘요정의 방울’ 등 모두가 마성과 관계된 이름으로 별칭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노트르담의 종’이라 부른다.

이탈리아의 속담에는 ‘디기탈리스는 망령을 고친다’라는 말이 있으며, 심장초라 별칭하기도 한다. 꽃말은 가슴 속의 생각, 나의 사랑을 맡깁니다, 열애, 열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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